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단한 생활에서도 우리는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놓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얘기하면 소설을 쓰기라도 꾸준히 했으면 좋겠다는 헛헛한 욕망을 서로에게 고백해댔던 것 같다.
얼마 전 만났을 때도 우리는 그랬다. 쓰고 싶다고. 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다 이런 욕망을 갖게 되었는지. 도피로 시작된 글쓰기가 삶이 되어 이제는 버리지도 못하게 된 현실을 공유하면서 또 무작정 쓰고 싶다고 말해버렸다. 지난 소설들을 다시 보며 나는 사실 좌절했다. 사실 매번 좌절한다. 그냥 이렇게 무작정 쓰기만 하면 될까. 그냥 이렇게 쓰기만 하다가 끝나버리진 않을까. 그럼 내가 원하는 건 뭘까. 쓰고 등단하고 잘나지고 싶은 걸까. 인정을 받으면 그걸로 된걸까. 자신이 없다. 내가 잘 쓰는 편이라고 생각했던 대학시절을 삭제하고 싶다. 너무나 고민없이 나는 글을 쓰겠다고 생각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 생각을 고쳐먹고 싶다. 제길, 근데, 나 한때는 문학소녀였어, 라고 말하면서 그 시절을 추억하기는 죽기보다 싫다. 문학이 뭔지도 모른채 그런 말을 입에 올리고 있다니, 벽에 머리를 백번은 박을 일이다. 문학이 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봐도 재밌는 소설 하나는 쓰고 죽어야 하는데. 아- 씨발!
2.
특별히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생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관계도 그렇게 많이 확장된 것도 아니다. 서툴러서 감정기복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근본마음이 흔들릴 정도는 아니다. 그 정도로 오래되지도 않았다. 오래되었다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짧아도 깊을 수 있고, 깊어도 짧을 수 있다. 연애엔 별다른 목표가 있지 않다. 그저 가는 것. 다만 별스럽게도 자꾸만 옹졸해지는 마음을 나 스스로가 견디기 어려울 때가 많다. 나 하나에만 집중하던 마음에 자리가 하나 더 생기니 자꾸 좁아지는 모양이다. 전에는 멀쩡히 혼자도 잘 놀던 일상이었는데 이제는 혼자 있으면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 요즘 나는 '내가 왜 이럴까'하는 생각에 자주 휩싸인다. 내가 이렇게 옹졸하고 참을성없으며 심술궂은 인간이었나 싶을 정도로. 내가 저 인간을 괴롭히는 것으로 뭘 얻으려고 이렇게 안간힘을 쓰나 싶을 정도다. 가끔은 내가 감정에 휘말려서 좋지도 않은 걸 좋다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나 자신을 믿지 못하니 마음자리에 앉은 그도 불편해진다. 그렇지만 그가 무슨 죄인가! 이 모든 것이 나로 인해 생겨난 감정들인것을. 내가 왜 이럴까 하면서 마음을 다잡지만 그 때 뿐이다. 다시 자근자근 괴롭힌다. 그는 괴롭지 않다고 말하지만 짜증은 대박 날 거다. 아무리 이런저런 상황을 설명하고 노력을 해도 저 여자가 왜 자꾸 나를 괴롭히려들까, 언젠가는 생각할거다. 그런 순간을 그가 겪지 않도록 잘 해야 하는데 나는 왜 이럴까. 안 보이면 안 보이는대로, 보이면 보이는대로 왜 나는 이 지랄일까. 아- 씨발!
3.
불안이라는 먼지들을 여기저기서 쓸어담아내면 먼지는 먼지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불면 날아가기도 한다. 잠시 영혼을 붙잡아 흔드는 불안이라는 병은 삶을 살아갈 힘을 주고 날아가기도 한다. 모든 것이 다 괜찮은 삶이라면 얼마나 힘 빠지는 일인가. 괜찮지 않은 것들로 인해서 삶에 힘이 들어가고 틀이 세워지는 것 아닐까. 그러니 조금 불안하더라고 달려가 볼 일이다. 언제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아는 나이니까.
계획없이 살겠다는 생각에도 살은 붙는다.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 일어나고 있다. 그것이 혼자이든, 누구와 함께든 그 욕망은 참 건강해보여 좋다.
여름에만 볼 수 있는 백일홍을 보려고 도산서원을 찾는다는 그 아저씨의 말처럼, 지금이기에 볼 수 있는 내 인생의 백일홍이 있을 것이다. 그 백일홍을 위해 지금은 자아분열의 때. 때마다 주어지는 기운으로 매일매일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족한 삶. 비워내고 또 비워내야 채워지고 또 채워지겠지. 아-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