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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아프리카 술집 외상은 어림없지

by bravoey 2011. 12. 4.

다른 문화권의 소설은 이야기에 몰입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상상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소설도 그랬다. 지명이나 공간이 낯설어 차라리 책에 지도나 사진을 넣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프리카의 술집 <외상은 어림없지>를 중심으로 주인공 '깨진 술잔'의 이야기와 술집을 드나드는 인생의 이야기가 거칠 것 없는 문장으로 쓰여진 이 소설은 솔직히 재미는 없었다. 하지만 '거칠 것 없는 문장'의 느낌을 번역자가 잘 살렸다는 점, 중간중간 작가의 독서력을 알게 하는 소설들의 등장, '지적인 마스터베이션'에 대한 이야기는 읽어볼만 했다. 몹시 따라 써보고 싶은 전개방식이기도 하다. 아주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방식이라면 그렇다. 소설에 등장하는 남성들의 시선은 여성을 성적대상으로만 딱 고정시켜보고 원망의 대상으로만 등장한다. 남성들은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섹스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로만 가늠하고 있었다. 전혀 젠틀한 척 하지 않는 것은 좋으나, 얼굴이 팍팍 찌푸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깨진 술잔'이 설파하는 '지적인 마스터베이션' 부분인데 아주 흡족했다. '깨진 술잔'이 '고집쟁이 달팽이'에게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설명하는 장면인데, 소위 작가라는 사람들이 보이는 행태 - 똑똑한 분장을 하고 텔레비전에 나오거나, 사랑받지 못하는 작가 행세를 하거나 자기는 천재라고 믿는 부류- 들을 꼬집는다. 그러고는 자기는 비틀리고 두서없는 언어로, 말이 나를 찾아오는대로 써내려 갈 것이고, 독자들이 '이 정신없는 시장바닥의 개 짖는 소리같은 소설은 뭐냐'고 하면 이렇게 말할 거라고.

이 시장바닥이 바로 인생이거든, 그러니까 내가 사는 동굴에 들어오시지, 사방이 쓰레기 천지, 썩은 내가 진동할 테니까, 나는 인생이 그런거라고 생각하거든, 네놈들이 지어내는 허구는 재주 없는 것들이 재주 없는 것들을 만족시키려는 개수작이야, 너희 책에 나오는 인물들이 우리가 어떻게 일용한 양식을 얻는지 이해 못하는 한, 문학이란 없을 거야, 그저 지적인 마스터베이션이 있을 뿐이지, 문둥이가 문둥이 사정을 안다고, 너희는 너희들끼리만 이해할 수 있어 라고 말이다, - 193p

재미도 감동도 없는 소설들을 그저 상을 받았다는 이유로 읽어댔던, '등단' 지망생 중 하나인 나의 짱구를 퍽 치면서도 속이 시원한 말이었다. 아오, 말로 뭔가 집어내지 못했던, 소위 등단한 것들에 대한 질투를 시원하게 발사해주시며 역으로 내게 엄청난 독설을 던졌지.

글 쓰는 걸 즐겨보기나 했냐? 오만 잡 글 다 써 보기나 했냐? 등단하면 니 글이 조금 낫냐? 마방쿠 씨가 던지는 독한 질문들에 답할 말이 없었다, 젠장. 책장 탁 덮으니 그 아저씨 마지막까지 나에게 한 마디를 하고야 만다.

신나게 써보기나 해라, 씨벌.

(쳇, 재수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