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속이지 마십시오. 만일 여러분이 이 세상 표준으로 판단해서 여러분 자신을 스스로 매우 슬기롭다고 생각한다면 그 모든 생각을 내던져 버리고 차라리 바보가 되십시오. 그래야 정말 슬기로운 사람이 됩니다.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는 "슬기롭다 자처하는 자들 궁리하는 것 순식간에 끝장내 버리시지"라고 씌어 있듯이 인간은 자기 지혜에 걸려서 넘어지는 것입니다.
또 "여호와께서는 저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모두 잘 알고 계신다"라고 하는 말씀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지혜를 자랑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서는 미리 다 주셨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아볼로도 베드로도 여러분을 도우라고 하나님께 보낸 사람들입니다. 생명이나 죽음까지도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여러분이 사용하도록 주셨습니다.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모두 여러분에게 주셨습니다.

모든 것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현대어성경, 고전 3:18~23)

 

자신을 속이지 말고, 차라리 바보가 되어야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말, 모든 것은 여러분의 것, 여러분은 당신이 믿는 하나님의 것 이라는 말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아마 나는 여러가지 꾀를 부리며 세상을 잘 살고 있다고 자부했는지도 모르겠다.

바보의 삶, 기껏 환경운동 하나 하면서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나보다. 하지만 정말 바보의 삶은 그런 게 아닌데.

 

예전에 바보 이반의 이야기로 소논문을 썼던 적이 있다. 평화, 무정부, 반자본 이라는 큰 주제어를 가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수준이었는데 쓰면서 사용했던 바보 이반의 특징은 '소유욕이 없다는 점'이었다. 이 특징은 저 큰 주제어를 동시에 포함한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이념 아래 자신의 정체성을 '노동자'로 굳게 다지고, 화폐가치를 심으려는 자본가의 시도를 처절하게 무력화 시키고, 전쟁을 하려고 들어온 군사들에게 전혀 저항하지 않고 "필요한 게 있으면 다 가져가면 될 것을 왜 때리고 부수느냐"고 말해 '어쩐지 우울하게 만든' 그 바보 같은 이반의 나라.

그 이반의 나라는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대안'으로 내놓고 있는 큰 주제어가 아닌가.

끊임없이 소유하라는 세상의 요구에 나 자신도 진하게 물들어가고 있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가진 자들만큼 갖고 살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소중한 가치나 마음을 조용히 짓밟지 않았나.

 

삶의 중요한 순간에서 다시 부딪치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본다.

꽤 많은 잘난 척을 하며 살아왔다. 꽤 많이 아는 척을 하며 살았다. 잘난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데 말이다.

바보처럼 살겠다고 생각해놓고는 오히려 더 갖고 싶어 안달인 내 모습을 본다.

바보의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야겠다.

 

비처럼 생각이 뚝뚝 떨어지는 아침이다.

 

교회에 대해 어지간히 삐따닥한 내가 10년을 넘게 다니는 우리 교회. 삐따닥한 시선에 삐딱한 일까지 오랫동안 해오고 있는 내가 보수적이고 이기적인 집단으로 딱 찍혀버린 교회라는 공동체에 오랫동안 머물 수 있었던 것은 목사님 때문이다. 도무지 사심이라고는 없는 얼굴로, 어지간히 독한(?) 설교를 묵묵히 해오고 있기 때문. 오늘은 정말이지,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독한(?) 내용의 이야기를 조근조근 하셨다.

더보기


늘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같은 고민을 한다. '진심'이라는 고민. 내가 느끼고 믿는 것이 진심인지에 대한 의심은 늘 끊이지 않는다. 그런 척하면서 살까봐 겁이 난다. 그런 척 하다가 선택한 삶에 대해 후회할까봐. 선택해버리고 그런 척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기도를. 제발, 그런 척 하면서 살아가지 않게 해 달라고. 배부른 돼지처럼 살지 않게 해 달라고.
솔로몬이 죽은 후 유다와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마지막 생애, 솔로몬의 잘못된 선택으로 등장한 여로보암과 르호보암의 나라. 가장 잔인한 인간의 한계를, 우상이라는 눈에 보이는 것에 매인 사람들의 모습을 계속 이야기한다.
그 때의 사람들의 모습은 지금 내 모습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나도 돈이 걸린 일이나 내가 하고 싶은 무엇에 대해서는 조바심내고 하고 싶은 대로 하려들기 때문이다. 삶을 살아가는 힘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진심이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는 내 삶.
사실 더 많은 돈, 있었으면 한다. 돈보다 더한 우상은 아마 사람의 인정일 것이다. 인정받는 것을 좋아한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은? 순위가 밀린다. 솔직히 까발릴 수록 참 잔인한 내 한계다.
내가 무엇을 위해 요즘 살아가는가에 대한 답을 하나하나 하게 만들어, 읽으면서 속이 엄청 쓰린 왕상!
조금 있으면 엘리사, 엘리야가 등장한다. 잘 읽자.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내 몸과 마음은 쇠약해질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며 내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 입니다.(시73:26)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다.
짜증과 불만이 가득찬 지금의 내가 정말 어렵다.

