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영이랑 읽는데 자꾸 침이 줄줄.
수박은 생각만해도 행복한 과일인데
수박수영장이라니!
이거슨 피서가서 읽어야 할 워너비 동화책.
수박껍질 미끄럼틀 타고 먹구름 샤워하고 나면
왠지 착해질 것 같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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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화책은 정말 어른들이 읽어야 할 동화책이다. 

거북이가 토끼한테 한 번 이겼다가 주변의 시선에 빠르게 사는 법을 공부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토끼에게 결국 한 번 지고나서 주변의 시선이 사라지자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

나 답게 살아가는 것, 주변시선이 아닌 나 자신을 거스르지 않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책.

거북이는 애초에 슈퍼가 어울리지 않았다.

느림보 거북이 그 자체로도 충분한, 그런 세상이면 좋겠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충분히 행복해하며 살고 있는지 고민 좀 해야겠다.


담영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책. 처음엔 태권브이 때문에 보더니 그림책에 나오는 캐릭터와 대사를 다 외울 정도다.

아이들에게 놀자고 말거는 그림책이니 오죽할까. 앉아서 공부만 해야하는 현실을 잘 꼬집기도 한다.

못 놀아서 킹콩이 되고 티라노사우루스가 되는 아이들.

무엇이든 될 수 있는데도 공부만 해야 하는 아이들.

책상에 앉은 모습 그대로 골키퍼가 되고 레슬링 선수도 되는 모습.

담영아, 엄마는 같이 노는 엄마가 되어볼께.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는 엄마 말고.


사랑스러운 책이다. <이상한 엄마>에 등장했던 선녀님이 옷을 두고 가는 바람에 장수탕에 안착. 덕지를 만나 요구룽을 맛보게 되는 이야기.

어린 시절 목욕탕에 대한 기억을 꺼내게 하는, 주인공 덕지와 선녀님의 냉탕이용법이 너무 귀여운 책.

선녀라는 캐릭터에는 돌봄과 재치가 섞여있어 참 정겹다. 요구룽이라는 말이 너무 웃겨.

외롭게 장수탕에서 살아가는 선녀님이 너무 딱하기도 하고 ㅜ.ㅜ

가벼운 마음으로 읽다가 눈물나는 신기한 책이다.

요구룽 먹고 싶다.


장수탕선녀님 이전 버전인 듯한 이야기. 선녀님이 호호엄마의 전화를 받고 호호를 돌봐주는 이야기. 

계란 하나로 이렇게 맘이 따뜻해질 수도 있구나 싶다. 

구름과 안개를 만드는 선녀할머니가 비슷한 방법으로 만들어주는 계란국, 계란후라이.

중요한 것은 노른자를 터뜨리지 않는 것.  

우리가 다 알고 있는 마음 속 장면들을 꺼내는 신비한 재주가 부러웠다. 

그림책 속 집의 풍경, 따뜻해 보이는 구름과 계란도 얼마나 정겹던지.

따뜻한 집, 그립다.



전주 놀러갔다가 동네서점에서 산 알사탕. 남자아이가 주인공이라 그런지 담영이가 아주 좋아라 한다. 

알사탕을 먹을 때마다 들리는 주변의 이야기.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 어른들에게는 흐뭇 추억에 젖게 하는 책. 

예전엔 문방구에 파는 색색깔 알사탕이 그렇게 맛났었는데. 요즘은 문방구 개념보다 문구센터가 많아서 정감있는 동네분위기는 훨 덜한다.

우리 동네 문방구가 있긴 한데... 아자씨들 담배피우고 애들 게임기 부숴대고 ㅋㅋㅋ

별로 가고 싶지 않다는.

나도 미나문방구 같은 아이들과 건강하게 소통할 수 있는 문방구 차려봐야겠다.


오래오래 보관해 보고 싶은 책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부속품이 되어버린 인간, 인간의 삶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책. 나를 복제한 인간이 누리는 삶으로 만족하며 나는 공장의 기계처럼 일하는 모습을 대비하면서 '내가 진짜로 원하는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사실 그렇다. 일할 때 몸이 두개면 좋겠다 하지 놀 때 몸이 두개면 좋겠다 하진 않았다. 제대로 놀 줄도 모르고,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도 모른채 오로지 돈 벌기와 일하기에 매진하고 있던 삶이었던 것 같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래서일까, 내게 일격을 가한 문장은 마지막 페이지 이 문장이었다.

크레이프를 팔고 있는 지금 난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는 크레이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내가 잘 알고 있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나을 것이 없을 것이다. 크레이프는 단순하다. 짭짤하거나 달콤하거나. 복잡하지 않은 일을 하면서 현재를 살아갈 수 있다면, 욕망의 늪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며 살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신나는 삶은 없을 것이다.

이제 그런 삶을 선택하고 실행하는 일만 '하면 된다.'

