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메롱메롱은주
bravoey
2011. 2. 27. 17:22
가끔 과선배들의 졸업작품을 읽어볼 때가 있다. 게 중에는 정말 안정적인 글빨을 지닌 선배들이 있다. 그건 뭐랄까, 올곧게 포장된 라면박스 같은 느낌이랄까. 네모속에 네모난 라면, 포장지 속에 네모난 라면발 같은 정직하고 완전한 틀. 김점용의 시들도 그랬다. 라면박스에서 네모난 라면을 안 끓이고 부숴먹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안정감도 있고, 몸에 좋진 않지만 맛도 있다. 어떻게 끓여먹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메롱메롱 은주>외에도 <천축사>나 <생명이 밉다>, <감자꽃 피는 길>이 좋았는데 그 중에 <감자꽃 피는 길>의 전문을 옮겨보았다. 어느 집 문 앞에서, 그 집 주인이 기척을 하지 않아 두드리지도, 쳐들어가지도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는 내 모습이 생각나서 조금 울었다, 챙피하게. 나이들어 이게 무슨 짓인가 싶다가도, 기다리는 것도 사랑일 수 있다는 롤랑 바르트의 말을 가슴팍에 우겨넣고 휑하니 먼 곳을 바라본다. 감자꽃이 보일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