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마음을 달래러 떠난 서울나들이길에 들른 유섭카쉬전. 인물사진전이라는 것이 흥미를 끌었다. 인물사진은 의미와 구도를 담기에 참 흥미로운 것 중 하나일 것 같다. 사람이 만들어내는 구도는 정형화되어 있지 않을 것이고, 의미는 찍히는 사람의 역사와 보는 사람의 역사가 만나 전혀 다른, 다양한 모양들을 떠올리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들어서자 학교에서 학생들이 우르르 들어오는 바람에 초반에 제대로 감상하기가 어려웠던지라, 거의 3시간을 전시관에서 보냈다. 모르는 사람은 누군지 찾아보고 그래야 하는데, 후루룩 훑고 나가는 아이들을 보니 마음이 씁쓸했다.
전시관을 들어서자마자 보인 것은 조지 버나드 쇼의 초상이다. 노인 특유의 익살스러운 포즈와 표정이 재미있다. 특히 눈빛. 저 눈빛을 어떻게 끌어냈을까 궁금하기까지 했다. 정면사진보다는 측면사진이 많았는데, 측면을 보이는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했다. 더 신기한 것은 측면이고, 흑백임에도 인물의 표정이 드러난다는 사실이었다. 다 어둡지만은 않은, 반은 어둡고 반은 밝은 사진들이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몇가지 인상적인 사진은
피터로어의 사진. 인물의 얼굴이 램프 뒤로 보여지도록 찍었는데, 램프유리 뒤에 가려진 얼굴에서 드러나지 않는 갈등이 보였다. 얼굴의 음양을 극적으로 살린 것이 인상적이었다.
프랑스와즈 마리아크. 가장 어둡지만, 빛을 최소화하여 얼굴의 윤곽을 드러낸 사진이다. 분위기가 제대로 사는 사진이다.
파블로 카잘스의 사진. 첼로를 켜는 뒷모습을 찍었는데 오른쪽 위로 보이는 창문이 어울려 인상적이다.
자코모 만주의 사진. 조각가 인데, 조각하려는 모형 그 중 심장부분을 두 손으로 만지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앤디워홀이나 엘 허시펠드의 사진도 익살스러웠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은 바로 오드리햅번과 테레사수녀.
오드리햅번의 사진은 정말 아름다워서 한참을 그 앞에 서서 발을 떼지 못했다. 그녀를 읽는 코드는 사랑의 존재 그 자체였다. 그녀를 사랑해야 할 의무를 느끼게 하는 그 단아하고 감성적인 얼굴선과 표정은 정말 아름다웠다. 이 사진이 카쉬전의 메인에 계속 등장하는 이유를 알게 하는 사진이다. 아름다운 옷이나 화장이 아닌 햅번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눈에 가득 묻어난다.
테레사수녀의 사진은, 솔직히 말하면 매섭다.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본다면 무서울 정도로 늙고 추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읽는 코드는 사랑에 대한 투지였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그녀의 인생 그 자체에 있다. 하지만, 뭐랄까 여성으로서 그녀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은 바로 건너편에 걸린 오드리 햅번의 사진 때문이었다.
단지 외모의 문제가 아닌, 여자라는 단어가 자꾸 머리에 맴도는 그런.
마지막에 나를 웃게 한 사진은 디지 길레스피의 사진이었다. 그녀가 내가 말했다. 웃어. 인생은 재즈야.
사진이 아니라 많은 인물에게 이야기를 건넬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미 그들이 살고 갔던 삶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의미있던 전시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