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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연재기사34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일 용산참사가 있은 후 대전에서는 두 번의 촛불추모제가 열렸다. 작년보다 더 답답한 마음으로 촛불을 들었다. 촛불은 아직 우리에게 기억할 것이 많음을 알게 한다.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을을 알게 한다. 그들이 죽지 않도록, 살아있는 내 기억에서 그들을 오랫동안 간직해야 한다. "벌써 잊혀진 용산 참사, 그들이 웃고 있다" [기자의눈] 용산에서 숨진 이들을 세 번 죽일 텐가? 프레시안 강양구 기자 용산에서 여섯 사람이 불에 타 숨진 지 열흘이 넘었다. 이번 참사를 보면서 많은 사람은 조세희의 (이성과힘 펴냄)을 떠올리며 절망했다. 어찌 이 책이 나온 지 30년이 지났는데도 도시 빈민의 스산한 삶은 나아진 게 없단 말인가? 책임자 경질은커녕 사과 한 마디 없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 2009. 2. 3.
진중권, 이문열 비판…“소설 리바이벌 장난이나 그만두라” “아예 의병장으로 나와라” 진중권, 이문열 비판…“소설 리바이벌 장난이나 그만두라” 출처 : 레디앙(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0145) 연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촛불집회를 비판하고 있는 소설가 이문열씨에 대해 진중권 중앙대학교 겸임교수가 강하게 비판했다. 진 교수는 특히 의병 발언에 대해 “거병을 했으니까 20일에 책임지고 나와서 의병장 노릇을 해주신다면 우리가 진보신당 칼라TV로 생중계를 해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칼라TV로 생중계 해줄게진 교수는 18일 저녁 라디오 ‘시사자키 고성국입니다’에 출연해 이 씨에 대한 비판과 함께 정부 정책에 대해 “21세기 디지털 마인드가 없다”며 함께 비판했다. 아울러 촛불집회에 대해 “자연스럽게 소규.. 2008. 6. 20.
녹색당 반대하는 녹색 지식인의 '정직한 비관주의' 녹색당 반대하는 녹색 지식인의 '정직한 비관주의' 이명원의 좌우지간⑥-2: 발행인 김종철 - 오마이뉴스 2007.12,2 이명원 기자 이야기의 방향을 돌려, 최근 문단에서 활발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에 대한 견해도 물어보았다. 일본의 비평가인 가라타니 고진은 이라는 논문에서 문학계를 떠난 김종철을 거론하면서, 한국에서 문학의 근대적인 비판기능이 상실되고 있음을 논한 바 있다. 이러한 고진의 논의가 한국 문단에 가한 방응은 격렬했다. 많은 수의 젊은 비평가들이 고진의 진단을 갑론을박했고, 그 와중에 백낙청과 최원식, 황석영과 같은 비평가와 작가들은 고진의 한국문학에 대한 평가가 잘못된 가정에 입각한 오류하면서 비판했다. 가라타니 고진의 주장 때문에, 불가피하게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된 김종철의 한국문학에 .. 2007. 12. 5.
금민 한국사회당 대통령 후보 인터뷰 2007. 11. 30 16:55 “‘진보대연합’은 한국사회당의 근거전략이자 장기전략” 17대 대선 출사표 던진 금민 한국사회당 대통령 후보 인터뷰 프로메테우스 메일보내기 17대 대통령선거 후보등록 첫날 이었던 지난 11월 2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은 각 정당 또는 무소속 대선 후보들을 응원하기 위해 모인 지지자들, 특정 후보의 출마를 반대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대선 후보들에게 자신의 ‘요구’를 전달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등으로 말 그대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에는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인 금민 한국사회당 대통령 후보와 지지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선관위 앞에서 보인 모습은 자리에 모인 다른 정당의 지지자들 등과는 사뭇 달랐다. 굳게 닫힌 선관위 정문 앞에서 경찰과.. 2007. 12. 5.
실험용 쥐가 본 ‘실험동물 보호법’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은 자신의 근원에 대한 것이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자면 자신의 힘으로 자아를 밝히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오래 전에(라고 해봐야 인간의 수명에는 턱도 없이 모자라지만) 포기했다. 하지만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자료가 있기 때문에 나는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나는 쥐다. 하수구를 기어 다니거나 음식점의 쓰레기통을 뒤지지는 않는다. 대신 하얀 옷을 입은 인간들이 시시때때로 내 용태를 관찰해 준다. 내 건강의 변화를 점검하고 특이한 사항을 발견하면 기뻐서 펄쩍 뛰거나 우울한 표정을 짓는다. 즉, 나는 실험용 쥐다. 그 중에서도 유전자 변형을 통해 지능을 향상시키는 실험군(群)에 있다. 약 4백의 쥐가 나와 같은 실험군에 들어 있다. 한 가지 비밀을 알려 주겠다. 나는 인간.. 2007. 11. 30.
