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했고 야권이 '패배'했는가? 선거의 결과만 놓고 보면 새누리당이 이기고 야권이 진 것이 분명하다. 여당 스스로 예상했던 것보다 더 나은 성적표를 받았다고 볼 수도 있다. 야권이 호기롭게 기대했던 것보다 초라한 점수를 받았다고 자책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개별적으로 아쉬운 점이 여러 군데 있었고 진보신당과 녹색당의 부진도 너무 애석하다. 모든 언론과 논평가들은 박근혜의 능력과 야권의 무능함을 지적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분위기가 이러하고 엄정한 자기비판을 반드시 해야 하겠지만, 한번쯤은 정반대로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선거를 평가하는 방법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특정 시점에서의 양적 결과로 볼 수도 있고, 시계열상의 추세로 판독할 수도 있고, 상징성과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우선 시간상의 추세를 보자. 가장 간단한 것은 18대 국회에서의 의석수와 이번 선거 결과를 비교하는 방식이다. 4․11 총선 직전 각 정당의 의원수 분포와 이번 총선 결과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새누리당(162에서 152명: 6% 감소), 민주통합당(80에서 127명: 59% 증가), 통합진보당(7에서 13명: 86% 증가). 이런데도 야권이 일방적으로 패배했다고 할 수 있는가? 오히려 4년 만에 체력이 상당히 좋아졌다고 볼 수도 있다. 


이번 선거가 보여주는 희망


그런데도 야권이 '졌다'라고 인식된다면 그것은 전국적 분포에서의 대표성 부족, 그리고 적어도 다수당, 잘하면 과반수 이상 확보도 가능하다고 하는 거품이 자천타천으로 너무 크게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8대 총선의 민망한 성적, 그리고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의 압도적 패배를 냉정하게 기억한다면, 그리고 선거 전후한 온갖 악재에도 이만큼이나마 선방한 것은 국민이 야권의 손을 잡아 일으켜준 것으로 해석해야 옳다. 더 나아가 범야권은 140석이라는 의석을 가지고 민간인 불법사찰, 4대강사업 등의 책임을 철저히 추궁하라는 국민의 명령을 받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상징성과 의미로 봐서도 야권이 희망을 가질 만한 구석이 적지 않다. 우선 수도권에서의 선전, 몇몇 경합지역에서의 가치있는 승리, 통합진보당의 약진,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정당(민주통합당)과 계급정당(통합진보당) 간 연대의 실험을 들 수 있겠다. 전체적으로 보아 선거연합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를 상상해본다면 그래도 첫번째 실험으로서 실패라고 보기는 어렵다. 통합진보당이 이만큼이라도 분투한 것은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전례 없이 획기적인 일이다. 보수 일변도이던 우리 정치 스펙트럼에 한줄기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실질적인 계기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이 독자적인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의정활동의 많은 부분에서 민주통합당과 협력하는 쪽을 택해야 할 것이다. 이 두 정당이 앞으로 여러 차원에서 연대를 해나갈 경우 '민주-진보'가 한 배를 타고 항해하는 경험을 축적할 수 있다. 이러한 상호이해를 거쳐 아시아 최초로 사민주의적이면서 동시에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일종의 대연정이 탄생할 가능성을 우리는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잊어선 안된다. 이번 득표율로 보면 민주와 진보를 합친 것이 46.68%이니 새누리의 42.77%를 앞지른다. 이는 특히 대선을 고려할 때 유의미한 수치다.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시작됐다


이렇게 본다면 2013년체제를 위한 본격적인 레이스는 4월 12일부터 시작되어 여덟달 동안 계속된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여야 할 것 없이 서로를 상대하는 것만큼이나 자기 내부적으로 복잡한 방정식을 먼저 풀어야 할 과제 또한 짊어지게 되었다. 우선 집권 보수세력 내에서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대통령 사이의 관계 설정이 여전히 복잡하다. 그렇잖아도 단임제 대통령의 마지막 해는 어렵기 마련인데 상당히 기력을 회복한 야권의 공세가 예상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야권 역시 안철수 교수와의 관계설정이 녹록하진 않다. 안교수의 무시할 수 없는 지지기반을 감안할 때 그가 대선 정국에서 어떤 선택을 하든 파장이 클 것이다. 안교수가 결국 야권에 힘을 실어주더라도 그것이 민주-진보에게 축복만은 아니다. 그가 내세우는 미래, 합리성, 따뜻함 등의 가치가 그 자체로선 의미가 있으나 그것이 전체적으로 좌클릭된 야권의 지형과 반드시 부합된다고 보긴 어렵기 때문이다. 미래지향적이고 합리적이면서도 따뜻한 진보라는 교집합을 통해 안교수가 야권에 합류할 수 있을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 안교수의 합류 가능성을 계속 열어놓되, 더 좋기로는 국민정당과 계급정당으로 이루어진 범야권이 대선 국면에서도 연대하는 것이다. 


앞으로 여덟달은 정책과 가치의 교류를 통해 서로를 이해-보완하고 이를 바탕으로 유권자들 앞에서 떳떳하게 미래의 선택을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그러한 이성적 과정으로써 우리 안의 충동과 감성적 경향을 절제하는 것도 중요하다. 속시원한 바람몰이가 결국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점도 이번에 우리가 배운 교훈이기 때문이다. 


2012.4.12 ⓒ 창비주간논평 

조효제 /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참 힘듭니다. 언제 또 이런 적이 있었을까 싶습니다. 글을 한 자도 못 쓰고 며칠을 끙끙 앓습니다. 글을 쓰기까지의 괴로운 심정이나 상념을 늘어놓는 글쟁이들을 혐오했는데 제가 그 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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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웃었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발표한 국내 10대 트렌드.
'그 후'라는 말은 끝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다.
물과 전기가 끊긴 곳에 고립된 사람들의 마음과 테이저건과 최루액, 폭력에 갇힌 인간에게 정신적 상처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긴 싸움 끝에 나온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정신적 공황과 피해에 대해
우리는 또 입을 열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인간에 대한 예의, 이 말에 대해 정말 많이 생각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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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숨소리 같은 사람.
용산참사가 있은 후 대전에서는 두 번의 촛불추모제가 열렸다.
작년보다 더 답답한 마음으로 촛불을 들었다.
촛불은 아직 우리에게 기억할 것이 많음을 알게 한다.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을을 알게 한다.

그들이 죽지 않도록, 살아있는 내 기억에서 그들을 오랫동안 간직해야 한다.

"벌써 잊혀진 용산 참사, 그들이 웃고 있다"
[기자의눈] 용산에서 숨진 이들을 세 번 죽일 텐가?

                                                                                                                      프레시안 강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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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뉴시스


사무실에 찾아온 윤호섭 교수와 그의 커다란 등산가방을 보고 나는 생각했다.
저 사람, 딴따라다. 저 살고 싶은대로 살겠구나.
딴따라는 자기 안에 있는 끼를 숨김없이 발휘한다. 그도 그랬다.
자기 안에 있는 순수한 끼를 유감없이 세상에 보여준다.
딴따라의 진가는, 그의 끼로 인해 세상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끼가 세상을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진정성은 가슴을 뛰게 했다.
세상이 모르는 척하는 사이에 세상을 등진 수 많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을
그는 말없이 보듬으며 싸우는 사람이다.
그의 주름 안에 노동의 눈물과 땀이 고여있다.

노동은 선이고 노동운동은 세상에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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