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短刀

말글

by bravoey 2011.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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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숨을 거두었을 때, 주치의는 말했다.
"잠시 가시는 길 인사 나누시게 피해있을께요."
그리고는 커튼을 치고 아빠와 나를 남겨두고 나갔다. 나가봤자 커튼 사이였다. 중환자실에는 아빠와 비슷한 사람들이 커튼 하나 사이를 두고 있었다.
나는 정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울지도 못했다. 황망히 아빠의 감은 눈을 바라보며 너무나 부어버린 손을 잡았을 뿐이다. 결국 나는 아무 말도 못한 채 커튼을 걷었다.
달려온 엄마는 아빠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시원하게 울음을 쏟아냈다. 그렇게 울 수 있는 엄마가 부러웠다.

생각해보면 나는 삶의 모든 결정적인 순간에 입을 꼭 다물었다. 정말 간절히 원하던 것이 떠날 때에도 그랬다.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어도 그랬다. 나는 괜찮다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괜찮은 것이 아니었는데 중요한 순간에 '말'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서 그냥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놓쳐버린 순간이 너무나도 많았고, 지금도 그런 순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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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수 있어서 다행이다. 말할 줄을 모르는 내게, 쓸 수 있다는 것은 결정적이었다. 
삶의 결정적인 순간은 모두 기록되어 있다.
비록 기억이 완전하지 않더라도 기록은 그 기억을 살려낸다. 가끔은 기억을 재구성하기도 한다.
글은 내가 진실해질 수 있는 가장 큰 도구다. 나는 가끔 누군가에게 그것을 이해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