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왜 하울링일까 궁금했는데, 감독이 시인이라 그런지 제목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울부짖음'으로 끝낼 제목은 아닌 것 같다. 늑대개 질풍이에게 입력된 내용은 지극히 객관적이고 단편적인 사실들이었지만, 질풍이에게 출력된 내용의 파장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매매와 포주, 마약, 자본주의의 악순환이 여전히 우리 사회의 음지에서 여전히 존재한다.
성매매-마약-경찰구도, 이미 식상한 이야기가 되어버린 그 구조 안에 늑대개가 있다. 늑대개는 아쉽게도 이야기 중반부에 등장해 애초부터 잔뜩 줄 수 있었던 긴장감을 반감시켰다. 초반부가 너무 느슨했다. 이나영의 연기가 주는 '어쩔 수 없는 느슨한 느낌'을 송강호가 커버하기엔 존재감이 컸다고나 할까. 이나영이 형사로 등장하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컸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형사인 이나영은 너무 참했다. 조금 더 거친 연기를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이나영이 욕을 하는 장면이라, 대단하지 않은가!) 송강호와 조연들의 연기는 캐릭터 자체의 식상함 때문인지 그냥 '역시~'였다.
전체적으로 이야기가 엉성하다는 느낌이었다. 뭔가 얼개는 있는데 꼼꼼하진 않다보니 긴장감도 떨어지고 소재가 아깝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많이 아쉬웠다. 좀 더 세련된 기술이 들어갔으면 괜찮았을텐데, 내가 감독이 아니라 뭐라고 얘기는 못하겠고.^^; 유하 감독과 이나영을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볼만한 영화!


비가 많이 오는 날, 이 영화를 본 건 조금 실수였던 것 같다. 기분이 썩 좋은 영화는 아닐거라 생각은 했지만, 뒷맛이 영 씁쓸했다. 그건 뭐랄까, 아쉬움 같은 것이었다. 나는 전승철에게 '순정'을 바랬나보다. 친구를 배신하지 않고, 좋아하는 여자를 끝까지 좋아하는 그런 영화에서나 보여주는 순정. 그건 탈북자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일지도 모르겠다. 탈북자 전승철의 남한에서의 고된 일상을 마치 다큐처럼 보여주는 이 영화는 외국에서 날려주는(?) 상을 많이 받은 모양이다. 보러온 이들이 꽤 있었다.
각설하고,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전승철은 과연 길가에 쓰러진 개를 보고 어떻게 반응할까. 가서 끌어안을까, 그냥 지나칠까. 나는 그가 그냥 지나칠거라고 직감했다. 그가 머리를 자르고, 양복을 살 때부터 그의 눈빛은 절실함이 사라진지 오래였다. 비굴함도, 간절함도 없는 눈이었다. 오랫동안 개를 바라본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개를 자신과 동일시 했을까, 아니면 타자화 시켰을까. 영화내내 그 개는 전승철 자신처럼 보였지만, 아니었다. 전승철은 이미 자신을 포기했다. 친구의 돈을 돌려주지 않았을 때부터, 그는 자기가 지켜온 모든 것을 포기했던 것 같다. 그래서 개도 그렇게 버려둘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왠만하면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씁쓸함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결말이었다. 아, 그래 외면하고 싶은 것일지도. 하지만 언제까지나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젠가는, 나의 일상에도 그들이 찾아올 수도 있기 때문에.

 

 곰팡내 풀풀 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우연히 본 영화. 누들의 귀여운 표정을 보았으니, 이 영화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손짓, 발짓, 표정 하나하나 귀여운 그 꼬마를 두고 간 가정부 덕분에 사랑을 잃고 살아온 한 여자의 삶이 빵을 만드는 누룩처럼 몽글몽글 움직이기 시작한다.
 한 시간만 아이를 봐달라는 중국인 가정부가 강제 출국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미리. 엄마를 기다리던 아이는 테이블에 놓인 누들을 후루룩후루룩 감쪽같이 해치워 ‘누들’이란 애칭이 생기고, 가족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 미리는 누들을 엄마에게 데려다주기 위해 아이를 여행가방에 넣어 베이징으로 가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미리의 언니는 자신의 사랑을 용기있게 찾아가고, 미리 또한 사랑을 잃은 아픔을 다른 방식으로 치유하는 모습이 흥미롭다.
 
