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短刀

길은 한사코 길을 그리워한다 - 임동확

by bravoey 2019. 6. 7.



다가설수록 멀어지는 지평선처럼 단지 접근 불가능한 절대 고독의 근원 혹은 알 수 없는 전망의 바탕을 암탉처럼 품고 있는 길.

험하거나 평탄한 길들이 안겨주는 가장 값진 선물을, 놀랍게도 예정된 결말이나 확신에 찬 기대를 가차 없이 저버리는 뜻밖의 경험이다.

해피엔드로 끝나기 마련인 싸구려 영화와 달리 어떤 길이든 늘 아직 때가 이르지 않는 출발 혹은 이미 지나쳐버린 종말을 들키고 싶은 비밀처럼 감추고 있다.

뒤늦게야 조수 겸 아내인 착한 젤소미나를 잃고 만취한 채 바닷가에서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차력사 짐파노의 속최이든, 감옥에 간 자신을 기다리다 못해 배고파 외간남자에게 몸을 판 아내의 불륜을 끝내 용서하지 못하고 고향 가는 눈길 속에서 죽어가게 한 남편 세이트알리의 절규이든,

결코 원하지 않았을 그 사태들조차 들판 지나 산맥을 넘어가는 전선들처럼 또 다른 비밀의 정점으로 길게 뻗어 있다.

지금 내 앞에 끝이 보이지 않는 한계 또는 방랑이 또 다른 출발의 경계라는 듯 내륙의 길이 끝나는 곳에 물길이, 물길이 다하는 곳에 하늘의 길이 다시 한 번 미지의 지상과 길게 입맞춤하고 있다.

한사코 길을 그리워할 따름인 길들이 길과 만나지 못하면 결코 길이 아니라는 듯 힘든 처방의 이정표처럼 서성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