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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가재미

by bravoey 2011. 2. 8.

<맨발>이 조금 수런수런했다면, 가재미는 깊은 수면 아래를 걷는 듯 읽히는 시들이 많았다. 소재가 만들어주는 이야기 소리는 많이 줄어들었고, 문장이 만들어 내는 잔잔한 울림이 인상깊다. 읽다가 감탄한 시는 <동천에 별 돋고>.
 

저 하늘에
누가 젖은 파래를 널어놓았나

파래를 덮고 자는 바닷가 아이의 꿈같이

별이 하나 둘
쪽잠 들러 나의 하늘에 온다

- 문태준 시, <동천에 별 돋고>


파래를 하늘에 넌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전에 느껴지는 감각이 있다. 바닷가 아이의 꿈과 파래 속에서 별. 머릿 속에 찬 바닷물이 차 오르는 것처럼, 이성보다 앞선 감각의 소리. 내 상상력과 문태준 시의 상상력이 만나는 순간.
시의 상상력은 한계점 없이 날아갈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소설을 쓰다보면, 형식을 파괴하거나 초현실적인 소재가 아닌 이상은 틀 안에서 상상하게 되는 버릇이 있는데, 시에서는 그것 이상의 상상력이 허용된다. 시를 읽는 즐거움은 바로 이런 것인가 싶다. 자간과 자간, 행과 행 사이에 숨어있는 의미와 추억들을 꺼내보는.
아, 이제 시는 그만 읽어야 겠다. 왠지 마음이 너무 젖어버려서, 짜면 물이 한 바가지는 나올 것 같아서, 봄에 안 어울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