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전쟁이 무엇인지를 정의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홉스나 루소와 같은 사회계약론자들은 개인들의 자유의 일부를 군주에게 양보하면서 전쟁이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을 유지하고 있는 것보다는 리바이어던에게 조세를 제공하고 편하게 사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사회계약론의 본질인 셈이다. 이들보다 100년 후에 등장한 애덤 스미스와 다시 100년 후인 데이비드 리카도는 국가와 국가 사이의 거래인 무역이 전쟁을 없애줄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인 것 같다. 포도주의 대명사인 보르도를 영국이 만드는 바보 같은 일을 하는 것보다는 면화로 더 좋은 섬유를 만들어서 교환하면 더 좋을 것 같다는 것이 국부론의 주장이고, 이 당시의 경제학자들은 국가 간에 무역을 하게 되면 전쟁이 줄게 될 것이라는 행복한 상상을 했던 것 같다.

16∼17세기에 자본주의를 지지한 학자들의 말을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어쨌든 시장 사회와 자유무역을 추진하면 결과적으로 세상의 전쟁이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가 가장 꽃피었던 20세기에 2차에 걸친 세계대전이 벌어졌다는 점을 상기하면 좀 이상해 보기이기는 하지만, 유럽사에서 전쟁일수가 가장 적었던 시기가 사실은 20세기였다는 점을 환기할 때 아주 틀리다고는 하기 어렵다. 실제로 유럽에서의 자본주의는 15세기에 세계를 지배하던 해적들과의 전쟁과정에서 승리한 시스템이기는 하다. 한 때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했던 국가인 스페인의 재경장관이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힘을 이용해서 훨씬 빠르게 부를 축적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러한 발언들을 근거로 유럽 사학자들은 때때로 15세기의 해적들에 대해서 스페인의 여왕이 비밀리에 지원을 했다고 의심하기도 한다. 그리고
빅토리아 여왕의 함대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쳐부순 사건을 ‘신사’들의 자본주의가 드디어 해적들의 ‘무적함대’를 무찌르고 비로소 자신의 길을 세운 순간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돌아보면 인류의 역사는 번영이라는 한 가지의 목표와 평화라는 또다른 목표를 일종의 이중 플롯처럼 구성하면서 지금까지 진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한테 만약 잘 사는 사회와 재미있는 사회 그리고 전쟁 없는 사회 중에서 한 가지를 고르라고 한다면 주저없이 전쟁 없는 사회를 고를 것 같다. 좀 가난하거나 좀 재미 없더라도 전쟁이 없다면 그런 사회에서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 작은 기여라도 하면서 살고 싶다. 냉전이 끝난 지금 과연 전 세계에서 전쟁이 앞으로 20년 내에 발발하지 않을 곳이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해보자. 누구나 스위스를 고를 것이고, 그 다음에는 프랑스와 독일 같은 곳을 고를 것이고, 미국이나 중국 혹은 일본이 앞으로 20년 후에도 전쟁이 없을 것이라고 고를 사람은 그렇게 많을 것 같지는 않다.
로마클럽 보고서의 연구팀장인 도넬라 메도 여사는 2년 전에 타계하면서 20년 후에 전 세계적인 자원전쟁이 발발할 위험성이 높다고 경고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과연 어떨까?

현재와 같이 세계 10위의 경제규모에서 외국 자원의 의존도를 계속 늘려나가는 상황인 만큼 우리도 해외주둔군을 가지지 않을 도리는 없다. 한국 또한 수비형인 이지스함만이 아니라 훨씬 더 적극적인 공격을 할 수 있는 원양작전 능력을 갖춘 항공모함이 절실히 필요하게 된다. 게다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시장인 중국과 일본이 이웃한 동북아 경제의 팽창은 자원경쟁을 요구하고 있다. 과연 20년 후에도 이 땅에 전쟁이 없을까? 가장 간단한 시뮬레이션 모델로도 빠르면 10년, 길면 20년 후에 한국도 사활을 건 전쟁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해준다. 우리한테 평화의 조건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이 한반도에 20년 후에도 전쟁이 없게 할 수 있는 평화의 조건이 달성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무척 궁금한데, 대한민국 학계나 그 어느 곳에도 여기에 대한 답은 별로 없는 것 같아 보인다. 내 눈에는 한국은 열심히 전쟁으로 달려가는 것만 같아 보인다.


