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2.12 Sun


당연한 말이지만, “예수는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선 예수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알아야 한다. 이건 예수를 종교적으로 받아들이는가 아닌가와 무관하다. 예수를 그리스도라 떠받드는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예수가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해선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예수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알고 나서 그리스도로서 예수가 있는 것이지 어떻게 살았는지 누구인지조차 모르면서 무작정 예수를 ‘내 죄를 대속한 그리스도’라 떠받는 건 우스꽝스런 일이다. ‘사람의 아들’ 예수가 없다면 ‘신의 아들’ 예수도 없다.

예수가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한 가장 유력한 자료는 역시 신약성서의 맨 앞에 실린 네 개의 복음서들(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이다. 그 가운데 마태, 마가, 누가복음 셋을 ‘비슷한 관점’에서 씌어졌다고 해서 ‘공관(共觀)복음’이라 부른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서보다 훨씬 더 종교적으로 채색된 것이다. 공관복음 가운데 가장 일찍 씌어진 건 마가복음이다. 마가복음은 70년경에 씌어졌다. 마태와 누가복음은 마가복음보다 늦게, 마가복음을 기본 자료로 씌어진 것이다.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이 ‘공관’을 갖게 된 것도 마가복음이 먼저 씌어지고 나머지 둘이 그것을 기본 자료로 해서 씌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같은 관점을 가진 복음서가 세 개나 존재하는 걸까? 그것은 복음서가 씌어진 목적 때문이다. 복음서는 역사적 사실을 서술하려는 것보다는 그것을 쓴 작가가 소속된 교회공동체의 ‘신앙 고백’의 차원에서 씌어졌다. 각각의 교회공동체들은 저마다 조금씩 처지와 사명이 달랐고 그에 걸맞게 신앙관도 조금씩 달랐다. 그래서 ‘같은 관점이지만 조금씩 다른’ 자신들의 복음서가 필요했던 것이다.

복음서의 그런 성격을 둘러싸고 신학자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논쟁이 있어왔다. 아예 복음서를 통해 ‘예수의 생애’를 파악하려는 게 잘못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복음서가 역사적 사실을 서술하려고 씌어진 게 아니라고 해서 곧 그 내용이 전적으로 역사적 허구라고 말하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다. 복음서는 예수에 대한 각 교회공동체의 신앙고백이며 그것은 무엇보다 예수의 생애를 근거로 한다. 복음서는 ‘예수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서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지만, ‘예수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증언하는 가장 진솔한 기록인 것이다.

복음서, 특히 공관복음서의 배경이나 맥락을 함께 읽는다면 우리는 2천 년 전 집도 절도 없이 팔레스타인 땅을 유랑하다 초라하게 죽어간 한 사내의 모습을 생생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일자무오설’이니 ‘축자영감설’이니 해서 성서에 씌어진 한자 한자 그대로가 하느님의 영감에 의한 것이니 사람이 그것을 분석하려 드는 건 위험한 일이라는 주장도 있다. 얼핏 경건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그런 주장은 실은 ‘하느님의 영감’을 ‘인간의 영감’으로 재단하려는 태도일 뿐이다.

생각해보라. 한낱 사적인 대화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상대의 말과 그 말이 갖는 배경이나 맥락을 동시에 들으려 노력한다. 그런 노력은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의식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렇게 해야만 상대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성서처럼 함축적이고 상징적인, 가장 최근에 씌어진 부분이 2천여 년 전에 씌어진 텍스트를 ‘글자 그대로’만 읽는다는 건 그 안에 담긴 뜻을 읽지 않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노동자의힘 기관지, 계속)
2004.11.29 Mon

예수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사람이다. 그리고 동시에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잘못 알려진 사람이기도 하다. 누구나 예수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예수가 누구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건 무엇보다 예수와 (예수를 창시자로 하는 종교인) 기독교의 거리에서 나온다. 사실 예수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려 한 적은 없다. 그가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과 ‘하느님의 뜻’을 놓고 사사건건 갈등을 빚고 그 때문에 죽임까지 당했지만, 바로 그 점에서 보듯 그의 활동은 ‘유대교 갱신운동’의 하나였다. 그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려 한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종교를 허물어 다시 세우려 했다.

그러나 그의 뜻이 무엇이었든 그가 죽은 후 그를 창시자로 하는 종교인 기독교가 생겼다. 처음에 기독교는 예수가 그랬듯 하층계급 인민들을 위한 종교였고 그런 계급성에 걸맞게 가혹한 탄압도 받았지만 조금씩 성장해가면서 그 정체성을 잃어갔다. 기독교는 예수를 처형했던 로마의 국교가 되고부터 지배계급의 종교가 되어 세계를 점령해갔다. 점령은 예수가 죽은 지 2천년이 지난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라크 침략전쟁에서 보듯, 인류가 겪는 가장 악랄한 사건들이 기독교의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저질러진다.

한국에서 사정도 그리 나을 게 없다. 근래 몇몇 대형교회의 불거진 행태가 말썽을 빚고 있지만 그런 경향은 한국 교회의 일반적인 신앙관이기도 하다. 정말이지 한국엔 교회가 많다. 밤이면 온 세상이 붉은 네온 십자가들로 넘쳐 난다. 한국에 이렇게 교회가 많아진 건 박정희 군사 파시즘 이후의 일이다. 물론 그건 시간상의 우연한 일치가 아니다. 한국교회는 군사 파시즘의 홍위병이자 가장 충직한 선교사였으며 인민들의 사회의식을 배설하는 공간이었다.

“믿으면 받는다” 라는 한국 교회의 신앙관은 “하면 된다” 라는 군사 파시즘의 구호에 봉사했다. 한국 교회의 철저한 빨갱이 콤플렉스는 군사 파시즘의 존립 기반이던 반공주의에 봉사했다. 그리고 한국 교회는 관제 행사가 아니라면 여럿이 모이는 일조차 불편하던 시절, 인민들(특히 파시즘과 전근대적 가부장제의 이중적 억압에 시달리던 여성들)이 마음껏 소리치고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이른바 ‘한국 교회의 놀라운 부흥사’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결국 한국 교회는 세계에서 가장 저급한 신앙관을 자랑하게 되었고 그 저급한 신앙관은 다시 가장 반동적인 사회의식으로 작동한다. 오늘 한국 인민들의 반동적인 사회의식을 생산하는 가장 결정적인 도구는 ‘수구신문’이 아니라 교회다. 오늘 한국에서 교회 문제는 더 이상 ‘종교 문제’가 아니다. 한국사회의 진지한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에게 교회문제는 ‘운동과 별개의, 교회에 안 나가는 자식을 염려하는 어머니와의 문제’가 아니다. 교회 문제는 한국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단지 ‘교회문제를 비판하는 것’으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런 비판은 결국 교회 체제의 내부에 기생하게 마련이다. 해결은 “성전을 허물고 다시 짓겠다”던 예수의 선언처럼 좀 더 근본적인 방식으로만 가능하다. 그건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그 질문만이 오늘 대개의 한국 교회가 교회가 아니라는 것, 교회를 빙자한 상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드러낼 수 있다.

(노동자의 힘 기관지 연재. 이 글은 예수전은 아닙니다.)


비수를 내리꽂는 여자.

  1. 정용균 2007.09.18 16:15 신고

    누굴까? 어떤 사람? 자료실에서 우연히 본 사람....

일관되게 사는.



재미있는, 같은 고향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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