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短刀

완벽한 겨울

by bravoey 2011. 12. 3.


서로 아무리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어가는 두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들여다보면 봄과 겨울이라는 사랑의 계절로 나뉜다는 얘기를 한다. 봄과 겨울의 구분은 온기를 주는 쪽과 온기를 받는 쪽의 구별을 말 하는 것이다. 겨울 쪽에 있는 사람은 늘 상대를 기다린다. 자신이 더 많이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모든 무심한 것들을 견뎌야 한다. 좀 더 따뜻하기를, 그리고 먼저 보고 싶어 해 주기를 바라지만 결국 그런 일을 하는 건 이쪽이다. 반대로 봄에 사는 사람은 온기로 가득한 상대의 따뜻함에 익숙해져 있다. 기념일을 챙기거나 눈길을 주는 것, 전화를 걸고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언제나 상대방이 먼저이다. 이쯤 되면 다들 생각할 것이다. 결코 겨울에 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고. 그러나 그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사랑은 원래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것이니까 말이다.

어쩌면 봄의 사람이 된 입장에서는 이 사랑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저 인생에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랑 중 하나 일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사실을 사랑이 지나고 나서가 아닌 사랑을 하면서도 잘 알고 있다. 스스로 목메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에 그는 사랑에 대해 편안할 수 있다. 만에 하나 이 사랑이 끝난다고 해도 못 견딜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사랑의 시작도 두렵지 않았듯 사랑의 끝도 두렵지 않을 수 있다. 왜냐면 그는 봄의 사람, 온기를 받는 쪽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겨울 쪽에 사는 사람은 다르다.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만큼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서 가끔은 서운하고 서글픈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차마 말 하지 못한다. 혹시나 상대가 실증을 느낄 까봐. 그래서 이 사랑을 피곤하다는 혹은 기타 이유로 그만 하자고 할 까봐 절대로 말 하지 못한다. 온기를 주는 사람에게 있어 사랑이란 끝나도 좋을 무언가가 결코 아니다. 그에게 있어 사랑이란, 끝난다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 어딘가가 저릿하게 아파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사랑을 좀 더 붙잡으려고 한다. 그러나 겨울 쪽의 사람이 진짜 불쌍해지는 것은 이 대목부터이다. 그는 사랑을 붙잡는 방법도 마음대로 선택하지 못한다. 잘해주면 부담스러워 할 까봐, 조금이라도 서운한 마음을 표현하면 질려 할 까봐.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늘 어정쩡하게 사랑할 수밖에 없다. 왜냐면 사랑이 끝나는 것이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이쪽이니까.

아무리 원하지 않고 그리워하지 않으려고 해도 겨울에 사는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좀 더 나 자신을 챙기겠다고, 세상에는 사랑 말고도 중요한 게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머릿속에서나 가능할 뿐이다. 사실 겨울에 사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선택권이 없다. 그는 이미 상대에게 모든 것을 빼앗겨버렸다. 문제는 빼앗아간 상대가 그것을 그리 욕심내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빼앗으려 하지도 않았는데도 알아서 다 줘 버린 것, 그렇게 마음이 가 버린 것이 겨울 쪽에 사는 사람의 운명이다.


Laughing Stone 연애칼럼 중에서

나는 완벽한 겨울.
겨울은 늘 봄을 꿈꾼다. 겨울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