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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56

하울링 제목이 왜 하울링일까 궁금했는데, 감독이 시인이라 그런지 제목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울부짖음'으로 끝낼 제목은 아닌 것 같다. 늑대개 질풍이에게 입력된 내용은 지극히 객관적이고 단편적인 사실들이었지만, 질풍이에게 출력된 내용의 파장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매매와 포주, 마약, 자본주의의 악순환이 여전히 우리 사회의 음지에서 여전히 존재한다. 성매매-마약-경찰구도, 이미 식상한 이야기가 되어버린 그 구조 안에 늑대개가 있다. 늑대개는 아쉽게도 이야기 중반부에 등장해 애초부터 잔뜩 줄 수 있었던 긴장감을 반감시켰다. 초반부가 너무 느슨했다. 이나영의 연기가 주는 '어쩔 수 없는 느슨한 느낌'을 송강호가 커버하기엔 존재감이 컸다고나 할까. 이나영이 형사로 등장하는 것에 .. 2012. 2. 20.
무산일기 비가 많이 오는 날, 이 영화를 본 건 조금 실수였던 것 같다. 기분이 썩 좋은 영화는 아닐거라 생각은 했지만, 뒷맛이 영 씁쓸했다. 그건 뭐랄까, 아쉬움 같은 것이었다. 나는 전승철에게 '순정'을 바랬나보다. 친구를 배신하지 않고, 좋아하는 여자를 끝까지 좋아하는 그런 영화에서나 보여주는 순정. 그건 탈북자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일지도 모르겠다. 탈북자 전승철의 남한에서의 고된 일상을 마치 다큐처럼 보여주는 이 영화는 외국에서 날려주는(?) 상을 많이 받은 모양이다. 보러온 이들이 꽤 있었다. 각설하고,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전승철은 과연 길가에 쓰러진 개를 보고 어떻게 반응할까. 가서 끌어안을까, 그냥 지나칠까. 나는 그가 그냥 지나칠거라고 직감했다. 그가 머리를 자.. 2011. 5. 11.
누들(noodle) 곰팡내 풀풀 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우연히 본 영화. 누들의 귀여운 표정을 보았으니, 이 영화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손짓, 발짓, 표정 하나하나 귀여운 그 꼬마를 두고 간 가정부 덕분에 사랑을 잃고 살아온 한 여자의 삶이 빵을 만드는 누룩처럼 몽글몽글 움직이기 시작한다. 한 시간만 아이를 봐달라는 중국인 가정부가 강제 출국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미리. 엄마를 기다리던 아이는 테이블에 놓인 누들을 후루룩후루룩 감쪽같이 해치워 ‘누들’이란 애칭이 생기고, 가족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 미리는 누들을 엄마에게 데려다주기 위해 아이를 여행가방에 넣어 베이징으로 가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미리의 언니는 자신의 사랑을 용기있게 찾아가고, 미리 또한 사랑을 잃은 아픔을 다른 방식으로 치유하는 모습.. 2011. 4. 6.
아큐 - 어느 독재자의 고백 I see my light come shinning. I shall be released. 밥 딜런의 목소리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녹색 운동화를 신은 여균동 감독. 목소리가 우아하시다. 독재를 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독재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향해, 그 사람이 말한다. 독재자의 십자가를 진 명배우가 등장한다. 연극의 꼭지는 권력, 독재자, 민주주의, 죽음, 그리고 앞서 간 이(노무현일까?). 속사포로 대사를 뱉어내는 명배우의 연기력에는 빈틈이 없었다. 표정, 대사를 뱉는 호흡, 캐릭터에 대한 몰입도 과연 배우는 배우구나 싶게 완벽했다고 생각한다. 여균동 연출의 등장으로 중간중간 명계남씨의 갈등과 배우로서의 내면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극적효과도 노렸다. 재미있었다. 재미는 곧 몰입의 정도다. 명배우.. 2011. 1. 25.
브라보 재즈 라이프 마음이 멍하던 어느 일요일, 아주 우연히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냥 내가 극장에 가고 싶던 그 날, 이 영화가 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을 툭툭 치고 가는 단어들 때문에, 혈액을 타고 흐르는 재즈의 선율 덕분에 행복했다. 브라보 재즈 라이프는 우리나라 재즈 1세대들의 이야기이다. 재즈작곡가인 이판근 선생을 비롯해 김수열(섹소폰), 류복성(드럼/퍼커션), 강대관(트럼펫), 박성연(보컬), 이동기(클라리넷), 조상국(드럼) 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함께 등장하는 그들의 연주, 마치 종합선물세트처럼. 영화도입에 나즈막히 울려퍼지는 목소리, 음악이 바로 인생이었다는 고백은 충분히 압도적이다. 영화 내내 시선을 잡아끈 사람은 바로 류복성 선생. 그 분은 정말, 자유로운 영혼의 표본이다. 개구.. 2011. 1. 11.