지금도 우리나라 군인들이 이라크에 가 있다. 이란에서 사태가 나면 아랍어로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라는 뜻을 가진 짜이툰 부대가 바로 투입될 것이라는 말이 있기도 하지만 하여간 현재로서는 평화재건 부대로 이미 공식적으로 전쟁이 끝난 이라크에 우리나라 군인들이 머물고 있다.


아주 개인적으로는 이 이라크 파병이 나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이제 몇 년이 지났지만 나는 이 파병의 충격에서 잘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아직도 이 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하지를 못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는 중이다. 나의 고민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아마 나의 개인적으로 사회적인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것으로 치자면 광주사태가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그 다음이 이라크 파병일 것 같다. 광주사태 때에는 중학교 1학년이라서 뭐가 뭔지 잘 몰라서 충격의 여파가 상대적으로 작았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이라크 파병은 내가 어른이 된 다음의 일이라서 그 충격에서 아직도 잘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일종의 traumatism이라고 한다면 이라크 파병은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충격적 사건이었을지도 모른다.


광주사태는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독재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라서 생각보다 “왜?”를 이해하기가 쉬웠다. 사람들 말대로 군바리들이 사람 목숨을 목숨같이 생각하지 않고 공무원이나 학자들이나 전부 군인들 밑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협조하던 시절이니까 이 시기의 정책이나 사회적 결정에는 아무런 합리성도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속 편한 것 같다. 물론 경제사나 경제적 접근으로 더 들어가면 그렇게 그냥 독재시절이라고 모든 것을 지워버릴 수 없는 측면이 분명히 존재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무식한 전두환 시절”이라고 아주 쉽게 이 사건을 이해할 수 있다.


이라크 파병이 진행되던 순간은 가끔 좌파정부라고 오해를 받는 현재의 열린우리당 세력이 집권한 시기이고, 국회 내에서도 파병을 막지 못할 정도로 민주주의 세력이 없던 시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민주주의라는 담론만으로 상황을 풀어나가기에는 비정규직 관련 법안 등 골아픈 것들이 없지는 않지만 어쨌든 이라크 파병 같은 경우에는 민주주의 정부이든 아니든 하는 것과는 별로 상관없어 보였다. 물론 보수주의 정당이 아니라 더 급진적인 정부가 국회를 장악했으면 나았을 것이라는 테제를 제기할 수야 있겠지만 세계 어느 나라에도 장기적으로 그런 급진 세력이 오래 국회를 장악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또 다른 스탈린주의의 병폐가 생겨날 수밖에 없을 것 같기는 하다...


이라크 파병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국익’이라는 좌표를 가지고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고, 이 국익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조작’ 혹은 호도가 가능한 별로 학문적이지 않은 주장들 위에 서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라크에 머물던 윤정은씨가 돌아와서 우리에게 알려준 대로 파병을 하게 되면 이라크와 아랍권에서 우리나라의 이미지가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에서 실제 이렇게 대규모의 파병을 하게 되면 우리나라 경제인의 입국이 어려워지므로 실제 무역효과로 연결되기 어렵다는 지적 그리고 실제 미국 건설회사들이 재건 공사를 독점할 것이므로 파병을 해도 실제 경제적 이익으로 연결되기 어렵다는 지적들이 있기는 했다.


지금에 와서는 아주 장기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국익을 계산하면 나아질지 모르지만 현재까지는 이라크 파병의 경제적 이익은 별로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파병된 장병들이 돌아와야 한다고 외치는 목소리는 대단히 약하다.


