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은 눈을 통해 사람의 안으로 들어왔다가 마음을 통해 다시 형상화 된다.


 
내가 터키에서 본 풍경은 내 눈을 통해 들어와 마음을 통과했다. 그리고 그 풍경은 다시 만들어진다. 여행을 하면서 나는 내가 본 수많은 풍경들에 의미와 감정을 담아 기억으로 저장하는 연습을 했다. 다시 일상에서도 나는 그 연습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풍경은 계속되고 있고, 그런 과정은 내 안에 새로운 에너지를 계속 채워주기 때문이다.



재충전은 낯선 곳으로의 여행만으로 채워지지는 않는다. 그 여행을 갈 수 있는 것은 내가 돌아올 것을 믿고 내 자리를 대신해 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의외로 큰 힘이 된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그 힘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나 혼자서 만들어 낼 수 없는 힘이다.


- 참고자료 : 렛츠고 터키 / 터키의 유혹



이스탄불은 터키의 첫인상이다. 화려한 모스크와 활기찬 터키인의 모습, 전차라도 등장할 것 같은 돌길 등이 독특하다. 그 돌길로 트램이 다닌다. 이스탄불은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공존하는 도시이다. 이스탄불은 이번이 두 번째다. 대학교 때 일주일 정도 머물던 적이 있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을 별로 없다. 아마 이스탄불이 크게 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이스탄불은 과거의 자리가 더 크게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행의 막바지에 둘러본 곳은 톱카프 궁전. 오스만 제국을 살았던 술탄들이 300년 가까운 세월동안 누렸던 화려한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곳이었다. 에메랄드와 금, 은 등 화려한 보석들이 박힌 술잔과 무기, 장신구 들은 주인을 잃은 채 전시되어 있었다. 이것들이 가진 처음의 화려함은 세월이라는 풍랑에 빛을 잃고, 모양을 잃었다. 제국을 살았던 술탄들도 이것들로 자신을 화려하고 위엄있게 보이려 했지만 결국 세월이라는 풍랑을 이기지는 못했다. 아마 이 왕들은 불치병에 걸렸던 것 같다. 영원에 대한 불치병. 자신의 육신과 정신이 언젠가 허물어진다는 사실,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사실 앞에 그들은 승리하지 못했다. 톱카프는 인생의 가치란 물질의 양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를 분명하게 알게 해 준다.


이번 여행에서 최악의 코스를 뽑는다면 바로 파묵칼레였다. 일단 파묵칼레의 석회절벽 등은 인상적이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아우라에 맞게 환상적이었다. 그리고 히에라폴리스의 거대한 원형극장도 볼만했다.

하지만 처음 파묵칼레에 들어섰을 때, 이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지 유럽인들의 동네수영장인지 모를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수영복을 입고 놀고 있었다. 입구부터 신발을 벗게 하고 호루라기를 불어대는 통에 정신이 없었다. 화장실이나 편의시설 등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풀장 안에서만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있어, 나처럼 돌아보고 갈 요량으로 온 사람들에게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더욱 실망스러웠던 점은, 사실 여행책에 나온 풍경이 다였다는 사실이다!






에이르디르는 에이르디르 호숫가에 위치한 호반도시이다. 파묵칼레를 가던 사람들이 호수의 모습에 반해 들러가곤 한다. 호수를 향해 뻗어나간 반도는 섬 두 개가 육지와 이어지면서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작은 이 동네는 사람도 잘 보이지 않고 조용하기만 하다. 마치 바다처럼 푸른 호수는 오래 머물게 만드는 힘이 있다. 매일 바쁘고 피곤했던 날들이 마치 아주 오래 전의 일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에이르디르는 느긋하고 게으른 것이 당연하다는 듯한 기분이 드는 곳이다.



이 동네에서 동네불량배들의 추격을 받아 야밤에 난리쳤던 것이 생각난다. 카페트 집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삥 뜯겼을지도.


