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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vist/성매매근절 외침

선물-4

by bravoey 2006. 4. 24.
 

가게의 이름은 ‘희망’이었다. 나는 간판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내가 본 술집간판 중에 가장 유치하고 어처구니없는 이름이었다. 선불금 800에 나는 ‘희망’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내가 들어갔을 때, 희망에는 마담을 제외한 세 명이 일하고 있었다. 각자 나이가 많은 순서대로 둘째언니, 셋째언니, 막내언니라고 부르게 했다. 나이는 내가 제일 어렸다. 저녁 7시에 문을 열고 가게를 정리하는 뒤치다꺼리는 내가 했다. 저녁시간에는 준비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두 배로 더 빨리 행동해야 했다. 며칠 동안 다른 언니들은 딱히 나에게 말을 붙이지는 않았다. 서먹한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

“이름이 뭐니?”

둘째언니가 내 이름을 물었다. 셋째와 막내언니는 각자 유리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나와 둘째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도 몰랐다.

“수진이요.”

“아니, 진짜 이름. 어릴 때부터 불러온 이름.”

나는 잠깐 머릿속이 멍해졌다. 갑자기 내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 이름이 아니던 이름은 또렷하게 기억이 나는데, 내 진짜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박,정,옥”

나는 다시는 잊지 않기 위해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소리내어 알려주었다. 그것은 언니들에게가 아니라 나에게 알려주는 것이었다. 잊지 않으려고.

“정옥아.”

둘째언니도 잊지 않으려는지 힘주어 불렀다. 언니의 진한 화장 뒤로, 얇은 옷 너머로 작은 떨림이 느껴졌다.

“정옥아, 눈 온다.”

유리창 밖을 내다보았다. 정말 언니의 말처럼 하얀 눈이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눈은 점점 많아져서 길 위에 내려앉고 있었다. 막내언니가 더 추워질거라고 투덜대었다.

“내 이름은 혜선이가 아니고 재순이다.”

둘째언니가 말했다. 나는 잊지 않으려고 속으로 또박또박 언니의 이름을 읽어보았다. 재, 순. 그리고 내 이름을 다시 한 번 읽었다. 정, 옥.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되는 내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