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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나를 보내지 마

by bravoey 2011. 7. 13.

처음 읽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단순히 클론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SF류를 기대했다가 뒤통수를 맞은 작품이다. 틀을 뒤집는다는 건 이런게 아닐까 싶었다. 작가는 뒷짐을 지고 장기기증을 목적으로 교육되는 해일셤의 아이들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주인공(루스, 캐시, 토미)들은 소설에 등장하는 기증, 일반인, 장기 등의 단어가 없다면 평범한 아이들처럼 보인다. 지루하다싶게 소소한 주인공들의 이야기 저변에는 말해도 안되고, 베일에 싸인 그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깔려있다. 그 불안함이 지루한 이야기들을 자꾸 읽어나가게 한다. 그래서, 그래서 얘들은 어떻게 되는거야? 그리고 마지막에 다다랐을때, 장기기증을 하면서 인간들의 잔인함 등을 기대했을때, 작가는 기다렸다는듯이 클론들의 '영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정말 마지막에 다다라서.
그래, 인간들은 이기적이야, 클론들도 권리가 있어. 이렇게 정형화된 결론을 머릿속에 그리던 내게, 그들의 영혼에 대한, 토미의 그림이나 캐시의 음악으로 보아왔던 '영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냄으로 작가는 침묵을 깬다.

우리가 너희 작품을 걷어 온 건 거기에 너희의 영혼이 드러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좀 더 세련되게 말하자면 그걸로 너희한테도 영혼이라는 게 있음이 증명되기 때문이란 말이다.

어째서 그런 걸 증명하셔야 했던 거죠? 우리한테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있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