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단연 돋보이는 제목. 외우기도 쉽고, 이 사람이 시를 장난으로 썼나하는 생각도 들어 집어들게 만드니, 일단 제목은 성공하신 것 같다. <메롱메롱 은주>는 빈 자취방에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만나 피식 웃음 짓게 하는 시였다. 왠지 이 시를 쓰던 시인의 처지와 거실에 돌아가는 냉장고 소리를 들으면서 이 시집을 읽는 내 처지가 일치하는 듯해 우습기도 하고 은주라는 이름이 '메롱메롱 은영'으로 읽혀서 슬프기도 하고. 기형도의 <빈집> 처럼, 이 시도 자꾸 읽어봐야 뭔가 잡힐 듯 잡힐 것 같은 시였다. 단 6자 이지만, 서술식으로 길게 늘어진 제목보다 호기심과 의미가 많이 담긴 제목이다.
가끔 과선배들의 졸업작품을 읽어볼 때가 있다. 게 중에는 정말 안정적인 글빨을 지닌 선배들이 있다. 그건 뭐랄까, 올곧게 포장된 라면박스 같은 느낌이랄까. 네모속에 네모난 라면, 포장지 속에 네모난 라면발 같은 정직하고 완전한 틀. 김점용의 시들도 그랬다. 라면박스에서 네모난 라면을 안 끓이고 부숴먹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안정감도 있고, 몸에 좋진 않지만 맛도 있다. 어떻게 끓여먹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메롱메롱 은주>외에도 <천축사>나 <생명이 밉다>, <감자꽃 피는 길>이 좋았는데 그 중에 <감자꽃 피는 길>의 전문을 옮겨보았다. 어느 집 문 앞에서, 그 집 주인이 기척을 하지 않아 두드리지도, 쳐들어가지도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는 내 모습이 생각나서 조금 울었다, 챙피하게. 나이들어 이게 무슨 짓인가 싶다가도, 기다리는 것도 사랑일 수 있다는 롤랑 바르트의 말을 가슴팍에 우겨넣고 휑하니 먼 곳을 바라본다. 감자꽃이 보일 것도 같다.
내가 아직 너의 문간에 이르지 못했으니
이곳에서 그냥 밤을 새고 말리라
오늘 하루 얼마나 걸었을까
지는 해의 부르튼 발바닥이 보여
문을 잠근 그대여
너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을 테지
이 길의 두근거림
가도가도 계속되는 흰 꽃들의 속삭임
가만히 주저앉아 쓰다듬어 보면
종일 햇볕이 데우지 않았어도
수많은 발길로 뜨거워진 길
긴 가뭄에도 땅 속으로 뻗는 저 알알의 힘
너는 아직 모르고 있을 테지
간간이 한 줌의 굴욕
한 줌의 신산한 기억들도
흰 감자꽃 속에 널브러져 있지만
길을 따라 아름답게 늙어가는 사람들
너는 아직 손 잡아보지 못했을 테지
문을 잠근 그대여 나는 아네
언젠가 내가 너의 문간에 이르렀을 때
너무 단단히는 잠그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삐걱거려 주리라는 것을
끝끝내 열리지 않아 그곳에 나의 무덤을 짓더라도
아주 희망이 없지는 않게
너의 숨결엔 듯 흔들리며 삐걱거려 주리라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