이제 어떻게 할거야?
두려워하지 않을거야.

이 영화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말은, 누들을 가방에 넣어 가는 비행기 안에서 미리와 길라가 나눈 이야기였다. 길라가 여행작가인 마티와 사랑하는 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형부를 두고 어떡할거냐는 미리의 말에 그녀는 불안한 눈빛을 보인다. 사랑에 실패한 눈빛. 미리는 앞으로 어떡할거냐는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언니는 이렇게 대답한다. 두려워하지 않을거라고. 두려워하다가 이지(형부)도 잃고, 마티마저 떠나보냈다고. 무엇을 선택하든지 두려워하지 않을거라고. 그녀는 마티를 사랑하기로 선택한다. 두려움없이. 그것을 보는 미리의 마음은 어땠을까?
 미리의 아픔을 이해한 것은 형부인 이지도, 언니인 길라도 아니었다. 아픔을 이해한다고 할 때, 자신의 아픔을 들이대며 그것이 치유라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아픔의 약은 사랑이다. 사랑으로 인한 아픔이라 할지라도 그 약은 사랑이다. 명확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을 바라고, 사랑을 하고 살아가는 것 아닐까.


I see my light come shinning. I shall be released.
밥 딜런의 목소리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녹색 운동화를 신은 여균동 감독. 목소리가 우아하시다. 독재를 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독재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향해, 그 사람이 말한다. 독재자의 십자가를 진 명배우가 등장한다.
연극의 꼭지는 권력, 독재자, 민주주의, 죽음, 그리고 앞서 간 이(노무현일까?). 속사포로 대사를 뱉어내는 명배우의 연기력에는 빈틈이 없었다. 표정, 대사를 뱉는 호흡, 캐릭터에 대한 몰입도 과연 배우는 배우구나 싶게 완벽했다고 생각한다. 여균동 연출의 등장으로 중간중간 명계남씨의 갈등과 배우로서의 내면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극적효과도 노렸다. 재미있었다. 재미는 곧 몰입의 정도다. 명배우는 아마 그 연극에서만큼은 관객을 '통치'하고 있었다.
c'set ne pas une 보온병. 초현실주의 안상수옹의 존재의 역설을 표현한 한 마디. 집에 와서도 피식 웃게 만드는 그 대사. 루마니아의 독재권력의 상징인 차우체스크가 등장할 때마다 가슴이 섬뜩했다. 차우체스크의 아이들이 대한민국에서도 만들어지는 중일까봐 두렵기도 하다.
마음껏 원망해라. 단 한사람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독재자의 마지막 외침. 이 또한 섬뜩했다. 이 외침은 비단 오늘만의 외침은 아니었으리라. 독재자의 역할을 할 누군가는 또 다시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바로 지금 이 시대의 공포.
아큐를 연기하는 명계남씨를 보면서 십자가가 떠올랐다. 그는 독재의 시대에 "독재자를 연기하는 십자가"를 지고 아큐를 연기하고 있다. 스스로 고통스러워하면서. 그의 아큐가 과연 구원을 보여줄까? 나는 그가 오르는 골고다 길의 구경꾼일 뿐일까.
기왕 이렇게 된 거 맘놓고 편하게 사는거야. 아큐가 했던 이 대사는, MB 어록 중 하나였다. 이처럼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말이 또 있을까. 우리가 목표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떨쳐내고, 냉소가 전공이고 절망이 일상인 채로 어려움 없이 살고 싶은 욕망. 하지만 구경꾼이 된다면 해방은 없을 것이다. 그도 고백하지 않는가. 등장과 퇴장은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고. 그렇다. 등장시킨 것이 '우리'라면 퇴장시켜야 할 의무도 '우리'에게 있다. 그 우리 속에서 나는 나의 탓을 해야 한다. 나는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된다.

