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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vist/성매매근절 외침

선물-2

by bravoey 2006. 4. 24.
 

친구는 티켓다방에서 한 달에 삼백만원을 벌 수 있다고 했다. 그 친구가 평소에 돈을 잘 쓰기도 했고, 한 달에 삼백이라는 말도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숙식까지 제공해준다고 하니,나로서는 더 이상 생각해 볼 여지도 없었다. 소개를 받아 한 다방에 취직하게 되었다.

일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나는 다방 안에서 서빙을 보거나 일을 도와주었고, 가끔 배달도 나갔다. 아직 처음이라고 마담언니와 여러 언니들은 나를 잘 챙겨주었다. 그런데 가끔 그런 친절이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내가 아니라 그 언니들이 아주 어색해 하는 것 같았다. 마치 친절을 받아본 일이 없는 사람이 친절한 흉내를 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주방이모와 한 방을 썼는데, 주방이모는 그래도 내게 친절하지 않을 편에 속해서 오히려 편했다.

“너 계산보는 날이 언제니?”

어느 날, 주방이모가 내게 물었다. 계산 보는 날은 내일이었다. 다른 언니들과 다르게 나만 계산보는 날이 틀렸다.

“내일인데요.”

주방이모는 이불을 푹 뒤집어쓰면서

“니도 좋은 세월 다 갔구나.”

라고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내일이 월급이라 나는 좋은데, 이모는 왜 좋은 시절이 다갔다고 하는지 그 때는 몰랐다. 하지만 다음 날부터 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는 분명히 300만원을 벌었는데 빚이 생겨났다. 그건 카드빚이 아니었다. 내가 먹고 자고 쓴 돈이라고 했다. 나는 사장에게 따지듯이 숙식비를 왜 받냐고 물었다. 내가 왜 주방이모의 용돈을 줘야 하며, 티코삼촌의 용돈을 줘야 하냐고 물었다. 다방청소비는 왜 내가 내야 하냐고 물었다. 사장은 그랬다. 원래 정해진 것이라고. 나는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친절하던 사람들은 모두 불친절해졌다. 그것이 빚과 더불어 생겨난 현상이었다. 사장은 다짜고짜 나를 때렸다. 나는 그만두겠다고 했다. 사장은 빚을 갚기 전까지는 아무데도 못 간다고, 도망간다면 사기죄로 나를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나는 다른 언니들에게 하소연을 해 보려고 했지만, 언니들은 이제 친절하지 않았다.

멍청한 년, 이런 것도 모르고 여길 들어왔으니.

그동안 잘 해주니까 마냥 좋아서는.

불친절한 말들이 여기저기에서 쏟아져 나왔다. 나는 내가 하던 일에서 또 다른 일을 하게 되었다. 배달은 물론이고 2차를 나가야 했다. 그래야 빚을 갚을 수 있었다. 처음 나갔을 때는 잘 못한다고 손님이 때리는 바람에 병원에 가야했다. 그 돈도 고스란히 빚이었다. 빚을지지 않기 위해서 잘 해야 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잘 해야 했다. 나는 어느 새 내가 아닌 나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내 몸은 ‘손님’이라는 몸뚱어리 밑에 깔려있었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그것을 지켜보는 내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곧 그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다.


나는 방에 멍하니 앉아서 처음으로 창 밖의 세상을  여기에 처음 왔을 때, 나는 창 밖에 저렇게 환한 세상을 쳐다볼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지금보니 창 밖은 너무나 환했다. 그런데 내 방은 어둠컴컴했다. 수명이 다한 형광등 빛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불이 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