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첫 희생자는 진실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서문. 전에 읽었던 <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 이후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남미와 아프리카, 아시아, 미국까지 오늘날의 분쟁지역이야기를 세계정세를 고려하여 종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책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이란, 이라크를 비롯하여 발칸반도의 보시니아, 코소보, 쿠바나 동티모르, 미국까지 15개국의 분쟁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전에나 지금이나 나를 찌푸리게 하는 것은 시에라리온의 도끼 내전. 쿠바의 관타나모 이야기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과 맞물려 또 새롭게 접할 수 있었다. 아름답다고만 알려져 있는 보스니아 내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제분쟁의 주역, 미국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의 오만한 제국주의는 결국 숫한 민중의 삶을 앗아가고 있다. 아랍세계의 석유패권을 두고 벌이는 그들의 전쟁놀음. 얼마전 헨리키신저가 "우리는 세계경찰이 아니다. 국익이 있을 때에만 움직여야" 한다는 그의 말은 미국의 태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미국은 정의가 아니다. 자신들이 정의인 줄 아는 정신병자와 같다.
김재명 기자의 책을 보면서 내 인식이 바뀐 대표적인 한 가지는 이슬람의 자폭테러에 대한 것이었다. 아랍사람들의 자폭테러가 이슬람교에서 죽어서 72명의 여성과 놀 수 있고 동성애도 허락된다는 방탕한 이유에서 연유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었는데, 그것이 이스라엘에서 퍼뜨리는 이야기라는 팔레스타인 쪽의 이야기.
자살폭탄테러를 저지르는 사람은 그들의 속한 사회에서 비교적 교육을 잘 받은 중산층 가정 출신이고, 대부분 종교적인 믿음이 강한 이상주의자들이다.
자폭테러를 저지르는 사람은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이라는 인식도 옳은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왜 나는 이렇게 알고 있었을까. 물론 자폭테러를 자원하는 이들은 가족을 이스라엘에 의해 잃거나 스스로가 당한 기억이 있는 자들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못나서가 아니라 외부에 의해 주어진 상처 때문이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였다. 하지만 기존에 있는 팔레스타인과 폭탄테러에 대한 이런 잘못된 인식은 그들을 비이성적인 집단으로 오해하도록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아랍지역에 가기 전에 숫하게 들은 이야기가 "조심해라"였다. 이슬람교는 외국인을 속여도 괜찮다는 법이 있어서, 무조건 우리를 속일거라고. 하지만 모든 이슬람교인이 다 그럴거라는 생각 자체가 웃기지 않았나. 후로도 간 터키나 요르단, 시리아 등에서도 나는 많은, 참으로 이성적인 사람들을 만나왔다. 암만에서 택시기사에게 사기(?) 당하고 겁먹은 내게 위로를 건넨 것도 시리아에서 요르단까지 와서 일하는 노동자 아저씨였고, 타고갈 버스를 놓친 여행자를 자기 자리를 양보해가며 태워준 것도 터키에 사는 학생이었다. 그리고 그 거리에서 숫하게 본 것은 하마스 지도자나 평범했던 샤히드(순교자) 였다.
김재명 기자는 하마스 지도자 야신과의 만남, 아랍국가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자폭테러를 억압에 맞선 저항적 정치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하마스의 저항을 테러라 일컫는다면 그것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민중들에게 가하는 국가테러에 맞선 테러의 균형이라고 야신의 주장을 나는 지지한다. 자폭테러 자체를 긍정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순교'라는 맥락은 공감할 수 있다.
오는 5월 3일에 올 김재명 기자의 강연을 기대하고 있다. 아직 정리되지 않고 머리를 맴도는 많은 이야기들을 그는 어떻게 1시간 속에 녹여낼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