다비드 칼리 글, 세르주 블로크 그림 / 문학동네


이 책을 덮고 나서 든 생각. 과연 적은 존재하기나 했을까. 마지막 돌파구로 물병을 던졌을 때, 거기에 받을 사람이 실재하긴 했나 하는 생각이었다. 세상이 만들어놓은 허구를 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도 않은 대상에게 총을 쏘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적의 참호에 실재를 증명하는 사진과 물건들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이 혹시 오랜기간 전쟁에 시달린 주인공의 물건이 아니었을까. 

비단 전쟁이라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황 또한 이런 전쟁이 아닐까 싶다. 타인을 믿는 것에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사회, 타인을 향해 비난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웹세상, 나와 생각이 다른 이를 적으로 보게 되는 지금. 요즘 포털사이트에 달리는 댓글, 기사들을 보면 이런 전쟁터가 따로 없다. 총 한자루 쥐고 쏘며 내 현재를 구덩이에 가두고 살아가기 급급한 세상. 나 또한 그 구덩이에서 총 한자루 쥐고 떨고 있는 것 같다. 더 나은 삶이 이 전쟁만 끝나면 기다리고 있을거야, 이게 끝나야 해, 이렇게 말이다.

이 전쟁을 끝내는 건 바로 나 자신. 주인공 자신이었다. 누가 해 주지 않는다. 그들은 전쟁을 끝낼 생각이 없으므로. 내가 끝내야 한다. 그래야 나도 살고, 저 너머에 내 적 아니 내 이웃도 살 수 있다. 갈 수록 무너져 가는 사람공동체는 아이들이 살아갈 터전마저 병들게 한다. 내 아들들이 이런 삭막한 세상에서 살도록 그냥 둘 수는 없는 일이다. 

처음 접한 다비드 칼리의 그림책. 그림과 짧은 글로도 이렇게 강렬한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는 그림책에 쏙 빠지게 한다. 다음 작품도 기대기대!


아주 머나먼 곳 / 모리스 샌닥 글, 그림 / 시공사


마틴은 길을 떠난다. 내가 묻는 말에 답해줄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에 친구들을 만난다. 그들도 멀고 먼 곳으로 떠나고 싶어 함께 간다.

멀고 먼 곳에서 서로 이야기를 하지만 서로 답 없다. 듣지 않고 이해하지 못한다.

마틴은 다시 돌아간다. 답해줄 엄마가 있는 집으로. 거기서 기다리기로 한다. 

멀고 먼 곳에서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아주 멀리에서 찾으려 하지만 사실 가장 익숙하고 가까이 있는 그 곳, 

나의 이야기가 실재하고 그 이야기의 모티브가 되는 곳,

그곳이 사실은 내가 찾던 아주 머나먼 곳이다.

그 머나먼 곳을 찾으려고 사실 멀고 먼 길을 떠나지만

결국 그 먼 곳에서 가장 처음의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어느 노래 가사 처럼

그토록 찾아 헤매던 나의 머물 곳은 너였음을.


삶이라는 여정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 애쓰고 헤멘다.

어디가 내 자리일까, 어디가 내가 행복한 자리일까.

사실 내가 가장 행복한 자리는 우리가 가장 떠나고 싶었던 그 자리 아니었을까.


요르크 뮐러 그림, 요르크 슈타이너 글, 김라합 옮김 / 비룡소


우연히 도서관에서 만난 <두 섬 이야기>는 어른을 위한 동화이기도 하다. 큰 섬과 작은 섬, 두 섬과 이미 가라앉은 섬 이렇게 사실상 세 섬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금에 현혹되어 사람과 흙을 홀대한 큰 섬의 왕, 그 멸망의 이야기 이자 작은 섬의 지혜와 평화의 의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큰 섬에서 쌓아올리는 거대한 건물들과 동상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그토록 숭배하는 돈은 흙과 사람을 저버리고 결국 고독과 폭력을 불러오고 있음을 하루아침 뉴스만 봐도 알게 된다. 생명의 시작인 흙, 그리고 마지막 새로운 출발의 시작도 결국 흙으로 시작하는 점은 이 이야기의 주제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흙은 결국 평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이자 수단이 된다. 

책을 읽는 동안 바보이반이 생각난 건 왜 일까. 바보라고 칭했지만 그 누구보다 강하고 지혜로웠던 이반들. 그들은 작은 섬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적당히 소유하고, 적당히 일하고 삶을 즐기는 모습. 가치를 돈에 두지 않고 행복한 삶에 두었던 그들.

정말 극명하게 알고 있지만 현실이라는 눈가리개에 자꾸 잊게 되는 그 사실. 우리의 행복이 결국은 평화라는 사실이다. 가끔 어둡고 힘든 세상의 소식들을 접하면 깊은 숲 속으로 들고 싶을 때가 있다. 우리의 삶에 무엇이 소중했나, 생각해보고 싶어서.

우리가 너무 큰 섬에 살고 있지 않나. 나의 작은 섬은 지금, 여기에 있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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