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회를 다닌다.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20년이 되어간다. 세상에는 나같은 사람들이 많다.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으며, 자신이 그래도 괜찮은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하면서 나는 왠지 부끄러운 날이 많아졌다. 내가 가진 신앙과 내 생활, 내 사고방식이 균형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장이 달랐다, 매번. 이래도 되는걸까? 사회문제에도, 동성애도, 교회에 대해서도 매번 다른 입장, 내 모습을 보면서 어딘가 가렵기 짝이 없었다.
그 가려운 곳을 벅벅 긁어준 것이 이 책이다. 가렵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잠시는 시원한 느낌이랄까.
가장 열심히 읽었던 것은 단연 동성애에 대한 부분이었다. 나는 참 오랫동안 동성애가 죄다, 정신병이다 라는 말을 들어왔지만 어쩐지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는 '죄'로 인해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죄고 정신병이니까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았다. 멀리하거나 못하게 해야 한다는 말 정도를 들었을 뿐. 세상에 뭐 그런 대책이 다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교회를 10년 넘게 다닌 나를 그 문제를 피해왔다.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내 문제가 아닌 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내 주위에 존재하고 있었고, 드러났을 때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아주 명백한 결론에 당착했다. 멀리하거나 못하게 하는 건 불가능하다. 나는 당연히 여전히 그 사실을 드러낸 이의 친구여야 했다. 적어도 내 이성은 그렇게 작동했다. 그 순간 나는 이성의 다른 쪽에서 이래도 되는거냐는 질문을 떠올렸다. 뭔가 무진장 가려운 기분. 자기 중심의 생각이 결국 모든 것을 지배했다. 예수가 그렇게도 독하게 욕하던 바리새파의 생각들, 자기 중심. 내게 죄가 되는가, 내게 피해가 없는가, 내게 복이 되는가를 생각하는 끝없는 자기 중심.
내가 이웃이 될 수는 없는가, 라는 질문은 왜 하지 못했던가에 대한 지독한 후회가 앞섰다.
점점 권위적이고 수직적으로 변하는 교회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런 현실을 직접 목도하면서 나는 '기독교인이 부끄러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가슴이 아프다. 너무 부끄러워서, 속이 타서, 어디가서 이야기도 못하겠다. 함께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한 친구에게나 교회가 부끄럽고, 교회 다니는 나도 부끄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내가 가진 신앙을 포기하거나 내가 오랫동안 함께 지내온 교회공동체를 떠나고 싶지않다. 나는 희망을 만들어가자는 김두식 교수의 말에 적극 동감한다.
교회를 다시 예수그리스도의 삶을 보여주는 곳으로, 제대로 보여주는 곳으로 바꾸는 중보를 하고 싶다. 쓰러지 곳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 그것이 예수가 이 세상에 온 이유가 아니었을까. 그것이 교회를 계속 다녀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책을 덮었다. 이 책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선물해준 탁이가 고맙다는 생각에 씩 한 번 웃었다. (이 책을 선물해 주는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