원래 한 나라의 지표라고 하는 것에는 국익이 있고 가치지향 - 보통은 국시라고 부르는 - 이라는 것이 있다. 이런 복잡한 것들이 충돌하거나 갈등을 벌이면서 한 나라의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데, 이라크 파병이 나에게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보여줄 수 없는 국익”이라는 지표로 많은 국민들이 상당히 추상적인 생각으로 파병을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만약 동맹국과의 외교문제라거나 혹은 지역에서의 헤게모니 같은 조금은 입체적이고 복잡한 이유를 대어서 파병이 필요하다고 했다면 이해할 수 있었을텐데, 파병을 이끌어가고 국민들을 설득하는 기본적인 논의는 국익이었다.


이 사건이 나에게 충격적인 이유는... 앞으로 20년 내에 전쟁을 하는 것이 실제적으로 국가에 여러 가지로 경제적 이익을 주는 사건이 여러 번 벌어질 것인데, 지금의 상황에 대한 변환없이 그냥 역사의 흐름이 진행된다면 우리나라는 파병이 아니라 실제 전쟁을 벌이게 될 것 같다. 원래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것이 그렇고 인종과 종교의 이유로 벌어지는 일부의 국지전이 아닌 진짜 선진국의 전쟁은 대개는 경제적 이익 때문에 벌어지게 된다.


20년 내에 우리나라는 전쟁을 하게 될까? 이라크 파병의 국민들 태도가 변하지 않고 있다면 100% 우리나라는 전쟁을 하게 될 것 같다.


마흔에 가까워지도록 우리나라가 전쟁을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라크 파병의 결정과정을 보면서 이제 우리나라도 경제적 이유로 전쟁을 하게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차적 의미의 민주주의만으로는 우리나라가 달려가는 전쟁을 막을 수는 없다... 그래서 전혀 다른 방식의 생각과 개념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내가 처음 하게 된 사건이 바로 이 이라크 파병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다른 힘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셈이다.


황우석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만 황우석에 열광하는 힘은 분명히 국익을 위해서는 파병해도 좋다고 하는 것과 같은 힘 같아 보인다.


20년 후에 남지나해를 돌아오는 우리나라의 유조선을 중국의 군함이 길을 막아서는 어떤 상황이 벌어지면 어떨까? 혹은 시베리아에서 동해를 돌아오는 가스송유관을 일본이 막아서는 일이 벌어진다면 어떨까? 정부의 희망대로라면 3만불 국가가 되어있는 시점이고, 현재의 에너지 탄성치라면 지금보다 3배 이상의 TOE(석유환산톤)를 소비하고 있는 세계 3위 내의 에너지 대소비 국가가 되어있을 것이다.


아니면 태평양 심해유전에서의 석유채굴을 베트남이 막아선다면?


지금의 국민들이 그대로 20년 후의 국민들이라고 한다면 볼 것도 없이 전쟁이다.


만약에 재수 없게 그 20년 후의 어느 해가 지금처럼 소득분배의 지수인 지니계수 같은 것들이 안 좋아지고, 실업률이 높다면 전쟁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인다. 가장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의 외형을 국회와 지방에서 실현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조건에서는 우리나라는 무조건 전쟁을 하게 된다. 인터넷 토론이 아무리 발달하고, 국내 소비시장이 아무리 커지고, 또 국민소득이 아무리 높아지더라도 20년 후의 모습은 전쟁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든 것이 나에게는 이라크 파병이라는 작은 사건이었다.

웰빙강조우유안전실태조사 - 한살림에서 퍼옴

아토피 자료
- 다음을 지키는 사람들

내 블로그가 생겼다.
이제 자료걱정, 싸이 정기점검 걱정 안해도 되겠다. 흐흐!

하긴 컴퓨터에 모든 것을 저장해 둔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좋구만.
네이버처럼 개나 소나 다 왔다가고 그러진 않겠지. 흐흐!

아이고~
  1. basileian 2006.04.05 15:24 신고

    오픈을 축하하노라. 금방 많이도 올렸네.
    참 그리고 네이버 같진 않다만 이 블로그에 올리는 자료들은
    http://tattertools.com 이라는 사이트에서 같이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흥미있는 이슈들 올리면 많이 와서 보고 그럴 것임..^^
    그리고 환경설정에서 한 화면에 보이는 글 수 조정 좀 해라...너무 많아서 힘들당

  2. 수경 2006.04.19 11:46 신고

    이사했네?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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