短刀

권정생선생의 유서

bravoey 2007. 7. 23. 18:26
정호경 신부님.

마지막 글입니다. 제가 숨이 지거든 각각 적어놓은 대로 부탁드립니다.....3월 12일부터 갑자기 공팥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뭉툭한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계속되었습니다. 지난날에도 가끔 피고름이 쏟아지고 늘 고통스러웠지만 이번에는 아주 다릅니다. 1초도 참기 힘들어 끝이 났으면 싶은데 그것도 마음대로 안됩니다.

하느님께 기도해 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요.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 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 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벳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 주세요.

안녕히 계십시오. 권정생(녹색평론, 2007년 7,8월호)

나도 마찬가지고, 누구든 그렇듯
자신이 죽을 때는 자신에게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내 것, 내 가족, 내 인생.
그렇기에 내가 아닌 타인을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은 참 흔치 않고, 귀하다.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유서 앞에서
나는 내 인생이 얼마나 간절함 없이, 애틋함 없이 흘러가게 방치하고 있는지를
가늠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