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에 터키로, 그리고 한국으로 떠나는 비행기를 탄다. 아쉽기도 하지만 그리운 이들이 생각나기도 한다. 늘 그렇듯 여행을 마칠 수 있는 이유는 그리운 이들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봄이와 랍바 암몬성으로 향했다. 암몬 성은 고대 문명이 자리한 곳으로 지금도 유적발굴이 되고 있다고 한다. 신전터가 완전하지 않지만 여러 군데 남아있었고, 높기도 높아 암만시내가 사방으로 다 보일 지경이었다. 주변 도시들과 고도차이가 커, 도시 속에 요새처럼 기묘한 분위기를 내 뿜고 있었다. 축제가 열릴 모양인지 무대설치를 하고 있었다.

암만에 도착한지 2주가 되어가는데, 암만을 이렇게 밝은 날 본 것도 처음인 것 같다. 무채색의 건물들이 언덕을 타고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다. 봄이가 자신도 저 언덕 집 어딘가에 살았다고 얘기한다. 봄이 뿐일까, 어떤 한국인 혹은 이집트인 혹은 요르단 사람들도 이 집들 어딘가에 추억을 만들고 살아가고 있겠지. 암만의 전경을 또 언제 볼까 싶어 부지런히 영상을 담아두었다. 이 영상은 또 언제 열어볼까 싶다마는, 그래도 어떤가. 지금 이 곳이 지금 나에게는 추억이 되어가는 중이다. 언제든 나는 열어볼 수 있도록 남겨둘 것이다.

요단강은 예수의 세례터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 강이 어떤 모습일지는 잘 몰랐다. 베다니는 성경에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요 1:28)'의 베다니이다.본래 이름은 베디바라라고 한다. 세례요한과 그 공동체가 함께 거주했던 곳으로 예수가 요한의 세례를 받은 곳이기도 하다. 국경지역이니만큼 경비가 삼엄했다. 길을 약간 헤메긴 했지만, 너무 뜨겁지 않을 때 베다니에 도착했다. 타고온 차는 세워두고 별도의 버스로 이동하게 된다.(입장료 7디나르) 기념교회와 세례터가 있어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천천히 움직였다. 나의 가이드 새봄이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흐흣.


예수께서 여기에서 세례를 받은 것에 대한 이런 이야기도 있다. 지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는 사해, 사해로 흘러가는 요단강은 지상에서 가장 낮은 강이자, 낮은 지점인 셈이다. 사해와 가까운 곳의 요단강의 수심은 거의 바닥이라고 한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의 세례는, 예수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살다갈 것이라는 예언이기도 했다. 그것은 가장 낮고 천한 자의 신분으로 오신 그 분의 뜻에 합당한 곳 이었다. 나아만 장군이 불만을 가질만하다. 시리아에 좋은 물이 많은데 왜 이 더러운 물에서 씻어야 하냐는, 그의 반문이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요단강 그 작은 물줄기를 사이에 두고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나뉘어 있다. 바로 건너편에 이스라엘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듣자하니 이스라엘에도 예수 세례터라고 주장하는 곳이 있다고 하던데, 그런 주장 말고 팔레스타인과 하나될 주장이 이스라엘에서도 흘러나오길 바란다.

오후에 해가 거의 질 때쯤, 사해를 향해 왔다. 멀리 유대산맥이 오늘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인다. 사해 요르단 비치는 주민들이 가는 퍼블릭과 외국인들과 돈 많은 요르단 사람들이 오는 수영장 딸린 비치로 나누어져 있다. 사해는 길이 75km, 세계에서 가장 낮은 지역(-490m)이다. 염분 함유도는 33%, 정말 짜다. 허우적거리다 조금 맛보고 말았다. 너무너무 신기해서 살살 들어가 폴짝 앉았는데 그대로 둥둥 떴다. 오오오오! 눈에 들어가면 죽음이라고 해서 살살 허우적거리며 떠다니다가 요단강 갈 뻔했다.