마음이 멍하던 어느 일요일, 아주 우연히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냥 내가 극장에 가고 싶던 그 날, 이 영화가 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을 툭툭 치고 가는 단어들 때문에, 혈액을 타고 흐르는 재즈의 선율 덕분에 행복했다.
브라보 재즈 라이프는 우리나라 재즈 1세대들의 이야기이다. 재즈작곡가인 이판근 선생을 비롯해 김수열(섹소폰), 류복성(드럼/퍼커션), 강대관(트럼펫), 박성연(보컬), 이동기(클라리넷), 조상국(드럼) 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함께 등장하는 그들의 연주, 마치 종합선물세트처럼. 영화도입에 나즈막히 울려퍼지는 목소리, 음악이 바로 인생이었다는 고백은 충분히 압도적이다.
영화 내내 시선을 잡아끈 사람은 바로 류복성 선생. 그 분은 정말, 자유로운 영혼의 표본이다. 개구장이의 미소를 간직한 채, 퍼커션을 두드리는 모습은 인생을 재즈로 받아들인 자의 몰입이었다. 다음은 이판근 선생. 곧 허물어질 건물에서 재즈의 역사를 지켜나가고 있었고, 한국의 재즈를 고민하고 있는 노익장의 모습은 나를 긴장시켰다. 나를 긴장시킨 것은 바로 그 몰입한 인생, 하얀머리와 주름진 얼굴로 몰입하는 그 열정의 얼굴들이었다. 박성연 선생이 또 나즈막히 말한다. 삶을 지탱해온 열정을 잊지 말자고, 하지만 외로움은 가져가지 말자고. 그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열정도 없이 외로움만 키우는 내 삶이 서글퍼서였을까. 아니면 부끄러움일까.
선물처럼 들리는 후배들과의 공연, 그 중에 <류복성의 수사반장>은 내 귀를 사로잡았다. <moonblow>도 기가 막힌다. 음과 음 사이의 짧은 정적, 그 사이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신관웅 선생의 피아노는 정확하게 보여준다.
자주 듣던 쳇 베이커나 존 콜트레인, 빌리 할리데이보다 더 땡기는, 살아있는 재즈의 다른 역사인 그들.
내 몸에 재즈가 흐르면, 영혼이 자유로와진다. 그것이 믿어진다. 바로 그들 덕분이다. 1월 28일, 그들이 공연을 한다. 꼭 가야지. ★★★★☆


카모메 식당의 담백한 감동을 좋아한다면, 토일렛도 강력추천한다.
늘 같은 색 셔츠와 바지를 입고 정적만이 감도는 연구실에 출근하여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묵묵히 일만 하는 레이.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그에게 공황장애인 형 모리와 제멋대로인 여동생 리사, 고양이 한 마리, 그리고 화장실에서 나올 때마다 깊은 한숨을 내쉬는 수상한 할머니가 짐처럼 남겨진다. 설상가상 혼자 살던 아파트에 불이 나고,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가족의 의미를 깨닫는 내용이다.
토일렛의 장점은 소품이었다. 가족이 사는 집에 작은 소품들과 텔레비전, 재봉틀 하다못해 레이가 사온 스시, 할머니가 굽는 군만두, 형인 모리가 만드는 치마까지 너무 감각적이어서 눈이 즐거울 정도였다. 일상과는 이질감을 주기도 했지만 말이다.
토일렛의 장점은 음악에도 있다. 특히 모리가 연주하는 베토벤과 리스트 곡들은 영화 속 인물들의 긴장감을 해소해주는 첫번째 변화였다. 인물들이 두리번거리지 않고, 앞을 향해 나아가도록 만드는 축포였다고나 할까.
토일렛의 중심인물은 역시 할머니인 모타이 마사코. 세 남매의 다양한 개성을 하나로 모아주는 중심축 역할을 한다. 그녀의 대사는 모리, 쿨 두 마디였음에도 세 남매를 이해하고 감싸주는 캐릭터를 굳건하게 보여주었다. 카모메에서 보여주었던 그런 따뜻함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레이가 할머니의 흔적을 비데에 빠트리는 장면은 익살스러운 마무리였다. 
마지막으로 약간 아쉬웠던 것은, 재봉틀이나 오래된 텔레비전, 군만두 등은 일본이 아니더라도 한국이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인데 우리나라에는 왜 이런 담백한 영화가 생산되지 못할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민족과 가족의 상처, 역사, 연애나 섹스가 아닌 이런 담백하고 철없는 예술이 담긴 영화를, 이제 우리도 만들 줄 알았으면 좋겠다. 시나리오나 한 번 써볼까, 쩝. 별점은 ☆★★★★

