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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철살인자들/촌철살인칼럼

다시 생각해보는 이라크 파병

by bravoey 2006. 4. 5.


지금도 우리나라 군인들이 이라크에 가 있다. 이란에서 사태가 나면 아랍어로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라는 뜻을 가진 짜이툰 부대가 바로 투입될 것이라는 말이 있기도 하지만 하여간 현재로서는 평화재건 부대로 이미 공식적으로 전쟁이 끝난 이라크에 우리나라 군인들이 머물고 있다.


아주 개인적으로는 이 이라크 파병이 나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이제 몇 년이 지났지만 나는 이 파병의 충격에서 잘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아직도 이 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하지를 못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는 중이다. 나의 고민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아마 나의 개인적으로 사회적인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것으로 치자면 광주사태가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그 다음이 이라크 파병일 것 같다. 광주사태 때에는 중학교 1학년이라서 뭐가 뭔지 잘 몰라서 충격의 여파가 상대적으로 작았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이라크 파병은 내가 어른이 된 다음의 일이라서 그 충격에서 아직도 잘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일종의 traumatism이라고 한다면 이라크 파병은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충격적 사건이었을지도 모른다.


광주사태는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독재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라서 생각보다 “왜?”를 이해하기가 쉬웠다. 사람들 말대로 군바리들이 사람 목숨을 목숨같이 생각하지 않고 공무원이나 학자들이나 전부 군인들 밑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협조하던 시절이니까 이 시기의 정책이나 사회적 결정에는 아무런 합리성도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속 편한 것 같다. 물론 경제사나 경제적 접근으로 더 들어가면 그렇게 그냥 독재시절이라고 모든 것을 지워버릴 수 없는 측면이 분명히 존재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무식한 전두환 시절”이라고 아주 쉽게 이 사건을 이해할 수 있다.


이라크 파병이 진행되던 순간은 가끔 좌파정부라고 오해를 받는 현재의 열린우리당 세력이 집권한 시기이고, 국회 내에서도 파병을 막지 못할 정도로 민주주의 세력이 없던 시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민주주의라는 담론만으로 상황을 풀어나가기에는 비정규직 관련 법안 등 골아픈 것들이 없지는 않지만 어쨌든 이라크 파병 같은 경우에는 민주주의 정부이든 아니든 하는 것과는 별로 상관없어 보였다. 물론 보수주의 정당이 아니라 더 급진적인 정부가 국회를 장악했으면 나았을 것이라는 테제를 제기할 수야 있겠지만 세계 어느 나라에도 장기적으로 그런 급진 세력이 오래 국회를 장악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또 다른 스탈린주의의 병폐가 생겨날 수밖에 없을 것 같기는 하다...


이라크 파병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국익’이라는 좌표를 가지고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고, 이 국익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조작’ 혹은 호도가 가능한 별로 학문적이지 않은 주장들 위에 서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라크에 머물던 윤정은씨가 돌아와서 우리에게 알려준 대로 파병을 하게 되면 이라크와 아랍권에서 우리나라의 이미지가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에서 실제 이렇게 대규모의 파병을 하게 되면 우리나라 경제인의 입국이 어려워지므로 실제 무역효과로 연결되기 어렵다는 지적 그리고 실제 미국 건설회사들이 재건 공사를 독점할 것이므로 파병을 해도 실제 경제적 이익으로 연결되기 어렵다는 지적들이 있기는 했다.


지금에 와서는 아주 장기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국익을 계산하면 나아질지 모르지만 현재까지는 이라크 파병의 경제적 이익은 별로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파병된 장병들이 돌아와야 한다고 외치는 목소리는 대단히 약하다.


원래 한 나라의 지표라고 하는 것에는 국익이 있고 가치지향 - 보통은 국시라고 부르는 - 이라는 것이 있다. 이런 복잡한 것들이 충돌하거나 갈등을 벌이면서 한 나라의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데, 이라크 파병이 나에게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보여줄 수 없는 국익”이라는 지표로 많은 국민들이 상당히 추상적인 생각으로 파병을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만약 동맹국과의 외교문제라거나 혹은 지역에서의 헤게모니 같은 조금은 입체적이고 복잡한 이유를 대어서 파병이 필요하다고 했다면 이해할 수 있었을텐데, 파병을 이끌어가고 국민들을 설득하는 기본적인 논의는 국익이었다.


이 사건이 나에게 충격적인 이유는... 앞으로 20년 내에 전쟁을 하는 것이 실제적으로 국가에 여러 가지로 경제적 이익을 주는 사건이 여러 번 벌어질 것인데, 지금의 상황에 대한 변환없이 그냥 역사의 흐름이 진행된다면 우리나라는 파병이 아니라 실제 전쟁을 벌이게 될 것 같다. 원래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것이 그렇고 인종과 종교의 이유로 벌어지는 일부의 국지전이 아닌 진짜 선진국의 전쟁은 대개는 경제적 이익 때문에 벌어지게 된다.


20년 내에 우리나라는 전쟁을 하게 될까? 이라크 파병의 국민들 태도가 변하지 않고 있다면 100% 우리나라는 전쟁을 하게 될 것 같다.


마흔에 가까워지도록 우리나라가 전쟁을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라크 파병의 결정과정을 보면서 이제 우리나라도 경제적 이유로 전쟁을 하게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차적 의미의 민주주의만으로는 우리나라가 달려가는 전쟁을 막을 수는 없다... 그래서 전혀 다른 방식의 생각과 개념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내가 처음 하게 된 사건이 바로 이 이라크 파병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다른 힘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셈이다.


황우석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만 황우석에 열광하는 힘은 분명히 국익을 위해서는 파병해도 좋다고 하는 것과 같은 힘 같아 보인다.


20년 후에 남지나해를 돌아오는 우리나라의 유조선을 중국의 군함이 길을 막아서는 어떤 상황이 벌어지면 어떨까? 혹은 시베리아에서 동해를 돌아오는 가스송유관을 일본이 막아서는 일이 벌어진다면 어떨까? 정부의 희망대로라면 3만불 국가가 되어있는 시점이고, 현재의 에너지 탄성치라면 지금보다 3배 이상의 TOE(석유환산톤)를 소비하고 있는 세계 3위 내의 에너지 대소비 국가가 되어있을 것이다.


아니면 태평양 심해유전에서의 석유채굴을 베트남이 막아선다면?


지금의 국민들이 그대로 20년 후의 국민들이라고 한다면 볼 것도 없이 전쟁이다.


만약에 재수 없게 그 20년 후의 어느 해가 지금처럼 소득분배의 지수인 지니계수 같은 것들이 안 좋아지고, 실업률이 높다면 전쟁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인다. 가장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의 외형을 국회와 지방에서 실현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조건에서는 우리나라는 무조건 전쟁을 하게 된다. 인터넷 토론이 아무리 발달하고, 국내 소비시장이 아무리 커지고, 또 국민소득이 아무리 높아지더라도 20년 후의 모습은 전쟁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든 것이 나에게는 이라크 파병이라는 작은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