해변에서 머드팩도 해볼까 했는데, 남사시러워 수영복도 안 입은 내가 무슨 머드팩. 여유부리며 수영도 하고 인증샷도 찍었다! 멋진 유럽가이들의 몸매도 감상해가면서. 떠나기 전, 마지막 휴식이라고 생각하며 지는 해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저녁에는 the greatest amman 이라는 식당에서 양고기도 실컷 먹고, 집에 와서 사해팩도 한 번 해봤다. 새봄이와 조곤조곤 이야기 나누는 것도 오늘이면 마지막이겠지.

 



새벽마다 들리던 기도소리도 못 듣고 잤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도 띵하고 몸이 완전 무거웠다. 역시 체력부족! 그러나 봄이가 끓여준 된장찌개를 미친듯이 먹고 배 두들기며 느보산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모세의 마지막, 느보산에서


 느보산은 암만에서 차로 1시간정도 걸렸다. 마다바의 서쪽인 느보산 지역은 사해의 북동지역과 여리고를 볼 수 있는 산으로, 모세가 약속의 땅을 바라보았던 곳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여기에는 모세기념교회가 복원공사 중인데 성프란체스코 수도회에서 지원받아 건립중이라고 한다. 이 수도회가 돈이 얼마나 많은지는 하나님도 모르실거라는 소문이 있다고도 한다! 입장료 1디나르를 내고 교회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복원현황과 이 곳에서 발견된 이런저런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임시박물관이 있었고, 모세가 멀리 여리고와 가나안 땅을 바라본 곳으로 추정되는 곳에도 올라보았다. 왼쪽으로 사해의 일부와 오른쪽으로 여리고가 멀리멀리 보였다. 신명기를 읽으며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 모세가 이곳에 앉아 약속의 땅을 멀리두고 보면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그 장면. 억울하지 않았을까, 그 긴 시간을 광야에서 고생하다가 이제야 다 왔는데, 너는 못 간다고 하는 하나님이 얼마나 야속했을까. 이 곳에서 모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교회 꼭대기에는 놋뱀 조각상도 정말 크게 만들어져 있었다. 광야방랑기의 놋뱀사건. 모세를 원망했던 이스라엘 민족의 범죄로 인해 불뱀에 물려 죽은 사건의 상징물(민 21:6-10)이다. 놋뱀을 신성시해서 올려둔 것 같아 좋아보이지는 않았지만, 놋뱀사건은 예수의 십자가와 비교될 수 있는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이다. 놋뱀을 보는 사람마다 다 살았다는 말을 본다면.


모자이크 지도의 교회, 성조지 교회

 
성조지교회는 모자이크 교회로도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이집트와 이스라엘, 요르단과 시리아까지 고대 팔레스타인 지역을 그린 지도가 교회 바닥에 그려져 있어 유명하다. 성 조지 교회는 고대 교회터 위에 1896년에 새로 지은 것으로 이 교회에 있는 모자이크 지도는 AD499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1894년에 발견되었다고 한다.



기독교인과 무슬림 사이에 갈등이 생기자 기독교인들이 오스만 터키 정부에게 마다바로 이주할 수 있도록 청원했고, 오스만 정부가 이주를 허락하면서 교회는 옛 교회터에만 지을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이주해온 기독교인들이 교회터를 찾아내는 과정에서 이 모자이크 지도를 발견했다고 한다.일부 손상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오랜 세월 제 색을 잃지 않고 이어온 모자이크를 보니 당시 이 모자이크를 만든 장인들의 솜씨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스어로 지명이 쓰여져 있어, 교회 안에서는 그저 봄이가 알려준 요단강이나 사해, 예루살렘의 모습만 알아볼 수 있었다. 6세기이전의 팔레스타인 지리를 이해하는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고 한다.

교회 주변에는 모자이크 상점이 즐비한데,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봄이가 잘 아는 곳이 있어서 갔다가 십자가 모자이크를 구입했다. 알알이 색돌을 놓던 그 장인들의 손길들을 생각해보면서.

