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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큐 - 어느 독재자의 고백

by bravoey 2011. 1. 25.


I see my light come shinning. I shall be released.
밥 딜런의 목소리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녹색 운동화를 신은 여균동 감독. 목소리가 우아하시다. 독재를 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독재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향해, 그 사람이 말한다. 독재자의 십자가를 진 명배우가 등장한다.
연극의 꼭지는 권력, 독재자, 민주주의, 죽음, 그리고 앞서 간 이(노무현일까?). 속사포로 대사를 뱉어내는 명배우의 연기력에는 빈틈이 없었다. 표정, 대사를 뱉는 호흡, 캐릭터에 대한 몰입도 과연 배우는 배우구나 싶게 완벽했다고 생각한다. 여균동 연출의 등장으로 중간중간 명계남씨의 갈등과 배우로서의 내면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극적효과도 노렸다. 재미있었다. 재미는 곧 몰입의 정도다. 명배우는 아마 그 연극에서만큼은 관객을 '통치'하고 있었다.
c'set ne pas une 보온병. 초현실주의 안상수옹의 존재의 역설을 표현한 한 마디. 집에 와서도 피식 웃게 만드는 그 대사. 루마니아의 독재권력의 상징인 차우체스크가 등장할 때마다 가슴이 섬뜩했다. 차우체스크의 아이들이 대한민국에서도 만들어지는 중일까봐 두렵기도 하다.
마음껏 원망해라. 단 한사람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독재자의 마지막 외침. 이 또한 섬뜩했다. 이 외침은 비단 오늘만의 외침은 아니었으리라. 독재자의 역할을 할 누군가는 또 다시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바로 지금 이 시대의 공포.
아큐를 연기하는 명계남씨를 보면서 십자가가 떠올랐다. 그는 독재의 시대에 "독재자를 연기하는 십자가"를 지고 아큐를 연기하고 있다. 스스로 고통스러워하면서. 그의 아큐가 과연 구원을 보여줄까? 나는 그가 오르는 골고다 길의 구경꾼일 뿐일까.
기왕 이렇게 된 거 맘놓고 편하게 사는거야. 아큐가 했던 이 대사는, MB 어록 중 하나였다. 이처럼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말이 또 있을까. 우리가 목표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떨쳐내고, 냉소가 전공이고 절망이 일상인 채로 어려움 없이 살고 싶은 욕망. 하지만 구경꾼이 된다면 해방은 없을 것이다. 그도 고백하지 않는가. 등장과 퇴장은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고. 그렇다. 등장시킨 것이 '우리'라면 퇴장시켜야 할 의무도 '우리'에게 있다. 그 우리 속에서 나는 나의 탓을 해야 한다. 나는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