카파도키아는 네우쉐히르, 니이데, 악사라이를 잇는 삼각형 안에 있는 지역으로, 페르시아인들은 '좋은 말들의 나라'라는 뜻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또 카파도키아는 기독교가 일찍 들어왔는데, 이는 아마 실크로드가 지나가는 교역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늘날의 카파도키아는 수천만년에 걸친 지각변동으로 만들어졌다. 지금부터 약 6천만년 전, 세 번에 걸친 지각변동으로 토로스 산맥(터키 남부지역, 지중해와 나란히 뻗은 산맥임)이 융기하자 북쪽의 지각이 짓눌리면서 활화산들이 깨어났다. 에르지예스 산과 하산 산, 그리고 조금 아담한 괼류 산이 용암을 뿜어냈고, 부드러운 먼지 위에 단단한 용암이 쌓였다. 여러 차례에 걸쳐 형성된 지층은 또 다른 지각변동으로 우그러지고 갈라졌으며, 빗물과 바람으로 부드러운 부분은 녹아내리고 단단하지 못한 부분은 기묘한 모양의 계곡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마치 모자를 쓴 모습으로 굳어진 기둥들에 주민들은 페리바자(요정의 굴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괴뢰메 야외전망대에서 바라본 도시의 모습은 우주 속 낯선 도시에 온 기분이 들게 했다. 화산이 폭팔하면서 형성된 기괴한 모양의 암석들이 절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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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시아로 가는 버스에서 한 터키청년이 아마시아에 뭐하러 가느냐는 질문을 했다. 아마시아는 특별한 유적이 많지 않은 작은 도시라 아마 그런 질문을 한 것 같다. 하지만 여행이란 사람들이 가보지 않은 곳 일수록 새롭지 않은가! 역사적 가치가 엄청난 곳에 간다해도 사람들의 시선에 따라 그 가치는 새롭게 평가된다. 역사가들의 평가는 단지 참고사항일 뿐이다. 역사가 머물다간 흔적에서 여행자 스스로가 감격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들의 평가는 의미가 없다.



아마시아에 도착한 것은 밤이었다.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 숙소를 잡았다. 그리고 숙소의 커튼을 걷는 순간,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펼쳐져 있는 석굴왕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흑해로 흐르는 예쉴 으르막(초록빛 강)을 중심으로 도시들이 뻗어있다. 강의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다. 도시의 어딜가든 석굴왕묘가 보인다. 그럴싸한 조명도 달아놓아 밤에는 전설 속 도시를 보는 기분도 느껴진다. 이 왕묘는 후에 감옥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앞에 흐르는 강물과 절벽이 주는 위압감과 지하동굴의 차가움은 무덤보다는 감옥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아마시아는 흑해지역에 속해있지만 흑해에서는 직선거리로 약 80km정도 떨어져있는 분지이다. 해발고도 1,000m 정도의 산지를 넘어가야 한다. 작은 소도시로 깔끔하고 안정적인 느낌이다. 아마시아 박물관은 로마-비잔틴-오스만의 지배를 받으면서 바뀐 생활양식과 유적(토기, 동전, 무기, 램프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로마시대의 유물에서 우아한 예술미가 넘쳤다면, 오스만 지배시대로 오면서는 코란과 무기, 실용적인 생활방식이 엿보이는 유물이 많다. 야외정원에는 미라도 전시되어 있는데 아무래도 모형인 것 같았다.




도시를 관통하고 있는 예쉴 으르막이 정겨웠던 것은 대전을 흐르는 갑천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빡빡한 회색건물 속을 유연히 흐르는 강은, 도시사람들에게는 위로나 다름없다. 숲과 달리 강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머물러 있지 않고 운동하고 있는 그 강을 보면, 게으르지 말아야지, 편한 것에 안주하지 말아야지 마음 먹게 된다. 도시의 활기이자, 진보하는 세상의 에너지가 바로 '흐르는' 강이다.

바다와 달리 강은 그 지역 사람들의 삶과 '관계'를 형성한다. 대전만 해도 갑천에 대한, 유등천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이 다르다. 그것은 그 강이 그들의 눈에 보이고, 삶에 영향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강을 삶과 '관계'된 것으로 보지 않고는 강을 이해할 수 없다.

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경제적 가치만 강조하는 대통령 때문에 위협을 받고있는 금강이 떠올랐다. 금강에 가서 새들이 쉬는 모습과 물고기들이 뛰는 모습, 노을빛에 물든 금강을 아는 사람일수록 근심은 커진다. 그것은 강에 마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강에 자신의 삶을 담가보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연과 살 부비는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조금 더 자연과 살 부비는 것, 그것이 내가 사는 땅에서 개발이라는 거인에 맞서 이길 중요한 무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꿈을 꾸고 있는 줄 알았다. 카르스로 가는 버스에서 맞이한 새벽, 잠시 눈을 떠서 창 밖을 봤는데 보랏빛 공기가 너른 호반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시간이 더 흐르자 탁트인 초원이 빛 아래 모습을 드러냈고, 거대한 녹색의 숨소리가 대지를 감싸고 있었다. 터키의 평야는 정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그 평야를 뒤덮고 있는 꽃밭은 보는 이의 가슴에도 대지의 기운을 안겨준다. 카르스는 시작부터 놀라움이었다.