 봄이 일하는 가이드 모임이 있어서, 비행기표 컨펌도 할 겸 함께 갔다가 저녁에 봄이와 사진을 정리하며 지난 여정을 돌아보았다. 이제 얼마남지 않은 여정. 마음은 고요해진다. 다시, 힘을 얻게 되는 것 같다.

 뭔가를 틀 안에 가두는 것은 인간의 어리석은 생각일 뿐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틀에 가두는 분이 아니다. 여정 내내 보고 느낀 것은 내가 믿는 말씀과 하나님이었다. 외로움에 나를 자꾸 코너로 밀어넣었던 것, 급박하게 모든 것을 지켜보려했던 행동들을 돌아보면서 말씀의 현장에서 나 자신을 새롭게 볼 수 있었다. 외로움과 자기를 코너로 몰았던 급박함은 말씀이 그 분이 주신 마음이 아니었다. 힘을 얻고 싶었다면 무릎을 꿇고 간절하게 나를 고백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나님은 어쩌면 그 사실을 알려주시려고 이 먼 곳을 오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행동으로 인정받고 싶어했다. 아니다. 행동이 아닌 마음이다. 내 마음의 게으름을 깨고 그 분을 만나야 내 행동의 게으름이 깨질 것이다.

또 한 번, 새로운 흐름이 내게 생기리라 믿는다.

 



내가 처음 만난 광야는 이스라엘에서 였다. 이집트를 가려고 하이파라는 도시를 질주하면서 만난 광야길. 그 광야길에서 받은 느낌은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성경에서 보던 그 막연한 광야를 처음 맞이한 기분이란. 오늘 떠나는 페트라 여행길에서 나는 또 다시 광야길을 만났다. 아라바 광야, 내 두 번째 광야길.


아라바 광야


아라바는 거친 들 이라는 뜻이다. 사해 남단에서 아카바까지 150km. 이곳을 중심으로 수많은 전쟁이 일어났었는데 그 이유는 풍부한 물과 구리광산 때문이었다고 한다. 성경 여호수아서 12장에 아라바라는 지명이 등장하고 예레미아서 2장과 39장, 52장에도 등장한다. 회오리바람이 작게 일어나 기둥처럼 서 있는 장면을 몇 번 보기도 했다.

구약성경을 펴면 당연하게 접하던 이스라엘 백성과 광야길. 그 광야길에서 40년을 떠돌다가 들어선 가나안 땅. 광야길에 대한 여러 가지 설교도 많고, 이야기도 많지만 역시 한 번 보는 것이 백번의 이야기보다 낫다는 것을 실감했다. 덥고 그늘 하나 찾을 수 없는, 끝도 보이지 않는 광야는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걸었던 곳이 정확히 아니라고 할지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과 짜증이 이해가 되었다. 그늘 하나 없고, 물이 나올 희망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으며, 먹을 것도 없이 그들이 믿을 사람은 모세와 하나님이었을 것이다. 나라도 다시 이집트의 노예생활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세와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광야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이야기하는 하나님만을 만났을 것이다. 하나님 당신이 원한 것은 당장의 현실에서 더 나은 무엇, 먹고 입고 편한 무엇이 아니라 그를 의지하는 삶을 요구했던 것으로 생각한다.


페트라, 광활한 나바타 문명

 


요르단이 자랑하는 페트라, 유네스코가 공인한 세계문화유산이다.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그리스도를 만난후 갔던 아라비아는 바로 이 나바트 왕국의 수도 페트라를 일컫는다고 한다. 로마식 지명으로 '아라비아 페트라'.

