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길에 가끔 용달차에 두 눈을 꿈뻑 내 놓은 채 실려있는 소들을 본다. 다리에 힘을 주고, 서로 몸을 부대끼며 버티고 있다. 아마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겠지. 나도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금방 짐작이 되니 말이다. 어디까지가 삶인지 모른 채 태어나 어디론가 향하는 건, 사람이나 소나 생명을 가진 무엇이나 다 같은 '방향'인 듯 하다. 

매우 불편한 장면인 것은 확실했다. 눈부신 햇살이 잔인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 생명들과 함께, 나 또한 같은 방향임을 인지하는 순간 공유하게 되는 그 존재의 핵심, 그것 때문일지도. 

두려움. 죽음을 향해 간다는 본질적인 공통점, 그리고 내재된 본능. 부인하려고 하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 핵심은 아마도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그 두려움일 것이다. 극복조차 하고 싶지 않아 생각 자체를 피하는 그 잔인한 감정.

두려움을 인지하는 순간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마음을 가다듬어 가는 그 과정의 시간들이 사실 고통스럽다. 그 과정은 몇 시간에 끝나지 않고 전 생애에 걸쳐 수많은 전투를 치뤄내며 다듬어지는 것이기에 더 그렇다.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를 얻기 위해 무엇인가 읽고 찾고 해본다. 그래서 삶은 고마운 선물이다. 우리가 죽음에 닿기 전까지 누구에게나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 선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해 본다. 용기라는 투명한 칼로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형태를 입힌다. 양을 줄여낼 수는 없다. 다만 그 형태를 조절해본다. 삶이 지속되기에 우리는 용기를 동기삼아 '행동'한다.

행동으로 파급되는 다양한 일과 관계 속에서 용기와 두려움의 롤러코스터를 오간다. 방향은 정해져 있지만, 삶의 가치를 얻어본다. 눈부신 햇살이 잔인할지라도, 다리에 힘을 가득 주며 살아가는 일상이라도. 삶, 그 속의 용기를 손에 꼭 쥔다면 그저 죽음을 향해 그저 내달리는 허망한 길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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