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항씨의 예수전 강의가 대전에서 열려 어제부터 듣게 되었다.  김규항씨의 여러 책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예수전>이라 나름 떨리는 마음으로 그 분(?)을 알현했다. (나를 알아봐주셔서 감동이었다!)
첫 날이라 수강생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김규항씨가 예수전을 통해 제시했던 물음,
우리 사회의 바리새인은 누구인가와 "우리 안의 이명박"에 대한 이야기를 던졌다.
예수가 욕하던 바리새인은 "체제의 안정을 꾀하며 변화를 가로막던 이들"이라며
우리의 현재는 어떤지, 우리 안에 변화는 무엇인지를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하루에 15분씩 기도하라는 말을 - 여기서 기도는 '변혁적인 기도'로서 나와 남이 분리되는 경쟁이 아닌 모두가 하나인 존재로 따스하고 평화로운 우리로 살아가야 함을 함께 다짐하고 바라자는 내용 - 목사님처럼 남겼다.

기대된다! 10년차 활동가인 나에게 던져진 '자기성찰'이라는 과제에 영양공급하라고
이 시간, 이 때에 김규항씨를 만나게 된 것 아닐까 하며!^^
  1. 2012.03.23 10:17 신고

    와 김규항!!!

제가 오늘 언론에서 쌍용차 사태에 대한 보도에서 "경찰이 출입문을 확보했다"는 식의 보도를 접하자 그냥 경악해버리고 말았습니다. "확보"라니, 마치 적군과 전쟁하는 "아군"에 대해서 보도를 하는 모양인 셈이지요. 파업하는 노동자들이 과연 "거점" 하나 하나씩 "확보"해서 결국 "진압", "박멸"해야 할 "범법자" 집단인가요? 잔인한 어법, 잔인한 사고이기도 하지만, 이 잔인성 이외에 커다란 문제는, 여기에서 거의 1천 명이 되는 노동자의 일자리뿐만 아니라 "정의" 그 자체가 짓밟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 애당초의 이명박씨의 "비과학적 소설" 격인 공약대로 - 연간 7%씩 성장한다 해도 정의 없는 나라는 결코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부동산 버블이 터져 마이너스 7% 성장이나 안됐으면 좋겠지만, 성장이 되든 말든 인간들의 한 집단으로서는 정의는 먼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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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철거민 5명이 한번에 죽었다. 불에 타 죽었다. 불길을 피해 건물 4층에서 떨어진 이는 중태다. 철거민들의 농성을 진압하던 경찰 특공대 1명도 죽었다.

2009년 1월 20일, 우리는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학살을 목격했다. 철거민들이 옥탑 철탑 옥쇄농성에 돌입한지 겨우 25시간만이었다. 대화로 설득하려는 노력도 포기한 채 새벽 6시, 적을 상대하는 전쟁처럼 군사작전을 펼쳤다. 테러와 같은 중대한 범죄에 투입되어야 할 경찰특공대가 겨우 30여 명 남짓의 철거민들을 진압하는데 투입되었다. 그 작전을 승인한 이는 촛불에 대한 강경진압을 주도했던 현 서울경찰청장이고,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서 차기 경찰청장으로 내정된 이다.

속전속결로 철거민들을 해산하면 끝이라고 생각했을까. 분명히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을 인지하였던 경찰이었는데, 경찰 지휘 책임자들은 자신들의 부하들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사지로 내몰았다. 아무런 안전장비도 없는 채. 그렇게 그들은 죽어갔다. 한쪽은 생존권을 위해 마지막 올랐던 망루에서, 한쪽은 생존의 비명소리를 진압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수행하다가….

인간의 죽음 앞에서도 몰염치한 저들

사람이 한 번에 6명이나 죽은 참사가 빚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의 내노라하는 이들이나 한나라당의 국회의원들은 합법적인 조치임을 강조하고, 청와대 김은혜 부대변인은 이번 기회에 과격시위의 악순환을 끊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공식 브리핑으로 냈다가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았다. 신지호 의원은 전철연은 반국가단체라면서 이들에 대한 경찰의 진압을 옹호하고 나섰다.

뿐만인가? 신원 확인도 없이, 유가족들에게 통보도 없이, 검찰은 일방적으로 불에 타버린 시신을 부검했다. 유족들이 시신을 확인하자고 요구해도 경찰은 가로막았다. 그 참혹한 앞에서 오열하는 유가족들, 2009년 새해는 이렇게 잔인한 폭력의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잔인하게 일깨워주면서 시작하고 있다. 올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국가폭력 앞에 떨고, 울어야 할까. 참으로 걱정스럽다.