페트라의 시작은 좁고 높은 시크길로 시작된다. 시크는 아랍어로 협곡이라는 의미를 가졌다. 그늘이 되기도 하고, 사람들과 몸을 부딪치는 접점이 되기도 한다. 이 시크길의 끝에, 그 영상으로 여러번 보았던 엘카즈네의 모습이 보인다. 아, 첫 발견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캄캄한 밤이었다면? 아무도 없던 시크길을 두리번거리며 걷다가 드러난 그 끝. 좁은 틈을 지나 보이는 거대한 붉은 암벽건물의 모습. 그 발견자의 마음으로 본 엘카즈네의 모습은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엘카즈네는 보물창고라는 뜻인데, 새봄의 설명에 의하면 여기엔 사연이 있다고 한다. 건물 정면 제일 윗부분이 항아리 모양인데, 이곳에 나바트 인들의 보물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물을 꺼내겠다고 사람들이 이 곳을 올라가기도 했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원래의 계획은 아론의 산까지 가겠다였지만, 엘카즈네를 보고 원형극장까지 걷자 넉다운. 그대로 돌아갈 수는 없어서 왕족무덤지역이 보이는 어딘가를 기어올라갔다. 겁도 없다. 내려올 생각은 하지도 않고 덥석 올라가서 탁 트인 전경을 감상했다. 사람들이 개미같이 멀리 열주로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기묘한 붉은 벽의 색을 보고 있으면, 왠지 소설을 한 편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여기 숨어서 1년을 보낸다고 해도 아무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트라에서 보는 밤하늘은 어떨까 궁금했다.

고양이가 많은 어느 상점에서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고 있는데, 상점에서 파는 투박한 목걸이를 사는 외국인이 보였다. 내가 무심코, 저런 걸 사는 사람도 있네, 라고 했더니 새봄이 그렇게 말했다. 저 사람들은 물건을 보는 편견이 없다고, 그냥 만들어진 그대로를 좋아서 사는거라고 말이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뭔가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비하하고 있었다고 말이다. 여기에 왔으면 여기의 것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데, 저기 저 높은데서 건드리지도 않고 비교만 하고 있는 몹쓸 짓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붉게 물든 페트라, 그 페트라는 나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그런데 나는 어디서 그 페트라를 바라보고 있던 걸까?


붉은 사막의 그림자, 와디럼

 


와디럼은 요르단 여행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다. 요르단에서 쏟아지는 별들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인데, 그걸 못 보고 왔다. 광야길을 쉴새없이 달려온 탓에 체력이 바닥이었다. 입장료도 꽤 비싼 편이어서 그냥 돌아갈까 생각도 했는데,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사막에 발이라도 디뎌보자 생각하고 티켓을 끊었다. 사막투어는 지프차나 지프차로 개조한 승용차를 타고 하게 된다. 덜컹덜컹 엉덩이가 부서져라 달리는 할아버지 운전수님. 붉은 와디럼의 모습이 내게는 뭐랄까, 지쳐보였다. 저녁노을이 아련하게 사막을 비춘다. 로렌스 스프링은 영화 <아라비아 로렌스>에서 로렌스가 물을 찾아 먹던 곳이라 이름 붙여진 곳이라 한다. 새봄이 올라가 볼테냐고 하기에 고개를 저었다. 그냥 저기에 물이 있다고 믿어, 라고 말하며 사막의 모래바람을 몇 컷 찍고 바라보았다. 붉은 사막이라는 말이 어울리게 햇빛이 그대로 물감이 되어 모래를 적신 것처럼 붉디 붉었다. 페트라에서 본 붉은 사막의 여운이 여기에도 그대로 남아있다. 몇 천년을 이 사막을 떠돌던 이 붉은 모래들 입자 하나하나가 지친 기운을 내뿜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와디럼의 별빛은 후일로 기약하고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집으로 향했다. 피타를 여러가지 소스에 찍어먹었는데, 주로 콩을 갈아 만든 것이라고. 닭고기가 조금 지겨웠는데, 이 소스는 정말이지 쵝오! 아, 그립네.
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또한 버라이어티 했다. 세상에나, 도로에 가로등이 하나 없어서 도무지 앞 뒤를 볼 수가 없었다. 길을 한 번 잃었는데, 새봄과 얼마나 무서웠던지. 모래뿐인 시골길을 달리는데, 혹여나 뭐가 튀어나올까봐 무서웠다. 다행히 지나가는 트럭의 불빛에 의지하며 암만에 도착. 정말이지, 자려고 눕자마자 이게 꿈인가 싶었다. 이로서 내 운전경력에 또 다른 정점을 맛본 것 같다. 후에 돌아와 영화 <아라비아 로렌스>를 보니, 영화의 배경인 와디럼의 모습이 새로웠다. 아, 아라비아 로렌스는 재미없었다.

