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담배를 피지 않는다.
이미 8년전 끊은지 오래다.
어제는 대변 멸치털이 축제 마지막 날이라 멸치를 터는 사람들을 촬영 하러 갔었다.
3년째 대변 멸치 축제때마다 멸치를 터는 사람들을 찍어오고 있다.
대변에 가기전 편의점에서 생수 한병을 사면서 문득 작년의 기억이 떠올랐다.




멸치털이 뱃사람들을 찍을 때는 사실 많이 긴장된다.
배를 타는 사람들이라 상당히 터프하고 카메라를 무척 싫어한다.
사진을 찍다가 많은 사람들이 욕을 먹기도 하고 촬영을 거부 당하기도 한다.
3년전 첫해에는 물론 나도 몇번 촬영을 거부 당하고 감히 카메라를 들이대지도 못했다.
하지만 3년동안 찍다보니 어부들과 안면도 익히고 찍은 사진을 가져다 주며 서로 친해질 수 있어 이제는 앞에서 맞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작년 이맘때에도 나는 멸치털이 작업장에서 멸치를 맞아 가며 사진을 찍었다.
멸치를 털다가 중간 휴식시간...
온몸에 멸치가루를 흠뻑 뒤집어 쓴 작업을 하던 터프한 뱃사람 아저씨 한분이 대열에서 이탈해 숨을 헐떡거리며 사진을 찍고 있는 내게 걸어서 다가온다.
순간 긴장하며 "아..또 사진 때문에 찍지 말란 소리 하려고 오나 보다."라는 생각과 함께 험한 소리 한두마디 쯤은 들을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 다가온 아저씨가 입에서 단내를 뿜어내며 터프한 사투리로 한 말은 "담배 있음 하나 주소!" 였다.
그 순간 내게 담배가 없다는 사실이 어찌나 미안하고 내가 원망스럽던지...(사실 어찌 생각하면 그리 미안할 것도 없지만...)
담배를 피지 않아 담배가 없다고 하자 그 아저씨는 피식 웃으며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뒤돌아 대열로 돌아간다.





난 그 기억을 떠올리며 어제 대변에 가기전 담배를 한갑 샀다.
멸치를 털던 누군가 또 작년과 같이 나에게 다가와 "담배 있음 하나 주소1"라고 했을때 이번에는 당당히 담배를 뽑아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담배는 결국 새걸로 그대로 남아있다.



2003년 4월 기장 대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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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현장이다.
머리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손과 발로 겪어내야 하는 현장이다.

눈 감고 뒤돌아서는 젊음은 어리석다.
젊기에, 눈을 뜨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한다.


출처 : 다음까페 "오불까페"(오징어와 불고기 아니다!)
찍은이 : 포토라이프 님
‘평범한 사람’이란 학벌이나 재산, 혹은 사회적 지위 따위가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주체적인 가치관을 갖지 못한 사람’이다.

지배자들은 그들이 주체적인 가치관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만으로 그들을 완전하게 지배한다. 요컨대 평범한 사람들은 늘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이다.

“어차피 자본주의 사회인데...” “세상이란 게 그런 거지...”

물론 그런 생각은 지배자들이 그들에게 오랜 기간 동안 심어준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자본주의 사회가 뭔지 세상이란 게 뭔지 다 안다고 생각하기에 자본주의 사회가 뭔지 세상이란 게 뭔지 영원히 알지 못한다.
결국 그들은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외식, 아파트, 차 같은 것이 두게 되며 완전하게 지배된다.
임종을 앞두고 내가 스스로 이렇게 말하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좀 더 사무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어야 하는건데."
"빌어먹을. 단 한번도 통장에 충분한 돈을 채워보지 못하고 인생을 마치는구나....."


아니다! 오히려 마지막 날에 내가 생각할 일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리라.

나는 얼마나 많이 사랑하며 한 평생을 살았는가
어떻게 이웃 사랑을 나누며 살았는가
누가 나를 사랑했는가
나는 누구를 소중하게 여겼는가
과연 내 인생은 다른 사람에 견주어 어떻게 특이한 것이었던가
나는 어떻게 세상을 섬기며 살았는가
어떻게 인생을 사랑으로 채우며 살아왔는가
어떤 이가 종군위안부가 ‘상업적 매매춘’(성매매)이었다는 식의 말을 해서 소란이 났다. 어이없는 말이지만 그걸 비난하는 사람들도 그다지 곱게 만은 보이지 않는다. 수요시위 한번 나가본 적 없고,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조리 죽어 없어지기만 기다리는 일본정부와 한국정부에 대한 진지한 분노도 없으면서, 이승연이 위안부 누드를 찍었다는 소식에나 독립운동이라도 벌이듯 난리치는, 사회 문제에 진지한 성찰 없이 감정적 배설만 일삼는 사람들은 말이다. 위안부할머니들이 생각날 때 한번씩 꺼내 노는 장남감인가?

그 논란과 관련한 모든 사람들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상업적 매매춘’ 여성에 대한 경멸도 딱한 것이다. ‘갈보’나 ‘똥치’ 같은 노골적인 경멸과 “요즘 창녀들은 지가 돈 벌고 싶어서 하는 애들이야.” 하는 우회적인 경멸은 질적으로 다른가? 사람들은 여전히 매매춘 문제가 사회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도덕이나 윤리의 문제라 생각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하고 싶지 않은 상대와 섹스하지 않고도 비슷한 돈을 벌 수 있다면 세상에 누가 제 존엄을 팔아 살겠는가?

성형 수술을 해서라도 결혼 시장에서 높은 상품 가격을 확보하는 일이 중산층의 상식이 되고, 결혼이라는 게 경제적 능력을 가진 상대에게 장기간의 독점적 성적 서비스(와 가사, 육아 서비스)를 제공하는 계약이 된 세상에서 누가 누구를 ‘상업적 매매춘’이니 뭐니 경멸할 수 있는가? ‘상업적 매매춘’에 관한 유일한 진실은, 이미 우리는 모두 ‘상업적 매매춘’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Posted by gyuhang at 01:11AM

  성공한 워드씨가 서울을 방문하셨다.
  그 그림자가 참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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