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短刀

7월 15일, 새벽녘에

by bravoey 2011. 7. 16.

내가 아직 너의 문간에 이르지 못했으니
이곳에서 그냥 밤을 새고 말리라
오늘 하루 얼마나 걸었을까

지는 해의 부르튼 발바닥이 보여
문을 잠근 그대여
너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을 테지
이 길의 두근거림

가도가도 계속되는 흰 꽃들의 속삭임
가만히 주저앉아 쓰다듬어 보면
종일 햇볕이 데우지 않았어도
수많은 발길로 뜨거워진 길

긴 가뭄에도 땅 속으로 뻗는 저 알알의 힘
너는 아직 모르고 있을 테지
간간이 한 줌의 굴욕
한 줌의 신산한 기억들도

흰 감자꽃 속에 널브러져 있지만
길을 따라 아름답게 늙어가는 사람들
너는 아직 손 잡아보지 못했을 테지
문을 잠근 그대여 나는 아네

언젠가 내가 너의 문간에 이르렀을 때
너무 단단히는 잠그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삐걱거려 주리라는 것을

끝끝내 열리지 않아 그곳에 나의 무덤을 짓더라도
아주 희망이 없지는 않게
너의 숨결엔 듯 흔들리며 삐걱거려 주리라는 것을 ...


- 김점용 시 <감자꽃 피는 길>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