 - 자료참고 : <요르단>, 김동문 저


 와디무집은 아르논강과 사해가 만나는 곳이라고 한다. 요르단의 자연보호지역이자, 멋진 바위들 사이로 트래킹을 할 수 있다는 설레임에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다. 와디무집은 암만에서 아카바 방향으로 난 도로를 타고 가면 된다. 암만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렵지, 일단 빠져나오면 도로타기는 무척 쉽니다. 



 오늘은 내가 운전하는 날. 봄이의 훌륭한 가이드로 요르단 시내를 빠져나와 고속도로로 달리기 시작했다. 1시간 정도 가다보니 넓은 사해가 오른편으로 펼쳐지는데, 얼마나 환상적이던지! 사해는 푸르고 넓은 지중해 같았다. 사해는 오늘의 코스가 아니라 그냥 멀리서 감상!

 사해를 지나 1시간을 넘게 달리자 와디무집 브릿지가 보이고, 그 다리를 건너기 전에 왼쪽으로 들어서야 와디무집 트래킹 센터에 닿을 수 있다. 트래킹 예약은 이 곳에서 한다. 코스는 이지코스와 익사이팅 코스. 익사이팅의 악명(?)은 이미 들은 바가 있어서, 우리는 이지코스를 선택했다. (1인 12JD) 이지코스는 가이드 없이 우리끼리 가면 된다는 말에 허걱. 봄이와 구명조끼 하나만 의지한채 그 거친 계곡길을 걷기 시작했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나는 정말이지 그렇게 거친 계곡인줄은 꿈에도 몰랐다. 첫 난관은 바위오르기. 세상에나, 발디딜 틈도 없고 계곡물이 세차게 떨어지는 그 바위에 달린 봉도 다 떨어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바위 앞에서 서성이다가 봄이랑 거의 기어가다시피 바위를 올랐다. 시작에 불과했다. 로프에 의지해서 다시 바위 타고, 맨몸으로 바위에 기어오르고, 장난 아니었다. 우리 앞에는 구명조끼도 없이 네 명의 유럽청년이 가고 있었는데, 걔네는 뭔 재주로 이걸 다 올랐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거대한 절벽아래를 걷는 그 기분은 정말 짜릿했다. 마치 인디아나 존스라도 된 것 같은 기분. 목숨을 걸고 트래킹을 했다는 말이다. 이지코스의 마지막, 폭포 아래에 다다르자 다리가 풀려서 스르르 강가에 누워버렸다. 폭포의 굉음에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폭포에 등마사지 받아봐야 한다는 말에 다가갔지만 죽을 것 같았다. 저 물살에 맞았다간 뼈도 못 추릴 것 같았는데, 비행기값을 생각하며 왁하고 들어가 맞았다. 눈을 뜨지 못했다. 어찌나 세게 떨어지는지. 그 와중에 사진은 찍겠다고 브이를 그려가매 서 있었다는. 점심으로 싸온 주먹밥을 먹으며 저질체력을 원망할 뿐.
그 거센 폭포에 줄 하나만 의지해서 내려오는 익스트림코스 참가자들을 보면서, 학을 뗐다. 어디를 갔다가 오는지 그 높은 폭포 아래로 기어 내려오고 있었다. 으메, 겁도 없는 사람들.
나오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거의 물길에 미끄러지듯 쓸려 내려오다가 만난 마지막 고비. 진퇴양난의 급류지역이었다. 새봄이가 아무 말 없이 급류에 몸을 맡겨 떠내려 가는데, 영영 못 볼 줄 알았다. 봄이가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고 내려오라 한다. 지지배, 난 시집도 안 갔는데.... 겁많은 나도 목숨을 걸고 급류에 몸을 맡겼다. 뒈지는 줄 알았다. 물 왕창 먹고, 허우적대며 봄이를 찾았다. 울 뻔했다. 나오고 나니 재밌는 이 느낌. 우리가 다시 트래킹센터에 도착하자 어느샌가 도착한 네 유럽청년들. 멋진 몸매 자랑하며 햇빛에 서 있는데, 행복했다. 우리가 들어간 게 10시였는데 나오니 3시정도가 되었다.
여자 둘이서 그 험한 곳을 가다니. 우리 참 대단했다. 다시 데드씨하이웨이를 따라서 암만을 향하면서 봄이와 급류에서 죽을 뻔한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두 충청도 여자들의 말없는 급류타기. 우린 대단했다.


