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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요르단

JORDAN-31 ①. 드디어 떠나다

by bravoey 2010. 11. 13.

비가 억수로 왔다. 일을 마무리하고 집에서 배낭을 잽싸게 싸는데 쏟아지기 시작한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작년에 터키 갈 때도 허겁지겁 사무실을 탈출했었는데, 이번에도 그런다. 아마 비행기나 타야 일을 떼버릴 수 있겠지.
콜택시를 불렀으나, 대화동엔 못 가겠다며 나를 버렸다. 하는 수 없이 배낭에 우산을 걸치고 큰 길에 나가 택시를 잡아타고 터미널로 향했다.
아, 대화동.

공항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넘어, 바로 티켓팅을 했다. 짐도 보냈는데, 터키항공 직원이 도하항공을 타지 않겠냐고 한다. 터키항공 타는 사람이 그렇게 많았나보다. 비쩍 마른 남자아이 하나가 하루키의 1Q84를 들고 나를 힐끔 쳐다봤다. 그 남자랑 나, 두 사람을 꼬셨나보다. 혼자니 상관없다고 했는데 결국 터키항공 타고 갔다. 정말 좌석이 가득 차서, 화장실 갈 엄두도 못냈다. 대신 자리는 괜찮은데 줘서 편하게 왔다.
내가 혼자 비행기를 타게 되다니. 생각만해도 어질어질했지만, 반면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기내식도 이것저것 잘 시켜 먹었다.
근데, 외롭더라.

터키에 당도한 것은 새벽 5시. 공항에 있기 뭐해서 비자를 받고 이스탄불 시내로 나갔다.
나가는 길에 중국 청화대학교에 다닌다는 한국 대학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지하철도 함께 탔다.
이스탄불 구시가지로 가는 지하철이 헷갈려서 미아될 뻔했다. 에고, 영어도 짧은데 큰 일날 뻔했지.

이스탄불 구경은 작년에 다 한터라 별 할 일 없이 톱카프궁전 정원에 홀로 멍때리고 있었다. 14시간이라는 대기시간을 혼자 때우려니 별로 아름답지 못했다. 벌러덩 누워서 잠들었는데 깨보니 12시였다. 공사하는 아저씨들이 깨우는 바람에 깼지, 아니었음 계속 잤을거야. 아저씨들이 나를 보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부스스 일어나 궁전을 빠져나갔다. 우아하게.
슬슬 걸어서 전에 봐둔 마트에 가서 천도복숭아를 몇 개 샀다. 어슬렁 거리고 시내를 쏘다녔다. 아, 시간 더럽게 안 가더라. 갔던 궁전 또 들어가기도 그렇고 사람은 어찌나 많은지. 트라브존에서 먹었던 연어구이 생각나서 미치는 줄 알았다. 한적하고 재밌었는데.
버티다 못해 공항으로 돌아와 커피마시며 트윗질하다 암만가는 비행기를 탔다.

암만에 온 한국사람은 나 뿐이었다. 가끔 독일사람들 몇 보이는 것 빼고는 아시아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비자를 10디나르 주고 샀는데, 비자심사에서 이 남자가 뭘 자꾸 묻는다. 중동사람들 영어발음 정말 못 듣는데...(하긴 뭔 잘 알아들어서) 어디가냐, 어디서 묵을거냐, 친구집 전화번호대라 해서 그거까지 알려주고서야 나올 수 있었다. 친구 이름까지 알려달래서 '새봄'이라고 했더니 이상하게 발음하고, 쳇. 그래도 조금 무서웠다.

짐을 찾아서 드디어 나왔다. 새봄이의 얼굴이 보였다. 울 뻔했다. 아, 외로운 하루가 드디어 끝났구나 싶어서. 드디어 요르단에 왔다는 생각에 흥분되어서. 봄이와 버스를 타고 봄이네 신혼집으로 갔다. 아, 정말 피곤했다.  - 7월 17일

* 첫날은 사진 안 찍었음. 이 날은 공식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