잊혀진 나라 '아프간' <6ㆍ끝> 누가 이 전쟁을 멈출 것인가 아프간의 기아 참상을 영화로 찍기 위해 방글라데시 유엔 대표인 카말 후세인 박사에게 전화를 했다. 나는 북부동맹이 장악한 아프간 북부와 탈레반이 지배하는 칸다하르, 두 곳을 모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소규모 인원만이 갈 수 있다고 전갈이 왔는데 결국 나와 나의 아들, 둘이 소형 비디오 카메라만을 갖고 들어갈 수 있다는 허가가 나왔다. 우리는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가서 아프간 입국 허가를 받고 유엔 소유의 10인승 비행기로 입국하기로 돼 있었다. 이 비행기는 1주일에 한번은 아프간 남부를, 그 다음 주에는 북부를 왕복하는 비행기였다. 지난 18일 영국 런던의 하이드 파크에서 수만명의 시민들이 미국의 아프간전쟁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유엔 사무소가 아프간 측에 대해 입국 시기를 물.. 2007. 7. 29.
잊혀진 나라 '아프간' <5> 파, 배고픈 난민 모아 탈레반 양성 약 20년전까지, 계절에 따라 가축을 몰고 이동한 것을 제외하고는 아프간 농부들은 국외로 나가본 적이 없었다. 이 때문에 해외로의 여행은, 아무리 짧은 것이라 해도 아프간의 운명에 심각한 흔적을 남겼다. 예를 들어 아마눌라 칸과 서방으로 유학한 일단의 유학생들은 아프간의 실패한 근대화 실험의 선구자가 되었다. 하지만 최근 20년간 아프간 인구 30%의 국외 망명은 공부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전쟁과 가난이 그들을 떠나게 만들었고 그 엄청난 숫자는 이제 이들이 망명해 있는 국가에도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이란에 2백50만, 파키스탄에 3백만이나 되는 이들 아프간 난민은 두 나라에 커다란 골칫거리다. 아프간 난민의 본국 송환을 담당하는 관리들에게 ‘이들은 우리 손님이 아니냐’고 내가 항의하자 그들은 ‘20년.. 2007. 7. 29.
잊혀진 나라 '아프간' <4> '마약'이 유일한 외화벌이 수단 현재의 아프간 경제력으로는 인구의 절반 정도를 부양할 수 있다. 그나마 부의 대부분은 국내 범죄조직이 갖고 있거나 불안정한 정권의 유지에 쓰이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에게는 거의 돌아가는 것이 없다. 농사 외에 아프간인들은 어떤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을까? 이란의 건설공사장에서 일하거나 전쟁에 참가하거나 탈레반이 운영하는 학교의 신학생이 되거나중의 하나이다. 약 3백명에서 1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2천5백개 이상의 탈레반 학교는 배고픈 고아들의 안식처이다. 이들 학교에서는 누구나 빵 한 조각과 스프 한 사발을 먹을 수 있으며 쿠란을 읽고 기도를 암송하며 나중에는 탈레반 병사로 참전한다. 그것이 ‘일자리’라고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국외 망명과 마약 밀수, 그리고 전쟁이 생계수단화한 것은 바로 아.. 2007. 7. 29.
잊혀진 나라 '아프간' <3> '무기' 빼곤 모든 것이 중세적 근대주의에의 면역 1919년부터 1928년까지 아프간을 통치했던 아마눌라 칸은 이란의 레자 샤, 터키의 케말 아타투르크와 동시대인이었다. 개인적으로 그는 근대주의에 젖어 있었다. 1924년 그는 유럽을 순방하고 돌아오는 길에 롤스로이스를 사 갖고 들어와 그의 개혁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개혁 프로그램에는 의상의 변화도 포함됐다. 그는 왕비에게 베일을 벗을 것을 권했고 남성 국민들에게도 전통의상 대신 서양 옷을 입으라고 촉구했다. 또 아프간의 전통에 반해 일부다처제를 금지시켰다. 전통주의자들은 즉각 아마눌라의 근대화 개혁에 반대했다. 농경부족중 어느 누구도 그의 개혁에 동조하지 않았고 그에 대한 반란이 일어났다. 한마디로 그의 개혁은 사회경제적 기반이 없는 근대화였다. 부족간 결혼도 금할 정도의, 일체의 공.. 2007. 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