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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모방범

by bravoey 2011. 1. 10.


모방범을 읽는 저녁은 몹시 두렵고 추웠다. 그녀가 그려내는 인물들은 아주 구체적이고, 섬짓했다. 미혼여성 연쇄살인범을 쫓는 경찰과, 살인범들-피스,히로미- 그리고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얽혀 거대한 그물같은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본능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하게 만드는 캐릭터들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군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히로미의 삐뚤어진 영웅욕이 만들어지는 동기와 그것이 살인으로 발전되는 과정, 그리고 그 허망함까지 잘 짜여져 있어서, 보는 내내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3권에 가서야 등장하는 피스의 실체 또한 히로미의 일부였음이 드러나면서 캐릭터 간의 유기적 일치감을 맛보게 한다. 그건 어떤 의미로는 꽤 짜릿하기도 했다. 단지 그가 결국 잡혀서는 절대 아닌, 뭔가 씁쓸하면서도 짜릿한 쾌감. 내 안에도 그런 본능이 있기 때문일거야, 히로미 또는 피스가 가졌던 어린아이와 같은 본능. 그리고 진실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짚어낸 대목들은 진정, 가슴에 닿았다.

인간이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야. 절대 그러지를 못해. 물론 사실은 하나 뿐이야. 그러나 사실에 대한 해석은 관련된 사람 수만큼 존재해. 사실에는 정면도 없고 뒷면도 없어. 모두 자신이 보는 쪽이 정면이라고 생각하는 것 뿐이야. 어차피 인간은 보고 싶은 것 밖에 보지 않고, 믿고 싶은 것 밖에 믿지 않아.
- 모방범2, 493p

내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들은 정말 사실일까, 아니면 내가 기억하는대로 기억하는 것일까? 가끔 나는, 내가 믿는 것들에 대해 의심한다. 내가 사실이라고 절대적으로 믿는 것들에 대한 의심. 그것은 세상을 새롭게 보이도록 만든다. 그리고 공포스럽게 만든다. 그것만은 사실이다. 발 밑이에 마치 폴이 다른 세계로 넘어갈 때 생기는 까만구멍이 생긴 듯, 알 수 없는 공간으로 밀어드는 것 같은 느낌에 휩싸인다. 그것만은, 진정 사실인 것 같다.
사실, 책을 덮고 나서도 많은 생각이 머리 속에 남아 둥둥 떠다닌다. 내 본성에 대한, 내가 믿는 것들에 대한 의심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