드디어 본격적인 요르단 여행 시작! 제라쉬와 움까이스 투어.


아침을 간단히 먹고 새봄네 부부와 함께 차를 렌트했다. 현대의 엑센트, 허름했지만 일주일간 여행길동무를 해주었다. 새봄신랑님께서 운전을 해주어 편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바라본 광야길. 설레였다.

제라쉬, 거라사에 남은 로마

제라쉬는 암만에서 2시간정도 걸린다. 성경의 거라사는 지금의 제라쉬이다. 제라쉬 지역은 유적지 발굴작업을 하고 있는 지역과 신도시로 나뉜다. 그 중간에 얍복강까지 이어지는 제라쉬강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를 중심으로 동서로 확장되었다고 한다.

제라쉬는 현존하는 로마시대의 대표적 도시로, 넓은 언덕에 신전과 원형극장, 열주로 등이 남아있다. 하드리아누스 개선문 앞에 서니 제라쉬 지역의 광대한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이 개선문은 AD129년~130년에 세워진 것인데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제라쉬를 방문한 기념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문을 들어서면 왼편으로 대형 경마장이 있는데, 공연을 할 모양인지 공사중이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나왔다.


제라쉬 중심부에 길게 늘어선 열주로는 마치 로마시대 속을 걷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대로 양편에는 상점들이 많았고, 보도 지하에는 하수도 시설도 되어 있다고 한다. 눈을 감고 잠시 그 때의 풍경을 생각해보았다. 지금은 폐허같은 이 곳에 가득했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이 곳을 달리던 마차와 그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무슨 사연을 가지고 살아갔을까.



열주로를 지나면 보이는 원형광장. 거대한 돌기둥으로 둘러싸인 이 곳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광장규모는 90*80m라고 한다. 제라쉬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는 이 곳은 과거에도 많은 축제가 열리던 광장이었을 듯 하다.

거대한 규모의 신전도 현기증이 날 정도로 컸다.

움까이스, 갈릴리 호수를 보다

암만에서 두시간 거리에 있는 움까이스는 성경의 가다라 지방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갈릴리호수를 내려다볼 수 있다고 한다. 해발 475m정도지만, 갈릴리 호수 주변의 해발고도가 약 -210m인 것을 감안한다면 실제 680m가 넘는 높은 언덕이라고 한다. 봄이의 설명에 의하면 이스라엘과 경계지역에 속하고, 골란고원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예수께서 귀신들린 자들을 치료하실때 돼지들에게 귀신을 옮겨 죽게했다는 그 거라사로 추정되는 곳이라 한다. (마 8:28)



이 곳에도 원형극장과 제라쉬보다는 작은 열주로가 남아있었고 그 옆으로 교회터와 극장 등 로마유적이 남아있었다. 움까이스 박물관이 있어 이 지역에서 발굴된 유적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 가운데 4세기경의 것으로 보이는 모자이크가 박물관 입구에 전시되어 있었다.
갈릴리호수는 낮게 내려온 구름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설레었다. 다시 한 번 갈 수 있다면 제대로 보고 싶은 이스라엘. 가깝고도 참 먼, 그런 나라다.

저녁을 먹고 방에서 놀며 남은 기간을 생각하는 나 자신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게 주어진 지금에 완벽하게 빠져들기는 이렇게 어려운 걸까. 나 자신을 소진시키지 말고, 최선을 다해 지금을 즐기자고 다짐했다.


