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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記

볕 좋은 오후를 마음껏

by bravoey 2022. 12. 18.

 12월 안식월의 반이 흘렀다. 사실 2주간 아주 최소한의 일은 해야했지만 그 간 해왔던 일과 떨어져 온 지 보름인 것인데, 이런 시기가 근래에는 좀처럼 없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길었다고 생각했던 여름휴가도 사실은 잠깐의 숨통을 돌린 것이었다. 잘 보내야 한다,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해야한다는 강박도 쉬니까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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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두운 저녁이 아니라 환한 낮에 집 안의 사물들을 바라보고, 원영이가 밥 먹는 얼굴을 오래 쳐다보는 것이 제일 신기하다. 아이가 음식을 입에 넣고 오물오물 하는 모습이 이렇게 신기한 일이었나 생각하며 한참 바라본다. 오물오물 하는 그 입 안에 내 시간이 흘러가는 모양이 보일 정도다. 
 이제 녹색연합의 일, 사무처장의 일을 2년으로 선을 긋는다. 20년이다. 이제 그 후의 나는 어떤 일로 삶의 보람을 찾을지 부지런히 생각해야 할 것이다. 길이야 어디든 열리겠지만 어떤 길로 들어설지 나는 조금 더 신중해야 할 것이다. 쉬는동안의 나는 지금, 결국 글쓰기로 몸을 기울인다. 숙명같은 일처럼, 글쓰기로 마음과 몸을 기울인다는 것은 일종의 부채감인 듯 하다. 세상에 글 쓰는 사람이 무수히 많다. 잘 쓰는 사람도 엄청나게 많고, 내가 글을 특출나게 잘 쓰는 편도 아님을 알게 된다. 그러면 나에게 글쓰기는 어떤 의미인가 생각하면 나를 지키고, 나를 나타내는 그래도 남보다 잘하는 기술. 그 정도인 것 같다. 어떤 것으로 나를 빛나게 할까 고민하면 다른 어떤 것보다 글쓰기로 해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소설을 다시 써볼까 꺼내보다가 생각한 것은 여전히 나는 무엇을 쓰고 싶은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다. 옛날, 20대와 30대에 하고 싶던 이야기는 그 시간에 머물며 내는 빛이 있었다. 그것을 40의 내가 다시 만지는 것은 그 빛을 가리는 일 밖에 되지 않음을 또 깨닫는다. 언젠가 40의 내가 써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을 새롭게 구성하고 써내려가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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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내가 진짜 바라는 삶이었나. 그 질문이 가장 어렵다. 지금 내가 바라는 삶은 무엇일까,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 답을 생각해내는 것이 가장 어렵다. 단순한 열망보다는 이성과 계산이 빨라진 나이라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삶의 어느 순간마다 나는 질문하고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그 선택이 지금까지 처럼 너무 어리석지 않기만을 바라며, 지금껏 기도해온 대로 내가 믿는 그 분이 가고자 했던 길과 비슷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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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2주는 이제, 더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단순하고 즐겁게 놀자. 그리고 볕 좋은 오후를 마음껏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