마음과 다르게 멀리서 성경을 본다. 그때, 나 스스로가 움직여지는 그 때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인지...!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파괴와 폭력이 내 앞에 있고 다툼과 분쟁이 곳곳에 있습니다.
그래서 법이 무시되고 정의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악인이 의로운 자를 둘러싸고 있으므로 부정이 판을 치게 되었습니다.
(하박국 1:3~4)

너는 내가 너에게 말해주는 것을 판에 선명하게 기록하여
달려가면서도 읽어볼 수 있게 하여라
.....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려라. 지체되지 않고 그 때가 올 것이다. (하박국 2:3~4)


더보기


그러나 나 여호와는 성전에 있다. 온 세상은 내 앞에서 잠잠하라.(하박국 2:20)

호흡을 더 깊게 가다듬어야 할 것 같다.
"당신이 그리스도라면 분명히 말해주시오"
"내가 이미 말했어도 너희는 믿지 않고 있다. 너희는 내 양이 아니므로 나를 믿지 않는다."
(요10:24-25)

주님이 우리에게는 자신을 나타내 보이려 하시면서도 어째서 세상에는 자신을 나타내려고 하시지 않습니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리고 내 아버지께서도 그를 사랑하실 것이며 아버지와 내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이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요 14:22-24)


나는 흔히 스스로 확신할 수 있는 꺼리를 외부에서 찾으려고 한다. 내가 고른 옷도 다른 사람이 좋다고 하면 좋은 것 같다.
그건 아마 나 자신의 판단은 틀릴 수도 있고 객관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대인도, 제자들도 예수를 통해 스스로가 못하고 있는 확신을 찾으려고 했던 것 같다.
좀 분명하게 얘기해라, 니가 진짜 우리가 기다리는 메시야냐.
예수님께서 그리 분명하게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왜 우리한테만 이렇게 자세히 얘기하고 딴 데가서는 잘 못 알아듣게 얘기하십니까. 솔직히 지금 자세히 얘기해도 잘 모르겠다구요.

예수를 믿는 것은 스스로의 확신을 스스로 찾아나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유대인과 제자들은 예수님과 같이 밥 먹고 보고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성령과 진리(성경)을 통해 예수를 만나고 하나님을 만난다.
이건 어찌보면 좀 더 어렵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끊임없이 보이는 것과 만져지는 것에 집착하고 그것을 믿는데 말이다.
그런 시대에 사는 내가 예수 믿는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은 신기하기도 하다.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과정은 참 많이 알려져있지만 믿는 사람은 믿는 사람밖에 없다.
참으로 믿는 지는 다른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예수를 믿는 것도, 그를 믿는다는 스스로의 확신을 찾아나가는 일도 그 분의 은혜인 것은
나의 그런 소소한 고민과 과정 속에서 예수를 볼 자 들에게는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목사나 선교사가 아니어도, 말씀을 잘 알아서 줄줄 외고 다니지 않아도
박은영, 저 인간 상태 괜찮은데~ 쟤 예수 믿잖아.
라고만 말해줘도 왠지 뿌듯한, 그래서 더 내 삶과 예수 믿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해 주는
그런 과정 속에서 만나는 확신들을 더 채워가고 싶다.

1

내가 세상을 살펴보니 빨리 달리는 사람이라고 해서 경주에서 언제나 일등을 하는 것이 아니며
강하다고 해서 언제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해서 언제나 생활비를 많이 버는 것이 아니며
총명한 사람이라고 해서 언제나 부를 얻는 것도 아니고 유능하다고 해서 언제나 높은 지위를 얻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사람에게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가끔 나는 예전에 공부 잘하던 친구들이나 잘 놀던 친구들의 싸이를 한 번 찾아가본다. 
어릴 적 나는 그 아이들이 엄청나게 잘 되거나, 엄청나게 못 살 줄 알았다. 
그런데 누구나 느끼겠지만 공부를 특별나게 잘 한 아이거나 미친듯이 놀던 친구들이 아니면
다들 평범하게 산다. 그런 것을 보면 세상을 공평하다고 봐야하는 걸까?
 
