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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vist/아름다운 지구인

사회운동의 새로운 횡단-인권, 생태 그리고 평화

by bravoey 2007. 8. 12.
지난 8월 9일에 서울로 강의를 듣기 위해 떠났다. 일도 많고, 길도 멀었지만 쉽게 들어볼 수 없는 주제의 강연이라 과감히 떠났다.

패널토론 형태로 진행된 이 날 강연에는 인권파트로 박래군(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평화파트로 오두희(평화바람) 활동가, 생태파트로 이헌석(청년환경센터) 활동가가 참석했다.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님의 사회로 아쉽게도 2시간 밖에 참여하지 못하고 대전으로 와야했다.

매번 전문가들의 줄줄이 읊어대는 전문지식의 위주의 토론회보다 활동가들이 들려주는 현장의 이야기와 활동가로서 느끼는 여러가지 경험들이 훨씬 재미있고 가슴깊이 다가왔다. 내가 활동가가 아니었다면 그 잔뼈굵은 활동가들의 이야기 1%라도 이해했을까?
만나고 배우지 않으면 절대로 진보할 수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확신하는 시간이었다.

운동이라는 것은 내가 바라는 세상에 대한 책임감 이라는 오두희 활동가의 말이 내가 하고 있는 것이 과연 '일'에 대한 책임감인지, 세상에 대한 책임감으로서의 '운동'인지를 반성하게 해 주었다. 요즘 계속 일에 치인다는 생각과 성과 없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에 대한 의문 때문에 괴로운 차였다. 아무것도 없이 연차만 늘어가다가 이렇게 그만 두게 될 것 같아, 내심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해 참 뵙고 싶었던 박래군 활동가는 인권의 보편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인권은 사회적 약자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인권은 모든 사람의 권리를 이야기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모든' 권리를 보장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노동자의 인권은 있지만 자본가의 인권은 없고, 아동의 인권은 있지만 성인남녀의 인권은 흔치 않고, 여성의 인권은 있지만 남성의 인권은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결국 인권은 사회적 약자의 권리만을 말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인권은 권력을 가진 자나 지배하는 자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권력자나 지배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인권을 말할 경우, 이것을 인권 보편성의 함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확신있게 "인권은 가난한 자들의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