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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무산일기

by bravoey 2011. 5. 11.

비가 많이 오는 날, 이 영화를 본 건 조금 실수였던 것 같다. 기분이 썩 좋은 영화는 아닐거라 생각은 했지만, 뒷맛이 영 씁쓸했다. 그건 뭐랄까, 아쉬움 같은 것이었다. 나는 전승철에게 '순정'을 바랬나보다. 친구를 배신하지 않고, 좋아하는 여자를 끝까지 좋아하는 그런 영화에서나 보여주는 순정. 그건 탈북자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일지도 모르겠다. 탈북자 전승철의 남한에서의 고된 일상을 마치 다큐처럼 보여주는 이 영화는 외국에서 날려주는(?) 상을 많이 받은 모양이다. 보러온 이들이 꽤 있었다.
각설하고,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전승철은 과연 길가에 쓰러진 개를 보고 어떻게 반응할까. 가서 끌어안을까, 그냥 지나칠까. 나는 그가 그냥 지나칠거라고 직감했다. 그가 머리를 자르고, 양복을 살 때부터 그의 눈빛은 절실함이 사라진지 오래였다. 비굴함도, 간절함도 없는 눈이었다. 오랫동안 개를 바라본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개를 자신과 동일시 했을까, 아니면 타자화 시켰을까. 영화내내 그 개는 전승철 자신처럼 보였지만, 아니었다. 전승철은 이미 자신을 포기했다. 친구의 돈을 돌려주지 않았을 때부터, 그는 자기가 지켜온 모든 것을 포기했던 것 같다. 그래서 개도 그렇게 버려둘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왠만하면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씁쓸함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결말이었다. 아, 그래 외면하고 싶은 것일지도. 하지만 언제까지나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젠가는, 나의 일상에도 그들이 찾아올 수도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