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엄마와 아빠라는 이름을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된 것은 아빠 때문이다.
말기 암환자라는 표를 달게 되자, 아빠는 단 3일만에 세상에서 가장 긍정적이고 활발한 사람이 되었다. 그럴 수 있는 건 자식들이 곁에 있기 때문이었다. 혼자가 아니어서 그랬다.
어제 꿈에 아빠가 나왔다.
내가 대전에 가려고 터미널에 왔는데 짐을 들어주고 챙겨주느라 아빠가 따라왔다.
단지 그 뿐이었지만 꿈어서 깨니, 저절로 울음이 났다.
부모가 도대체 뭔데, 라는 생각이 계속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부모가 뭐라고 아픈 몸에 젊은 자식 가는 걸 챙기냐고, 당신이나 잘 하라고
젊은 자식이 당신하나 못 챙겨서 미안하다고.
엄마가 계속 집에 안 들러가냐고 묻는다.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교회모임 때문에 안 될 것 같다고 한다.
토요일에 와서 일요일 아침이면 교회간다고 대전으로 휭하니 떠나는 내가
늘 서운한 엄마는
오늘도 잠깐 원주 왔다가 아빠만 데리고 가는 내가 서운해 계속 묻는다.
이제 그 서운한 마음이 느껴지니, 내가 나이가 들은 모양이다.
대장부처럼 의젓하고 호탕한 엄마지만 마음은 연시마냥 여리고 달콤하다.
나는 조금씩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한다.
아직 실감나게 와 닿지는 않지만 이제 먼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천천히 마음에게 물으며 기도로 준비한다.
삶을 소화할 믿음을 구한다.
부모가 내 삶이었음을
두 사람, 삶 그 자체가 내 삶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슬프고 아픈 마음이 내게 힘이 되고, 내가 소화할 삶임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