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젊다면 젊어서 그런걸까, 지식의 깊이가 매우 얕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어떤 한 사실에 대해 알고, 어떤 사람에 대해 알았을 때 아주 외면적인 것과 조금의 이해를 가지고 전체를 판단하려 들 때가 많이 있다. 조금 더 알기 위해 학습하는데는 지지부진하다. 솔직히 이런 반성조차 지겹게 느껴질 때가 있다.
더 알기 전까지는 진정성에 대해 생각할 수 없다. 조금 알고 진정성을 갖게 된다면, 그 진정성은 약간의 위기만 닥쳐도 쉽게 무너져버린다. 한 사실이나 개체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와 부분적인 이해, 장점과 단점, 변화의 가능성을 샅샅이 파악하고 이것을 내 것으로, 내 생각으로 정리할 때야 흔들리지 않는 진실한 어떤 마음을 품게 된다. 깊이 알게 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고, 또 어려운 것 같다.
구체적으로 말해보자.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하는 질문이 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있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그렇다고 그 일을 잘 할 수 있느냐, 그것은 아니다. 무엇을 하고 싶은가의 질문에는 입을 꾹 다물게 된다. 그 이유는 '자신감'이다. 무엇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제어한다. 이건 나도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자신감을 가져야지, 하고 마음 먹는다고 자신이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부족했던 것은 내가 하고 싶다고 생각한 일에 대한 공부와 열의의 부족이었다. 원인을 밖에서 찾으려 했던건 내 잘못이다. 고로, 박은영.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4년동안 헛물을 켰다면 이제 다시 시작하면 된다. 나에겐 기본기가 갖춰졌기 때문이다. 미숙하지만 나름대로 우리 조직에서 익힌 기본기가 있다. 애초에 질문이 잘못 되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여기에 남아있었던 것이 아니다. 일단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짚어야 한다. 내 능력 안에서 내가 해야할 일은 잘 알고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 일을 하면서 나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를 다시 물어야 하고 그 물음을 천번은 던져 알아낸 후에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고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이 진정성이 아닐까.
"네가 하기 싫은 일 9가지를 해내야 네가 하고 싶은 일 1가지를 할 수 있다." 는 처장님 말에 눈물이 날 뻔했다. 나는 아직도 할 수 없다는 핑계와 자신감이 없다는 말로 어리광을 피우고 있었던 건 아닐까. 뭐가 그렇게 부럽고, 뭐가 불만이었을까. 아니, 뭐가 그렇게 불안한걸까. 중요한 걸 안다면 내가 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물으면서 그 일의 진정성을 찾아내자. 그러면 된다. 그 일에 진정성을 찾아낼 수 있다면 내가 하고 싶은지도 알 수 있다. 더 깊게 가야한다. 이만하면 됬다는 생각, 버려야 한다. 더 깊게 물어봐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기도. 어릴 때부터 무작정 뭔지도 모르고 기도하던 습관이 있었다. 하지만 이젠 안다. 기도는 알고 정확하게 이해한 후에 뜨거운 마음으로 해야 한다. 그 뜨거운 마음은 그 일이 잘 되거나 그 분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는 진실한 마음, 진정성이다. 단 한 번을 해도 그렇게 해야 한다. 단 한 개를 알아도 묻고 이해하고 그 마음을 품어야 한다.
한 번 태어나, 사는데 남들처럼 그렇게 살다가 누군가에게 '너도 어쩔 수 없어'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다. 이게 내가 살아온 지금까지의 내 기도제목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