어릴 적 내가 느꼈던 그런 열등감은(특출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주 극단적이었던 게 아니었나 싶다.
세상을 보면, 전도서 말씀처럼 '반드시 그런 것'은 없다. 다들 자기의 길대로, 생김대로 분량에 맞는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게 나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그런 극단적인 열등감에 젖어있지는 않은 지 모르겠다. 나보다 잘하는 선배들, 동기들을 보면서 말이다.
솔직히 조금 있다. 하지만 늘 그 말을 생각한다, '자기 분량만큼'만 진보하기.
너무 과하면 스트레스다. 내가 원하고, 되는 만큼 뛰어오르면 또 그렇게 하기를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더보기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인간은 알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이 비록 그 일을 알아보려고 갖은 애를 써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가끔 현인들이 나타나 그것을 알아내리라고 큰소리 치지만 그들 역시 실제로 그 일을 알아낼 수는 없다.(전8:17)


올 초에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나온 트렌드에 관한 문서를 본 적이 있다.
앞으로의 상황을 여러 모양으로 예측해놓고, 평가부분에  "작년에도 우리가 한 정세분석이 대부분 다 맞았다." 라는 식으로 서술해 놓은 것을 보았다.(It's so cheesy!^^)
한편으로 든 생각은,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1년 혹은 10년 밖도 확실히 예측할 수는 없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앞으로의 1년도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지금 사람의 삶이다.
물론 소수의 누군가들은 1년 정도는 상황을 조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그것이 그들의 힘이지 않은가.)

하지만 완벽하게 알 수는 없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자기가 뭔가 알고 있다는 사실만 생각한다.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한 양을 측정할 수 없기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많이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이 우리에게 어떤 위로를 줄 수 있을까?

나는 오히려 많이 아는 것보다 그 분을 의지하는 삶을 택하고 싶다.
아는 것을 의지하는 것이 나의 외로움이나 두려움을 없애줄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모르는 삶이 더 흥미롭지 않을까.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세상에서 알 수 없는 말들을 많이 뱉어내는 시기이다.
더욱 깨어있어야 한다.



그 분이 죄인인지 아닌지 나는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한가지 알고 있는 것은 소경이었던 내가 지금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9:25)

눈먼 사람이 다시 눈을 보게 되었다. 예수가 그의 눈을 보게 만들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어떻게 너의 눈을 낫게 했냐고 물었다.
진흙을 발라 주어 나았다고 하자 예수가 안식일에 사람을 고쳤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가 원래 소경이었는지를 의심한다.
급기야 그 소경은 화를 낸다. 사실대로 말하는데 자꾸 딴 얘기를 하다가 결국 자기를 나쁜 놈 취급하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촛불드니까 배후가 누구냐, 촛불은 어디서 났냐고 묻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전에도 그랬듯 바리새인들은 자명한 사실 앞에서 자기를 지키려고 애쓴다.
자기를 지키기 위해 예수는 죄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결론이었다.

오늘도, 내일도 나는 이 사람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기를 지키기 위해 짓는 사람의 오류.
이 시대의 악은 결국 자기를 지키려는 무수한 국가와 사람들로부터 생산된다는 사실을.

당신이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더 위대하단 말이오? 예언자들도 다 죽었는데 도대체 당신은 누구란 말이오?(요8:53)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분은 바로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내 아버지이시다(요8:54)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향해 한번도 바꾸지 않고 먹은 마음이 있다.
"내 생각은 틀리지 않다"
그들의 질문에 예수는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여러번 반복하여 말하지만 그들은 그 사실을 믿지 못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일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뭔가 달라야 하는데, 그들의 마음에는 뭔가 다른 것이 보이지 않았고 자신들이 원하는 방법으로 오시지도 않았다. 그들은 메시아에 대해 무엇을 기대하고 있던걸까?

그 상황은 내가 그 당시에 있었다 하더라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나도 예수님이라면 뭔가 있을거라고 기대하는 마음이 있다. 아마 그 당시, 예수의 볼품없는 꼴과 자꾸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썩 맘에 들지 않았을 거다. 지가 뭔데, 뭐하나 잘난 것도 없는 주제에, 라고 생각하면서.

예수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은혜인 것은 이런 내 모습을 돌아볼 때 비로소 살 속에 와 닿는다.
예수의 말처럼, 나는 아마 그가 십자가에서 죽기 전에는 그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2009년인 지금을 살아간다해도, 그가 죽지 않았다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절대적 진리앞에 언제나 무릎꿇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내 마음에 늘 살아있기를 바란다. 그가 죽은 것이 늘 내게 은혜이기를...

  1. basileian 2009.01.30 20:11 신고

    간만에 글 올라왔길래 들렀더니 스킨도 바뀌었네.....
    내일 봐~

  2. 정용균 2009.01.31 14:43 신고

    제 컴퓨터에서는 글자가 너무 작아 본문 내용이 보이지를 않는군요.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요.

+ Recent posts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