비가 억수로 왔다. 일을 마무리하고 집에서 배낭을 잽싸게 싸는데 쏟아지기 시작한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작년에 터키 갈 때도 허겁지겁 사무실을 탈출했었는데, 이번에도 그런다. 아마 비행기나 타야 일을 떼버릴 수 있겠지.
콜택시를 불렀으나, 대화동엔 못 가겠다며 나를 버렸다. 하는 수 없이 배낭에 우산을 걸치고 큰 길에 나가 택시를 잡아타고 터미널로 향했다.
아, 대화동.

공항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넘어, 바로 티켓팅을 했다. 짐도 보냈는데, 터키항공 직원이 도하항공을 타지 않겠냐고 한다. 터키항공 타는 사람이 그렇게 많았나보다. 비쩍 마른 남자아이 하나가 하루키의 1Q84를 들고 나를 힐끔 쳐다봤다. 그 남자랑 나, 두 사람을 꼬셨나보다. 혼자니 상관없다고 했는데 결국 터키항공 타고 갔다. 정말 좌석이 가득 차서, 화장실 갈 엄두도 못냈다. 대신 자리는 괜찮은데 줘서 편하게 왔다.
내가 혼자 비행기를 타게 되다니. 생각만해도 어질어질했지만, 반면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기내식도 이것저것 잘 시켜 먹었다.
근데, 외롭더라.

터키에 당도한 것은 새벽 5시. 공항에 있기 뭐해서 비자를 받고 이스탄불 시내로 나갔다.
나가는 길에 중국 청화대학교에 다닌다는 한국 대학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지하철도 함께 탔다.
이스탄불 구시가지로 가는 지하철이 헷갈려서 미아될 뻔했다. 에고, 영어도 짧은데 큰 일날 뻔했지.

이스탄불 구경은 작년에 다 한터라 별 할 일 없이 톱카프궁전 정원에 홀로 멍때리고 있었다. 14시간이라는 대기시간을 혼자 때우려니 별로 아름답지 못했다. 벌러덩 누워서 잠들었는데 깨보니 12시였다. 공사하는 아저씨들이 깨우는 바람에 깼지, 아니었음 계속 잤을거야. 아저씨들이 나를 보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부스스 일어나 궁전을 빠져나갔다. 우아하게.
슬슬 걸어서 전에 봐둔 마트에 가서 천도복숭아를 몇 개 샀다. 어슬렁 거리고 시내를 쏘다녔다. 아, 시간 더럽게 안 가더라. 갔던 궁전 또 들어가기도 그렇고 사람은 어찌나 많은지. 트라브존에서 먹었던 연어구이 생각나서 미치는 줄 알았다. 한적하고 재밌었는데.
버티다 못해 공항으로 돌아와 커피마시며 트윗질하다 암만가는 비행기를 탔다.

암만에 온 한국사람은 나 뿐이었다. 가끔 독일사람들 몇 보이는 것 빼고는 아시아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비자를 10디나르 주고 샀는데, 비자심사에서 이 남자가 뭘 자꾸 묻는다. 중동사람들 영어발음 정말 못 듣는데...(하긴 뭔 잘 알아들어서) 어디가냐, 어디서 묵을거냐, 친구집 전화번호대라 해서 그거까지 알려주고서야 나올 수 있었다. 친구 이름까지 알려달래서 '새봄'이라고 했더니 이상하게 발음하고, 쳇. 그래도 조금 무서웠다.

짐을 찾아서 드디어 나왔다. 새봄이의 얼굴이 보였다. 울 뻔했다. 아, 외로운 하루가 드디어 끝났구나 싶어서. 드디어 요르단에 왔다는 생각에 흥분되어서. 봄이와 버스를 타고 봄이네 신혼집으로 갔다. 아, 정말 피곤했다.  - 7월 17일

* 첫날은 사진 안 찍었음. 이 날은 공식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는 날.



가장 맘에 드는 사진이다. 세상 가장 편한 옷차림으로 아무 생각없이 흙길을 누볐던 날.
그 날의 난 최고였어. 으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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