미국에서는 '버럭 오바마'라는 흑인 대통령이 취임선서를 했다. 그는 미국이 겪고 있는 위기를 직시하자면서 솔직하게 위기상황을 인정했다. 그리고 "(이번 위기가) 시장을 제대로 감시하지 않을 경우 통제할 수 없는 지경으로 빠져들 수 있으며, 오로지 부유한 자들만을 위하면 국가는 장기간 번영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재삼 일깨워줬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가 가려는 방향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오바마는 뚜벅뚜벅 걸어갈 것임을 선언했다.

지난 연말과 연초 '입법전쟁'을 치룬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다시 2라운드를 준비한다. 연말연초와 같은, 법안을 무더기로 날치기 처리할 수도 있는 상황이 오고 있다. 2월 임시국회에서 다시 민주당이 지난번처럼 강경하게 반민주, 반인권 악법을 저지하기 위한 강경투쟁에 나설 것인지, 언론노조와 같은 힘이 동원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낙하산을 타고 내려간 KBS 이병순 사장은 자신의 취임을 반대했던 사원행동 간부들을 중징계하여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던 KBS노조마저 투쟁에 나서게끔 몰아세우고 있다. YTN도 마찬가지다. 낙하산 사장들이 하는 짓이 이 모양이다. 정부의 나팔수로 적극적으로 나서려는 이들 때문에 언론노조의 동력은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영희 장관도 노동계를 불붙게 하고 있다. 말로만 하던 비정규직 기간연장 법안을 2월 임시국회에 제출하겠다고 공언했다. 노동계는 당연히 싸울 수밖에 없는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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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kojiwon.com BlogIcon 늦달 2009.01.24 00:38 신고

    없이 사는 사람은 MB 눈에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겠지요.
    이 야만과 폭력의 시대를 살아가햐는 것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의 글>

만수보다 더 정확한 예측으로 인기를 끌었던 미네르바가 30대의 백수라고 하네요. 검찰의 발표를 믿는다면, 어느 30대 백수의 경제 예측이 한나라의 경제수장보다 더 정확했다는 얘기가 되지요. 한 마디로 기는 만수 위에 뛰는 백수가 있다는 것이 이 나라의 현재 상태가 아닐까 합니다. 어쨌든 지하 벙커에 비상상황실 차려놓고 처음 선보인 작품이 고작 '미네르바 긴급체포'라니, 전 세계에서 웃을 코미디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경제 살린답시고 전쟁상황실 차려놓고 일개 네티즌에게 선전포고나 하고 있으니....

미네르바가 구사한 용어들이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쓰기 어려운 것이라고 하나, 사실 전문가 뺨치는 아마추어가 넘치는 곳이 또한 인터넷이지요. 외려 언론에서 추측하던 그런 프로필을 가진 사람이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쓴다는 것이 외려 비현실적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정체를 놓고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 의심의 바탕에는 학벌주의 코드가 깔려 있는 것 같아 좀 불편합니다.) 역시 사건의 핵심은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가 훼손되었다는 데에 있습니다.

경제 예측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요. 한때는 그의 예측이 틀렸다는 이유로 잡아넣겠다고 하더니, 그게 여의치 않자 이번에는 허위사실 유포로 걸어 버렸네요. 국회에서 장관이 사법처리 가능성을 운운한 이후로, 미네르바가 평정심을 잃었던 것 같습니다. 한 동안 그가 쓴 것이라고 믿기 힘든 격앙된 글들을 올리더니, 결국 결정적인 실수를 했지요. 하지만 본인이 그 실수를 인정하고 글을 삭제하고 사과까지 했는데도 '긴급체포'를 당하는 게 이 나라의 상황입니다.

이번 사건은 앞으로 인터넷 모욕죄가 도입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미리 보여주는 아주 훌륭한 사례입니다. 고소, 고발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검찰에서 선제적으로 수사를 들어갔습니다. 인터넷에 올린 글들을 모아 뜯어보면, 그 중에서 몇 가지 크고 작은 실수들을 발견할 수 있겠지요. 그것만으로도 '긴급체포'되고, 구속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정부, 여당, 여당 의원들에 대해 입을 벙긋거렸다가는 긴급체포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완전 전체주의 경찰국가의 상황이 되는 거죠.