류승완 감독의 영화는 늘 얘기만 들었지 본 적은 없었다. 왠지 폭력적이거나 씁쓸하거나 둘 중 하나인 영화만 내와서 그랬다. 안 그래도 피곤한 심신인데 말이지.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는데, 볼만한 영화가 이 것 밖에 없어서 선택한 부당거래. 음, 재밌었다.
류승범, 황정민, 유해진의 연기는 흠잡을데 없었다. 마치 정말 검사나 깡패나 된 것처럼 어찌나 캐릭터 소화들을 잘 하던지. 영화의 전체 진행도 잘 짜였고, 적당히 반전도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시달려야 했던 씁쓸함은 역시나 씁쓸하다. 가진 자는 살아남고 살려고 애쓰던 자들은 모두 죽고 마는 현실은, 감독이 너무하다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우리는, 영화에서 희망이라는 것을 보고 싶기도 한데. 일말의 희망조차 없이 오직 가진 자만이 살아남는 이 약육강식의 원리를 처절하게 보여주는 이 잔인함. 류승완 감독의 그 쌀쌀맞은 표정이 생각났다. 그래도, 잘 만든 영화다. 마치 김훈의 문장을 보는 것처럼, 찍소리도 못할 완벽함이 그에게는 있다. 흥.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런 검찰, 그런 경찰, 그런 범인, 그런 건설깡패. 벌써 나는 눈으로 그들을 보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이벤트'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슬픈, 씨발놈들이 세상에 많다.
세상 열심히 살고자 하는 착한 사람들을 욕하게 하는 그런 씨발놈들. 
어흥. ★★★ 

