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短刀

2000년, 편지

by bravoey 2011. 1. 3.

은영에게

자취를 하고 몇 년 뒤 나는 세들어 사는 집 옆 텃밭에 불쑥 솟은 광고첨탑 위에 까치집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길조라 여겨지는 까치의 둥지틈에 나는 얼마나 위안을 얻었던지!

돌아보면 까치의 보금자리와 유쾌한 일 사이에는 비례관계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지만
날아드는 까치의 날개짓과 몇 마리의 새끼와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도 하루를 기분좋게 시작했던 것 같다.
시기와 우연이 있을 지언정, 결국 모든 것은 자기 자신의 내부에서 정제되고 암시되고 사기를 얻는 것은 아니었을까?
힘들다는 자각을 안고 살아가는 것 자체도 두려울 때 이미 고독이나 권태는 사치스러운 것이 된다.
그런 나를 용감하게 만들고 싶다. 활동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살아야 겠어.

생일이 구일이라고 알고 있다. 이 소포가 더 늦게 도착하겠구나.
집안 분위기가 생일을 훌쩍 뛰어넘는거라 축하한다는 말이 괜히 어색하구나.
동봉하는 것들에게서 그나마 작은 쉼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