토일렛(Toilet) 카모메 식당의 담백한 감동을 좋아한다면, 토일렛도 강력추천한다. 늘 같은 색 셔츠와 바지를 입고 정적만이 감도는 연구실에 출근하여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묵묵히 일만 하는 레이.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그에게 공황장애인 형 모리와 제멋대로인 여동생 리사, 고양이 한 마리, 그리고 화장실에서 나올 때마다 깊은 한숨을 내쉬는 수상한 할머니가 짐처럼 남겨진다. 설상가상 혼자 살던 아파트에 불이 나고,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가족의 의미를 깨닫는 내용이다. 토일렛의 장점은 소품이었다. 가족이 사는 집에 작은 소품들과 텔레비전, 재봉틀 하다못해 레이가 사온 스시, 할머니가 굽는 군만두, 형인 모리가 만드는 치마까지 너무 감각적이어서 눈이 즐거울 정도였다. 일상과는 이질감을 주기도 했지만 말이.. 2010. 12. 27.
부당거래 류승완 감독의 영화는 늘 얘기만 들었지 본 적은 없었다. 왠지 폭력적이거나 씁쓸하거나 둘 중 하나인 영화만 내와서 그랬다. 안 그래도 피곤한 심신인데 말이지.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는데, 볼만한 영화가 이 것 밖에 없어서 선택한 부당거래. 음, 재밌었다. 류승범, 황정민, 유해진의 연기는 흠잡을데 없었다. 마치 정말 검사나 깡패나 된 것처럼 어찌나 캐릭터 소화들을 잘 하던지. 영화의 전체 진행도 잘 짜였고, 적당히 반전도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시달려야 했던 씁쓸함은 역시나 씁쓸하다. 가진 자는 살아남고 살려고 애쓰던 자들은 모두 죽고 마는 현실은, 감독이 너무하다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우리는, 영화에서 희망이라는 것을 보고 싶기도 한데. 일말의 희망조차 없이 오직 가진 자만이 살아남는 이 약.. 2010. 12. 2.
이층의 악당 달콤살벌한 연인을 재밌게 봤다면, 이 영화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좀 더 까칠한 박용우와 좀 더 이상한 최강희를 한석규와 김혜수가 나누어 맡았다고 보면 된다. 두 배우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이 훌륭하고, 착하디 착해 허를 확 찌르는 대사들은 압권. 김혜수는 늘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해 왔는데, 여기서는 엉뚱하기 이를데없어 신선했다. 연주(김혜수분)의 집에서 고가의 찻잔을 찾으려는 한석규의 노력이 그 집안 상황과 엉키면서 눈물겹게 그려진다. 지하창고에서 며칠을 보내는 일이나, 원치 않게 애인관계가 되고, 유럽연합 기준으로 딸을 학교에 보내도록 종용하며, 연주를 출근시키려는. 아직도 귀에 남는 그 대사. 연주씨, 출근해야해요. 출근하는거예요~ 영화에서 캐릭터가 주는 재미를 다양하게 보여주는 것도 영화의 .. 2010. 12. 2.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 지현언니가 요즘 물어다주는 연극표로 쏠쏠하게 문화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바로바로바로 오아시스세탁소습격사건! 혼탁한 세상 가운데 자리잡은 허름한 오아시스 세탁소, 그 곳엔 아버지의 대를 이어 30년째 세탁소를 고집해온 강태국이 어리숙한 광대 세탁배달부 염소팔, 40년 전에 어머니가 맡겼던 세탁물을 찾아 희망을 갖게 되는 이석운, 멀쩡한 옷을 찢고, 문양 넣는 신세대 여학생, 명품 매니아족 나가요 아가씨, 그럴 듯한 무대 의상을 빌리고자 하는 가난한 연극배우 등 다양한 소시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재미나게 보여준다. 아버지가 적어놓은 노트를 보면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강태국의 모습에 나도 펑펑 울고 말았다. 아마 그 애처롭고 그리운 마음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감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무리가 .. 2010. 7.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