달콤살벌한 연인을 재밌게 봤다면, 이 영화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좀 더 까칠한 박용우와 좀 더 이상한 최강희를 한석규와 김혜수가 나누어 맡았다고 보면 된다. 두 배우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이 훌륭하고, 착하디 착해 허를 확 찌르는 대사들은 압권. 김혜수는 늘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해 왔는데, 여기서는 엉뚱하기 이를데없어 신선했다. 연주(김혜수분)의 집에서 고가의 찻잔을 찾으려는 한석규의 노력이 그 집안 상황과 엉키면서 눈물겹게 그려진다. 지하창고에서 며칠을 보내는 일이나, 원치 않게 애인관계가 되고, 유럽연합 기준으로 딸을 학교에 보내도록 종용하며, 연주를 출근시키려는. 아직도 귀에 남는 그 대사. 연주씨, 출근해야해요. 출근하는거예요~
영화에서 캐릭터가 주는 재미를 다양하게 보여주는 것도 영화의 장점이었다. 물론 강렬한 소수의 캐릭터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도 흡입력이 있지만, 다양한 캐릭터가 보여주는 다양한 색깔을 즐기는 것도 영화의 재미가 아닐까 한다. 어리버리 재벌2세의 엄기준이나 그의 수하직원들, 한석규의 동업자인 영감님이나 수아(연주의 딸)의 학교얼짱, 연주를 사모하는 경찰, 연주의 집을 늘 감시하는 이웃집 할머니는 독특한 캐릭터로 평범함을 연기했다.
마무리가 뭐, 달콤살벌한 연인도 그랬듯 긍정도 부정도 아닌 미련을 주고 끝내서 약간 어설프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배실배실 웃기는 영화가 괜찮다면 볼 만하지 않을까 싶다.
한석규는 연기를 잘하고, 작품선택도 잘 하는 편이다. 흥행의 여부를 떠나서 그가 나온 영화는 볼만했다. 비록 <주홍글씨>나 <구타유발자들>은 취향에 맞지 않았지만, <8월의 크리스마스>나 <미스터주부퀴즈왕>, <사랑할때 버려야 하는것들> 등은 애장하고 싶은 영화들이다. 그는 자기가 소화할 수 있는 역할을 잘 찾아내는 것 같다. 별점은 ★★★★☆
지현언니가 요즘 물어다주는 연극표로 쏠쏠하게 문화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바로바로바로 오아시스세탁소습격사건!
혼탁한 세상 가운데 자리잡은 허름한 오아시스 세탁소,
그 곳엔 아버지의 대를 이어 30년째 세탁소를 고집해온 강태국이 어리숙한 광대 세탁배달부 염소팔, 40년 전에 어머니가 맡겼던 세탁물을 찾아 희망을 갖게 되는 이석운, 멀쩡한 옷을 찢고, 문양 넣는 신세대 여학생, 명품 매니아족 나가요 아가씨, 그럴 듯한 무대 의상을 빌리고자 하는 가난한 연극배우 등  다양한 소시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재미나게 보여준다.
 아버지가 적어놓은 노트를 보면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강태국의 모습에 나도 펑펑 울고 말았다. 아마 그 애처롭고 그리운 마음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감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무리가 약간 어색하긴 했지만, 강태국 역할의 배우가 연기를 참 잘했다. 마치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연극을 보다보면 뭔가 새롭고 다른 무대가 아니라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이야기에서 많은 감동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관객은 그저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소통의 대상임을 끊임없이 말해주는 점에서 연극은 대단한 매력이 있다.
아으, 다음엔 뭐볼까? 올드미스들이 주로 연극보고 공연보고 여행가면서 논다던데, 나도 그렇게 되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크흑...

엄청 웃었다. 일본영화 보고 이렇게 웃기도 처음. 무라타(사토 코이치)의 무한 애드립이 정말 최고였다. 일본에서는 꽤 유명한 연기파 배우라고 들어서, 중후한 이미지를 생각했는데 말이다.
매직아워는 태양이 사라진 후, 어둠이 내릴 때 까지의 짧은 시간을 말한다. 낮도 밤도 아닌 저녁의 푸르고 유혹적인 노을빛이 연출되는 그 짧은 시간. 그 시간은 삶의 가장 황홀하고 멋진 순간을 뜻한다. 주인공인 무라타도 그 시간을 꿈꾸며 만년 엑스트라로 살아온 것 아닐까.
누구나 꿈꾸는 그 시간이 사라지면, 절망할 일은 아니라고. 다시 그 시간을 기다리면 되는거라는 타가사 노부의 대사는 인상깊었다.
잘하고 싶지만, 생각만큼 되지 않는 무라타의 모습이 남같지 않았다. 사람은 모두 자기를 너무 사랑해서, 자기를 드러내고 싶고 상처받고 싶어하지 않는다. 나 또한 그렇다.
잦은 짐꾸리기에 지쳤던 내 마음을 한 방에 위로해준 이 영화.
주인공에 츠마부키 사토시나 아야세 하루카가 먼저 언급되지만, 이 영화 최고의 캐릭터는 무라타가 아닐까 한다. 젊고 잘생긴 배우는 절대로 그 역할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나이듦의 그늘과 힘듦을 유쾌하게 그려낸 사토 코이치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
최선을 다하는 한, 절대로 절망하지 않고 매직아워를 기다린다면 분명히 그 때를 볼 수 있을거라 믿고 싶다. 별 5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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