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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그로칼랭

by bravoey 2011. 7. 5.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라는 소설을 기억한다. 대학교 때, 아주 밝은 날, 도서관에서 공강시간에 읽었는데 결국 필사까지 했다. 강렬했다. 그 밝은 햇빛을 밝은 그대로 어둡게 만드는 문장이었다. <그로칼랭>으로 두번째 만나는 그다. 조금 가벼워진 그는 <그로칼랭>에서 완벽한 문장을 보여준다.
정상인에게는 정상인이 아닌 '쿠쟁'과 오로지 쿠쟁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그로칼랭'은 둘 이며 다른 개체이지만 하나인 '가공의 인물 혹은 뱀'을 주인공으로, 주도적인 문장을 도구삼아 독자들을 소설 속으로 초대한다. 아주 적극적이다. 관조 따위는 없다. 
쿠쟁의 말하기는 '자기 규정'을 포함한다. 주변에 모든 사람, 그로칼랭까지 오직 자기에 의해서만 규정되지만, 독자들은 쉽게 그것이 쿠쟁의 정의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어떻게 그렇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든 것인지도 사실 아직 모르겠다. 쿠쟁이 정상인이 아니라고 알아채는 순간, 읽는 나도 혼란스러우니까. 쿠쟁은 오로지 한 가지 방식으로 말하면 되지만 나는 쿠쟁의 말을 두가지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난점이 있기 때문에 가끔 읽던 곳을 다시 읽게 되었다.
결말은 두가지로 나뉘어져 있다. 나는 생태학적 결말이 더 로맹가리 답다고 생각한다. 원래의 결말은 그의 것이 아닌 것 같다. 절제되어 있고 지나치게 깔끔하다. 수학공식처럼. 보기는 좋지만 재미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