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 작년 이맘때처럼 봄빛이 진한 4월이 다시 돌아왔어요. 아빠 가신지 1년째네.
아부지 가신 뒤로도 시간은 변함없이 흘렀고, 나도 동생도 엄마도 변함없이 살아가고 있어요.
무표정한 시간의 뒷모습을, 아버지를 보내고서 보게 되네요.
아빠가 전화해서는 "뭐하고 사냐"고 자주 물었었는데, 요즘 나는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를 생각하며 살고 있어요. 쓸데없는 생각한다고 뭐라 하실테지만, 요즘 그렇네요.
많은 일을 하고 살지만 기억에서 사라지고, 손에 쥐어지는 것은 없고,
누군가를 좋아하지만 이 또한 기억에서 사라져가는 것을 멍하니 지켜볼 뿐이고,
아무리 애를 써도 되지 않는 일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명료할 뿐이고.
슬프게도 나는 여전히 생각만 많지요.
일본에서 지진이 났어요. 그래서 핵발전소가 터져서 지금 난리여요. 일본과 속수무책으로 숙명적인 공동체가 되어버렸어. 먹을 것, 숨쉬는 것도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되어버렸어요.
저도 걱정이 되요. 나는 이제 엄마도 되어야 하는데, 태어날 아이에게 이런 세상을 보여줘도 될지 고민도 되구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걱정이 되요.
개인적인 고민을 떠나서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일들은 더 복잡하고 재미없어요. 모두 자기 이익이 상할까 걱정인가봐요. 자기 생존보다 이익이 먼저 걱정되니, 소위 가진 사람들이 돈에 마비된 이성으로 살아가는 건 명확해요. 나도 그 논리에 물들까봐, 겁이나요. 나이가 들어가는게 두렵기도 해.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참 묘했던 일이 있었어요. 뭐냐면, 내 기억에서 아빠의 모습은 더 이상 늙지 않는다는 사실. 머리가 하얗게 변하고 더 주름진 아빠의 모습이 아니라, 가시던 57세 그대로라는 게 참 묘하더라구요. 내가 머리 하얗게 늙었을 때도 아빠는 57세. 내가 58세 될 때까지(만약 살아있으면) 누나라고 부르세요. 아빠는 참 아빠답게 살고 가셨어요. 대단해.
엄마한테 그랬다면서? 은영이는 제 갈길 잘 찾아서 잘 살거라 걱정 안되는데, 영훈이는 걱정이라고. 내 걱정도 좀 하시고 가시지. 나는 간섭말라고 말하며 제 갈 길 찾아 열심히 왔는데, 문득문득 나도 누군가의 걱정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 사랑받고 있다는 마음 누구나 갖고 싶잖아요. 아빠도 아시다시피, 저도 쌩으로 혼자 저벅저벅 살았잖아요. 부모님이 무능력하셔서. 저는 부모 탓 확실하게 해요. 감사도 확실하게 하구요. 못 해드린 것 없다고 생각해. 거기서는 내 걱정 좀 하고 사세요. 저 년이 왜 저렇게 시집도 못가고 버티고 사나, 성질부리면서 뭘 그렇게 찾아헤메나 그러시면서. 아버지의 못다한 의무야.
아빠, 나한테 딱 들킨 것도 있어. 아빠의 마지막 연애편지. 참 못 볼 거 많이 본다, 나. 그거 보고 나 5년 더 늙었어. 그리고 생각했지. 아, 내 연애편지들도 어서 불사질러야지.
그래요, 요점은 그냥저냥 잘 살고 있다 였어요. 그만 쓸래. 가슴이 먹먹한게 아부지 보고 싶네.
그래도 더 있다갔으면 좋았을걸. 나 시집가는 것도 보고, 내 아이들도 봐주고 그랬으면 좋았을걸.
보고싶네요, 아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