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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그레이스, 리얼 라이프(real grace, real life)
bravoey
2009. 2. 12. 08:57
나는 자취생활만 10년째 하고 있다. 이사를 많이 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자취집이 있다. 평범한 원룸이었는데, 베란다로 나가면 원룸 뒤쪽에 공터가 내려다 보이는 곳이다. 공터는 말 그대로 그냥 아무 것도 없는 맨 땅이었다.
봄이었다. 무심히 바라본 그 공터에서는 새파랗게 젊은 싹들이 맨 땅 위로 힘차게 손을 뻗고 있었다. 여름이 되면서 그것들은 옥수수로, 파로, 무와 고추로 아무 것도 없던 땅을 가득 채웠다. 그 과정을 매일 보던 나는 인생 스물 여덟 살면서 처음으로 ‘신기하다’는 감정을 느꼈다. 그건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병이 기적적으로 낫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느낌이었다.
온통 새파란 그 곳에서 하나님의 숨소리가 들렸다. 씨를 뿌리고 잡초를 다듬는 것은 사람이 하지만, 식물이 자라도록 하는 힘은 그 분이 지으신 세상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햇빛과 땅 속에 흐르는 생명력, 바람, 공기, 이 모든 것이 그것들을 자라게 하고 그렇게 자라난 것들로 인해 사람이 먹고 살아간다. 하나님은 늘 내가 생각하고 살아가는 모든 공간에서 자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고 보편적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