이와 더불어 놀라웠던 사실은 카르스라는 시골마을에서는 나의 짧은 영어조차 통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숙소를 찾기 위해 길을 물으면 다들 터키말로 대답해주었다. 이 날부터 손짓, 발짓이 난무(?)하는 대화를 하기 시작했고 여행 중반에는 나는 한국말로, 상대방은 터키말로 대화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카르스에는 유령도시라고 불리우는 아니유적지가 있다. 아니는 고대부터 아르메니아의 성곽도시로 존재했었고, 비잔틴과 아랍세계의 완충역할을 담당하던 아르메니아의 영토였다. 후에 몽고의 침입과 지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채, 지금은 버려진 도시로 남겨져 있다. 당시에 세워졌던 술탄의 궁정과 교회, 대성당 등은 세월의 상처를 고스란히 받은 채 남아있다. 그래도 형태가 가장 잘 보존된 곳은 아니대성당이었다. 부분적으로 허물어진 돔과 지붕을 두 개씩 쌍을 이룬 기둥위에 놓인 아치 네 개가 받치고 있다. 중앙 돔은 무너져 있었다. 성 그레고리오 교회도 외관은 그래도 잘 보존되어 있었다. 내부에는 예수와 최후의 만찬 그림이, 돔에는 승천 장면과 선지자들의 성화가 그려져 있다.



지금 생각해도 아니유적지는 다녀본 곳 중 가장 인상적인 곳이었다. 한쪽은 러시아 국경, 한쪽은 아르메니아 국경, 단절된 나라들 사이의 공간이라는 점, 거의 파괴되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예배당과 탑들에서 느껴지는 폐허의 이미지, 6월의 뜨거운 햇빛과 바람의 숨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조용하거 광활한 평야였기 때문이다.

어떤 나라든 관광지를 손꼽을 때는 그 나라가 가장 화려했던 시기의 유적이나 유물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터키에서도 수도 앙카라보다 이스탄불이 더 잘 알려져 있다. 가장 융성한 시기의 모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니에서 만난 폐허는 화려함 이면에 감춰진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사람의 삶에는 지난 시간이 남기고간 상처와 현재를 지나는 외로움과 대면하는 과정이 반드시 겪게 된다고 생각한다. 아니는 바로 그런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아마 살면서 그런 순간에 부딪칠 때마다, 나는 아니의 폐허에 걸터앉아 그 순간을 바라볼 것 같다.





트라브존은 흑해 동부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흑해연안과 이란을 연결하는 도로의 초입에 있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라고 한다. 그리스 식민지 개척자들에 의해 건설된 도시로 로마, 오스만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경쾌하고 빠른 호론춤을 즐기며, 축구를 좋아한다고 한다. 내가 다녀본 트라브존 시내는 보즈테페로 이어지는 골목주거지와 아야소피아로 향하는 도심, 다른 흑해의 도시로 향하는 외곽도로가 있는 곳이었다.


시청사 옆 메이단 공원은 광장역할을 하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호기심 많고 친절하다. 길을 지나가면 민망할 정도로 쳐다보지만, 악의가 있는 건 아니다. 길을 물으면 최선을 다해 알려주고, 모르면 여기저기 물어봐주기도 한다. 가끔 같이 사진찍자고 조르기도 한다.


  트라브존의 빵은 터키의 어느 대도시보다 크고 맛이 좋다. 빵집은 이른 아침에도 주민들 발길이 끊이지 않고, 큰 봉지로 몇 개씩이나 사간다. 사람들이 많이 먹는 빵은 시밋(simit)인데 고소하고 질긴(?) 빵이다. 거리 어디서든 흔히 팔고 있는 빵이다. 트라브존은 멸치가 유명해서, 멸치가 많이 잡히는 1월~2월에는 시내가 멸치 굽는 냄새로 진동한다고 한다. 멸치 외에도 송어(알라발륵), 숭어(케팔) 등이 맛있다. 과일은 체리가 가장 맛있다.

 

내가 갔을 당시 메이단 공원에서 축제가 열려 호론춤을 구경할 수 있었다. 호론은 트라브존과 주변지역의 고유한 전통 춤으로, 남자 춤과 여자 춤이 있다. 호론은 터키 내의 각종 민속춤 대회를 휩쓸 정도라고 한다. 케만체라는 악기를 사용하며, 흑해지역의 사투리가 들어간 일종의 랩 음악을 곁들인다. 발짓은 따라할 엄두가 나지 않게 빠르고 경쾌하다. 간간히 들어가는 추임새가 몸을 들썩거리게 한다. 호론을 본 사람이라면, 트라브존의 이미지를 경쾌하고 힘있는 도시로 기억하게 된다.


<수멜라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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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asileian 2010.01.14 11:30 신고

    마냥 부럽기만한 여행기....



일단 보고를 해야해서, 사진만 후루룩 붙여 만듬.
아, 또 가고 싶다!


  1. basileian 2009.10.27 19:56 신고

    So Coooooooooooooool~~~~


터키 어딜가나 있던 씨밋!
설탕과 수입밀가루의 조합인 우리나라 빵보다 고소한 맛.
위 빵은 트라브존 울루소이 사 옆 빵집에서 구입.
그 빵집 불나게 팔리던 걸.

- 찍사 : 유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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