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반동안 더듬더듬 배운 첼로.

작년에 첼로교습비 일부를 지원받은터라 나름 연주실력을 뽐내야 했다.

집에서 촬영. 수준에 맞지도 않는 곡이라, 막 틀렸다.

발표날 동영상 틀었더니 사람들이 재밌었다고 했다. 왜 재밌는거야!

흥, 아무리 그래봐야 난 첼로 하는 여자다. 푸하하. 

 

초여름의 기운이 제법 가까워졌다.

오랫동안 뵙던 한 분을 떠나보내고, 아버지를 생각했다.

떠나간 이는 떠나갔기에 그리운 것일게다.

간다, 봄이.


정말 봄이다. 목련꽃이 필 듯 봉긋한 봉오리를 내밀고 있다. 저녁하늘에 보이는 그 자태가 <섬진강 박시인>을 떠올리게 했다. 말로만 듣던 정태춘 박은옥 앨범을 처음 접했을 때, 삶의 쓸쓸함이 이렇게 그려질 수도 있구나 싶었다. 쓸쓸함을 담아내는 시선은 단지 개인에 머물러 있지 않다. 삶을 형성하는 주변 구석구석, 시선이 잘 닿지 않는 곳까지 머물렀다가 담아온다. 그게 매력이다. 그리고'탁' 놓는 듯한 두 사람의 음색은 뭐랄까 인생 '탁' 놓게 하는 매력이 있다. '순정한 진보활동가'들이라는 말이 돋보인 <92년, 종로에서>를 듣다보니 90년대 사전심의제도와 싸웠다던 그의 모습이 상상되기도 했다. 지금 내가 누리는, 혹은 이 시대가 당연히 누리는 많은 노랫말들의 자유에, 그의 땀이 닿아있다. 그리고 마치 '어떠니, 요즘?'이라고 묻는 듯한, 너의 지금은 행복하니, 라고 묻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흐르는 사람'이 '한 무리 비둘기'에게 '큰 박수'를 보내며 그렇게 묻고 있다. 나는 그 '한 무리 비둘기'일까 생각하다가 그만 마음을 놓고 노래를 더 들어보기로 했다. 오, 흐드러진 꽃 춤추는 나비 바람 그리고 봄은 오고 지랄이야, 꽃비는 오고 지랄이야. 그냥 이렇게. 강이 그리워, 네가 그리워.


대학교 때 많이 들었던 뜨인돌.
그 중 가장 좋았던 건 바로 <서른 해를 지내며> 였다.
'맨발로 빈손으로' 라는 말이 특히 좋았다.
그 안에 담긴 자유로움이 내 속에서 피어올랐고, 거침없이 갈 길을 선택했다.
나는 그 자유로움을 따라서 지금까지 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자유로움이 그립다.
그 말을 그립도록 만드는 것은 결국 나.
생각만큼 될 줄 알았고,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줄 알았다.
생각만큼 버리지 못했고, 생각보다 세상에 끌려가고 있는 나를 본다.

부서지고 타오르고 버려지고 피흘리고.
영웅이 아니다. 착각이다. 길 가는 것 하나도 벅차고 어리석다.
현실이다.

어떻게 한 발을 더 내딛어야 할지.
  1. 데이비드 2013.07.02 10:07 신고

    혹시 이 음원 받을수 있을까요? ^^ g-s_leemangi@daum.net 보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 Favicon of http://bravoey.tistory.com BlogIcon bravoey 2013.07.11 14:02 신고

      아, 답글을 지금 봤어요! 혹시 그 사이 구하셨나요? 일단 찾아서 보내드려볼께요^^

    • Favicon of http://bravoey.tistory.com BlogIcon bravoey 2013.07.15 03:19 신고

      헐! 음원이 예전에 날아가버린 외장하드에 있었나봐요. 없네요! 커흑~




힘을 내야 한다.
어두운 내 마음이 당신이 준 빛을 자꾸 가리려고 할 때마다,
막연한 두려움에 당신의 조건들을 생각하려 할 때마다,
나를 다시 본다.
그 두려움의 끝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내 어두움의 시작이 어디인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나와 싸우는 일.
기꺼이 그 일을 하고 싶다.
신기한 사람.



 최근 풍월당을 알게 되어 가끔씩 들락날락 하고 있다. 잘 모르는 덕분에 겁없이 음반을 사기도 하는데, 이번에 구입한 음반 중 하나가 레오니드 코간. 스페인, 이탈리아 음악인 건 보지도 않고 그저 '오이스트라흐'와 비교된다는 말에 홀려서 샀다. 엄격하지만 친절한 오이스트라흐 아저씨의 연주와는 뭐가 다를까 싶어서. 첫 곡인 <무덤앞에서>부터 19곡. 듣는 내내 뭔가 억눌린채 달려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절제나 '바로크'하다는 표현을 하는 사람들의 글도 봤지만 내 느낌은 억눌림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도 열정은 있었다. 그건 무척 슬픈 열정이다. 억눌린 사람들이 발휘하는 열정은 자기를 넘어서 에너지를 끌어내야 하는 고통이 있기 때문이다. 오이스트라흐와는 참 달랐다.
 특히나 어제 들었던 레오니드 코간의 <무덤앞에서>는 참 절묘했다. 철의 장막 구소련의 차가운 시대가 지금과 달리 느껴지지 않고, 오래도록 문을 닫고 지낸 북의 수장의 죽음과도 맥이 통하며, 그 시대에 예술가로 혹은 동료예술가를 감시하며 살았던 코간의 삶과 지금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르지 않다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음반엔 잘 모르는 노래가 가득해서, 브람스나 베토벤의 연주음반을 사서 오이스트라흐의 연주와 비교해서 듣는 것도 좋겠다 싶다.




<바이올린만담>을 보고 집에 오니
오이스트라흐 아저씨의 바이올린 연주가 듣고 싶어졌다.
원래는 말랑말랑한 브람스 연주를 좋아하지만 마음의 무게는 차이코프스키.

다니엘 호프 님의 연주도 들어보고, 카라얀의 브람스도 들어보고, 차이코프스키 심포니 6번 B minor 74악장도 들어보셔야겠다.
오늘은 그러고 싶네. 미친 듯이. 이러면 잠을 좀 자려나.

반짝반짝해
손에 닿지 않는 당신이
반짝반짝
이뤄질 수 없는 내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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