미네르바의 글 때문에 자살한 연예인이 있나요? 미네르바의 글 때문에 피해를 본 투자자가 있나요? 미네르바의 글 때문에 모욕 당하고, 명예를 훼손당한 시민이 있나요? 없습니다. 사이버 모욕죄가 누구를 보호하는 법인지, 여기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 법이 도입되면, 앞으로 미네르바 긴급체포와 같은 사태는 아마도 인터넷의 일상이 될 겁니다. 청와대 비판한 누구 긴급체포... 재경부 비판한 누구 긴급체포... 긴급체포, 긴급체포, 긴급체포..... 민심이 정권에게 시민들 입 막는 것만큼 '긴급'한 일이 또 있겠습니까?

워룸 차려놓았다가 비아냥이나 듣자, 공간이 없어서 그런다는 둥, 그쪽이 원래 통신이 좋다는 등 둘러대는 것 좀 보세요. 유치 찬란해서 차마 들어주기조차 민망하네요. 아니, 경제 살린다면서 왜 땅굴로 기어 들어갑니까? 무슨 설치류 월동 경제 하자는 겁니까? 이건 대한민국 국격에 관련한 문제입니다.

파시즘의 일상성  
 
 
며칠 전, 학교 세미나차 런던에 갔었을 때에 한 번 같은 호텔에서 묵었던 어떤 서구인과 아침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었습니다. 서구의 한 "강소국" 출신으로서 로마와 희랍의 고전을 좋아하고 미국식 "정글 자본주의"를 매우 부정시했던 그에게 그의 출신 국가의 군인들이 지금 아프간의 남부에서 "탈레반을 섬멸시킨다"합시고 "인종청소"를 방불케 하는 식민지 전쟁을 하는 이유를 묻자 그가 "아이고, 순진하시네"라고 하듯 냉소적으로 웃고 당연하듯이 이야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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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이스라엘에서 키부츠 생활을 할 때, 예루살렘 시내에서 늘 마주치는 것은 총을 메고 다니는 젊은 남녀군인과 벽에 닭처럼 몰려 몸수색을 받는 아랍인들이었다.
특별히 나쁜 짓을 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이스라엘 군인들은 늘 아랍사람 누군가를 수색하고 있었다.
"Forigner"인 우리도 다르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러 찻집에 가거나 버스를 타러 터미널에 갈 때, 입구에서 늘
소지품 검사를 당했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야 했다. 우리는, 폭탄을 가졌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외국인이었기 때문이다. 아주 기분 나쁜 일이었음에도, 유대인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피해받은 자의 심리'를 어떤 식으로든 보상받겠다고, 피해준 자와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가장 잔혹한 방식의 '파시즘'이 아닐까 싶다.
녹색평론에 표지로, 삽화로 이름이 많이 등장했던 손문상씨.
이번 녹색평론에 블로그 주소가 올라 찾아가보았다.

한 번 들러보시길.
사람에 대한 애잔한 마음이 느껴지는 그림과 사진이 가득.

http://blog.naver.com/smoons99
  1. 은딕 2007.07.16 16:31 신고

    예상했겠지만. 저기 블로그 갔다가 울어버렸다;


[시대의 흐름에 서서]큰 생각, 작은 생각, 인간성


김우창/고려대 명예교수


정치는 사회가 하나의 체제로 기능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어떠한 나라가 민주주의 체제인가, 사회주의인가, 또는 공산주의 체제인가를 말하는 것은 이러한 이념이 정치 전체의 성격을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책도 하나의 덩어리로서의 사회를 전제로 한다. 하나의 정책으로 크고 작은 일체의 것들이 움직이게 되는 것이 아니라면 교육, 의료 또는 사회 복지 제도는 물론 경제, 사회, 외교 등의 정책은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체제적 발상에 위험과 착각이 따르는 것은 사실이다. 구소련이 보여주는 것은 이데올로기로 굳어진 체제적 사고와 정책의 실패이다. 그럼에도 사회적인 삶을 생각하는 데에는 체제적 전제는 불가피하다.

