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때 인 것 같다. 문학교과서에서 구운몽이 나왔던 게 아마 그 때쯤이었으니까.
집에 가서 앨범을 뒤적거리다가 발견한 이 글.
서툰 내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있어 혼자 피식 웃었다.
의미있는 삶을 살자 - 구운몽을 읽고
아침에 허둥지둥 일어나 학교가서 공부하고 졸음에 겨워 집에와 멍하니 책상앞에 앉으면 내가 오늘 하루 뭘했나 생각하곤 한다.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한 것 같지 않고 신나게 논 것 같지도 않고, 그저 그런 하루를 보낸 것 같아 시간이 아깝기도 했다.
나는 구운몽의 양소유의 꿈이 나의 하루생활과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다른 아이들과 다름없이 죽을 상을 하고 공부하고 졸고, 그저 다른 친구들과 비슷하게 어울리는 것처럼, 양소유도 입신양명을 해야만 하고 첩도 있어야 한다는 여느 남자들과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양소유는 입신양명해야 한다는 여느남자들과 똑같은 이상을 동경하고 있었다. 꼭 입신양명만이 남자의 성공이라고 누가 정해준 것일까? 그저 위에서부터 내려온 것이니까 좋은 것이려니 하고 무조건 그 이상을 따라야만 하는 것일까? 그래야만 행복해지는 것일까?
물론 입신양명 그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성공한 삶은 많다. 예를 들면 바비도라는 사람은 한낱 양복쟁이였지만 자신의 신념을 위해 끝까지 불의에 항거하였지만 결국 화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그의 죽음을 '에구, 저런 융통성 없는 바보같으니라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그의 방식대로 자신의 신념을 지킴으로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들처럼 대학을 나와 대학교수까지 되었지만 몇 년 가지 못해 농사꾼이 된 사람을 신문에서 본 적이 있다. 그는 지금 자신의 삶이 매우 행복하고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이 두가지 경우만 보더라도 꼭 입신양명만이 성공한 삶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꼭 대학가야 성공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고정관념일 뿐이다. 물론 공부를 더하고 싶다면 대학에 가야한다. 하지만 취미도 능력도 맞지 않는다면 무리하게 따라갈 필요가 없다. 자신이 가장 자신있고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우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세상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인생무상도 공감이 간다. 죽어라 일하고 싸워 입신양명하고 부인이 여덟이나 그 뒤에는 지루한 삶 뿐이다. 우리가 죽어라 공부해 대학을 갔다고 해도 부모님들은 시집가라고 하실 것이다. 부모님 말씀대로 시집가면 그 다음은 뭘까? 결국 그 자리에 멈춰 지금까지 뭘했나 하며 허망함을 느낄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보고는 나의 삶은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얼마전까지 나느 참 어리석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4년동안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건 성공할 가망이 적다', '돈도 못벌어먹는 직업이다'하며 나에게 현실만을 요구했다. 그래서 나는 정말 소설가는 내가 할 게 못되나봐 하며 허망한 꿈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생각은 다른다. 나는 결코 인생무상의 삶을 살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의 꿈을 위해 누가 뭐라든 그것이 유망하건 아니건 내 삶을 그것을 위해 바칠 수 있다. 그리고 나중에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온전한 나의 삶이었으니까.
지금 나는 소설가가 되어 있지는 않지만, 내 삶의 골자는 변하지 않길 바라며 살아간다.
나는 불확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삶의 주제를 지키며 살아가고자하는 노력만으로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무엇은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