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短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by bravoey 2011. 8. 8.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눈이 푹푹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즈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아무도 없는 강릉의 밤 언저리에서 펴든 백석의 시집.
그리고 만난 그의 나타샤.
산장의 창문 너머로 흰 눈이 내리고 흰 당나귀를 탄 그가 나타샤와 함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앞에 소주는 없었지만 쓸쓸함은 가득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야. 그가 말했다. 나타샤도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마음 속으로 한 송이 두 송이 떨어지고 있다, 아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