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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記

내 발의 등

by bravoey 2014. 1. 2.

결혼하면서 맞이한 새해, 우리 부부는 공동목표와 개인목표를 정하고 서로 할 수 있도록 해보자 으쌰으쌰하며 결혼 후 새해를 맞이했었다.

이제 두번째 새해를 맞아 계획을 세워보자고 남편과 마루에 달력을 펴놓고 이런저런 이야기했다. 뭐 하고 싶은 일 없냐고 묻는데, 왠지 남편 얼굴이 어두워보였다. 담영이랑 뭘 해보자고 이야기를 꺼냈는데, 담영이와 무엇을 하는게 가능한지 모르겠다고 말하던 차였다. 순간 내뱉은 말,

 

"힘들구나?"

"응, 힘들어."

 

정말 힘든 표정을 말하는데, 뭔가 머리를 쿵 치고 지나간 기분이었다.

그래, 그 순간 그래, 우리 힘들구나. 나도 힘들고 남편도 힘들구나, 모르진 않았지만 늘 지나치던 그 사실이 머리에 눈 녹듯 스며들었다. 둘 다 알고 있었지만 말 꺼내기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출산을 하고 나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은 그래도 아내 혼자 고생했다고 아이를 떠안고 재우고 집안일도 했다.

밤에 재우는 건 거의 남편이었다. 야근하고, 회식하고 와서도 아이를 본 적도 있다.

주말엔 대부분 외출했다. 외출하면 거의 남편이 애를 업고 안고 다닌다.

힘들만도 했는데, 힘들다고 직접 말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남편이 주말에 나 두 시간만 나 하고 싶은 거 하면 안돼냐고 물었을 때, 내가 못하게 한 적은 없었는데 왜 그러나 생각했었다. 게임을 하거나 티비를 보고 있으면 나는 어김없이 잔소리를 날렸다. 그런 거 할 시간에 집안일 좀 더 하지 싶었다.

일 마치고 집에 오면 티비를 켜고 자기 전까지 봤다. 티비를 보면서 우리는 이야기를 나눴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힘들었을 것이다. 혼자 였을 때 혹은 둘이었을 때 누리던 것이 이제는 어려운 일이 되었으니 힘들 수 밖에.

 

나는 집에서 매일 아이와 씨름하다가 남편이 들어오면 아이를 던져버리듯 맡기고 늘어져 티비를 보곤 했다.

친정에 가도 엄마가 일 마치고 오면 담영이를 엄마에게 던져놓고 티비를 보았다.

생각해보면 지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지쳐서 생각이고 뭐고 하기 싫어서 재밌는 프로그램, 드라마를 찾아봤는지도 모르겠다.

왜 힘들다는 사실을 알면서 외면하듯 피했을까. 그거 말하는게 뭐가 그렇게 큰 일이라고.

세상에 아이 키우는 일이 쉽고 재미나기만 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힘들다'고 말한 순간부터 마음이 편안해졌다.

남편은 우리에게 힐링이 필요하다며, 한 달에 한 번은 서로 각자 쉬는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다. 지금은 3-4시간 정도 각자의 힐링타임을 갖고, 아이가 젖 떼고 이유식 하면 각자 반나절씩 쉬자고. 와, 생각만해도 신이 났다.  

그리고 하루에 한 번 서로 안마해주기.

뭔가 거창하게 하기를 바랄 수록 서로 지치고 힘들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담영이와 함께 즐겁고 재미나게 살기 위해 거창한 뭔가를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힘들다는 것을 알고 우리부터 즐거워질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훨씬 나은 일일지도 모른다.

 

아이가 크는 시간을 보내고 기다리는 일은 아직도 앞이 깜깜하지만, '내 발의 등'을 생각한다.

성경에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 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내 발에 등을 켜면 내가 볼 수 있는 건 멀리가 아니라 바로 내가 발 디디는 그 곳이다. 내가 살아가는 현장, 생활에 바로 말씀이 필요하고 그 만큼을 비춰 알게 하고 이끄신다는 말.

멀리보기가 어려운 것이 아이 키우는 일 같다. 내게 다가오는 하루하루만큼의 밝기가 아이를 키우는 일인 것 같다.

그 만큼의 밝기들이 모여 아이가 목을 가누고 웃고 뒤집고 기고, 서고, 걷고, 성장하는.

그렇기에 하루하루를 즐겁고 재미나게 살 수 있다면 우리 육아생활도 힘들지만 즐겁고, 어렵지만 신나게 되지 않을까.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 정구철씨가 있으니까 행복하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