대통령 선거와 관련하여, 정책들이 논의되고 대통령 선거에서 정책이 주된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 된다. 정책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사회가 하나의 체제라고 할 때, 정책은 체제를 움직이는 데에 중요한 전략적 의미를 갖는 것이라야 할 것이다. 또 하나의 기준은 일관성이다. 일관성은 일의 바른 추진을 위하여 필수적인 요건의 하나이다. 또 그것은 현실 자원의 제한 속에서 여러 정책들로 하여금 상호모순에 빠지지 않게 하는 데에 중요한 원리가 된다. 이러한 기준이 없다면, 모든 문제에 대한 모든 답을 제공하겠다는 잡다한 단편적인 정책들이 가장 큰 득표 효과를 갖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일관성은 사회적 삶의 근본에 대한 깊은 인식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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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경향신문 7월 5일자

어떤 사람들은 한없이 사나운 얼굴로 말한다.
‘세상이 바뀌려면 사회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한없이 온유한 얼굴로 말한다.
‘세상이 바뀌려면 내가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현명한 사람들은 조용히 말한다.
‘세상이 바뀌려면 사회구조도 바뀌고 나도 바뀌어야 한다. 둘은 본디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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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주 전에, 어떤 학술회의에 갔을 때에 서울의 한 "명문대"의 한 교수 분과 저녁 식사 자리에서 꽤나 끈질긴 논쟁을 벌이게 됐습니다. 요즘 "명문대"에서 "원어" (즉, 영어 - 참, 영어가 왜 "원어"인가?) 강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 대다수의 선생들이 의무화돼 있는 그 "원어" 강의로 적지 않은 고생을 하는 듯한데, 제가 만났던 분은 오히려 그러한 강의를 즐기시는 모양이었습니다. 아주 오랜 미국 체류에서 얻은 영어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 선생의 신념상으로도 영어로 하는 강의 내지 학술만이 "진짜"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즉, 통상적인, 대중적인 이야기야 "지역적 언어"인 한국어로 해도 되지만 학술적 등의 어떤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 모든 저술들을 "유일무이한 세계어", 즉 영어로 하는 것이 "세계 지성인의 의무"라는 논리이었지요. 그 분이 국내에서의 영어의 "공용화"는 물론 나아가서는 아예 동아시아 지역 전체의 공용어가 바로 영어 (그 분의 표현으로는 "세계어")가 돼야 된다고 주장하시고, 과연 그들만의 세계에서 그토록 오래 살아왔던 중국의 지성인들이 영어에 그러한 대접을 해줄 것 같겠느냐는 제 질문에 경멸적으로 웃기만 하셨더랍니다. "저 후진적인 중국인들이 아직도 영어의 세례를 덜 받았다면 저들에게만 손해지, 뭐"와 같은 뜻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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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레터] 사실은 단하나 뿐이었다. 내가 도망쳤다.
[이동진 닷컴 2007-03-12 19:39]

(저는 ‘이동진의 시네마레터’라는 칼럼을 10년 넘게 써왔습니다. 이제 새로운 출발을 하는 상황에서, 예전에 썼던 수백편의 시네마레터들 중 독자들의 호응이 가장 컸던 글 다섯 편을 이곳에 올립니다. 새로 쓰게 될 시네마레터 칼럼은 앞으로 계속 이곳에 실릴 예정입니다.)

중세 독일의 전설에 이런 게 있지요. 독일 바덴 지방의 어느 젊은 백작이 덴마크를 여행하다가 아름다운 성의 정원에서 오라뮨데 백작 부인을 보고 한 눈에 반합니다. 그는 그 성에 머물면서, 남편을 잃고 아이들과 살아가던 오라뮨데 백작 부인과 깊은 사랑을 나눕니다. 고국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왔을 때 그는 “네 개의 눈이 있는 한 당신을 바덴으로 데려갈 수 없다오. 네 개의 눈이 사라지면 반드시 당신을 데리러 오겠소”라는 말을 남기고 떠납니다. 네 개의 눈이란 자신의 부모를 뜻하는 말이었지요.

집으로 돌아간 그는 반대할 줄 알았던 부모로부터 수개월 뒤 의외로 쉽게 허락을 받자 기쁨에 들떠 덴마크로 갑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는 오라뮨데 백작 부인이 아이들을 살해한 뒤 죄의식에 몸져 누운 채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백작 부인은 ‘네 개의 눈’이 새로운 사랑에 방해가 되는 자신의 아이들인 걸로 오해해 끔찍한 일을 저질렀던 거지요. 자초지종을 알게 된 독일 백작은 말을 타고 필사적으로 도망칩니다. 그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백작 부인의 그 처참한 사랑으로부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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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sun 2007.04.18 11:31 신고

    사람이 무모해질 때, 무서운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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