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길에 가끔 용달차에 두 눈을 꿈뻑 내 놓은 채 실려있는 소들을 본다. 다리에 힘을 주고, 서로 몸을 부대끼며 버티고 있다. 아마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겠지. 나도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금방 짐작이 되니 말이다. 어디까지가 삶인지 모른 채 태어나 어디론가 향하는 건, 사람이나 소나 생명을 가진 무엇이나 다 같은 '방향'인 듯 하다. 

매우 불편한 장면인 것은 확실했다. 눈부신 햇살이 잔인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 생명들과 함께, 나 또한 같은 방향임을 인지하는 순간 공유하게 되는 그 존재의 핵심, 그것 때문일지도. 

두려움. 죽음을 향해 간다는 본질적인 공통점, 그리고 내재된 본능. 부인하려고 하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 핵심은 아마도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그 두려움일 것이다. 극복조차 하고 싶지 않아 생각 자체를 피하는 그 잔인한 감정.

두려움을 인지하는 순간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마음을 가다듬어 가는 그 과정의 시간들이 사실 고통스럽다. 그 과정은 몇 시간에 끝나지 않고 전 생애에 걸쳐 수많은 전투를 치뤄내며 다듬어지는 것이기에 더 그렇다.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를 얻기 위해 무엇인가 읽고 찾고 해본다. 그래서 삶은 고마운 선물이다. 우리가 죽음에 닿기 전까지 누구에게나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 선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해 본다. 용기라는 투명한 칼로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형태를 입힌다. 양을 줄여낼 수는 없다. 다만 그 형태를 조절해본다. 삶이 지속되기에 우리는 용기를 동기삼아 '행동'한다.

행동으로 파급되는 다양한 일과 관계 속에서 용기와 두려움의 롤러코스터를 오간다. 방향은 정해져 있지만, 삶의 가치를 얻어본다. 눈부신 햇살이 잔인할지라도, 다리에 힘을 가득 주며 살아가는 일상이라도. 삶, 그 속의 용기를 손에 꼭 쥔다면 그저 죽음을 향해 그저 내달리는 허망한 길은 아니겠지. 

갑자기 들깨칼국수가 생각난 건, 아주 더운 여름 날이었다. 

뜨거운 햇살이 온 몸을 녹여버릴 듯 내리쬐는데 발 끝으로 살들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 때 왠지 들깨칼국수 한 그릇이 생각났다. 이상하게, 덥고 짜증나는데 그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힘이 솟는 듯 했다.

소울푸드. 모든 음식이 다 맛있지만 그 중에도 이상하게 '영혼을 따뜻하게 해주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음식'이 있다. 

그것은 배고픔이나 스트레스로 폭식하는 것과는 다른 종류다. 알뜰한 마음으로 식당에 앉아 기다리는 순간이 참 좋은, 나오는 그 모습만 봐도 뭔가 완성된 듯한 식사. 한 입 떠서 목구멍으로 따뜻한 것이 흐르면, 양수 안에 있는 태아의 느낌이 바로 이런 걸까 싶게 아주 적당한 그런 맛이다. 

나의 소울푸드는 들깨칼국수. 쫄깃한 면발과 뜨끈하고 고소한 향이면 충분하다. 부담없이 후루룩 먹으며 수다도 떨고, 김치 맛을 더 빛나게 해 준다. 무엇보다 속을 뜨겁게 해서 허해진 몸과 마음을 든든하게 한다.

심지어 이 들깨칼국수와 관련한 추억도 없다. 그냥 이건 들깨칼국수와 나의 만남이다. 늘 첫만남. 어디나 맛있다. 어디를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되고, 떠오르는 것도 없기에 더 담백하다. 깔끔하고 좋다.

연결된 것이 너무 많고, 떠오르는 것도 너무 많다. 알아야 할 것도 많고, 알고 싶지 않지만 보게 되는 것들도 많다. 그래서 삶은 피곤하고 더 나태하고 싶어진다. 그럴 때 들깨칼국수 한 그릇. 모든 것을 차단하고 오롯이 너에게만 집중하며 연결된 것을 잊고 시간의 흐름을 뜨뜻한 국물에 맡기는.

그런 소울푸드, 들깨칼국수.


2018.1.17
새벽 어둠을 가르는 명랑한 뱃고동


2018.1.11
담영이랑 함께

눈 쌓인 아파트 풍경 함께 그리며



2018.1.9
담영이와 함께



2018.1.4
성난이빨고래

어두운 고래의 이빨은 화가 나 있다.

2018.1.3

문어와 반짝반짝 물고기 




2017. 12. 27



2017.12.22
머뭇거림

무엇을 쓸까
무엇을 그릴까
무엇을 할까
종이와 펜이
종이와 색이
종이와 손이
머뭇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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