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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내 무덤, 푸르고

by bravoey 2011. 10. 31.

최승자의 시는 결기 서린 듯한 단어들 때문에 보는 내내 무겁다. 한 손에 창을 들어 자기에게 겨누고, 다른 한 손으로 시를 쓰는 듯 하다. 불끈불끈 터지는 된소리의 단어, 결이 곧은 행과 행. 슬픈 비장함이어야만 비로소 시가 되는 것처럼 단어들이 꼿꼿하다.
대학교 때, 그녀의 <즐거운 일기>라는 시집을 집어들었다가 홱 던져버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 나는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안 그래도 인생이 팍팍한데, 이 여자까지 왜 이러나 싶을까, 라고 투덜거리면서 말이다. 문학이 내 도피가 되기를 바랬고, 초라한 내 생활과 삶을 빛내주기를 바랬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어야 한다. 그녀의 그 팍팍한 언어가 곧 내 삶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녀의 시 <미망 혹은 비망 13>에서처럼,

고독이 창처럼 나를 찌르러 올 때
나는 무슨 방패를 집어들어야 하나.
오 방패는 어디 있나.
그냥 온몸 온 정신이 방패인 것을.


읽는 이를 어둠으로 던져버리고 만다. '항거불능'의 상태로 집어넣고는 '고독의 창 앞에 충분한 피를 준비해두자'고 한다. 벼랑 끝까지 밀어붙이고는 그래도 당신은 살아있다고 말한다. 지금의 나에게도, 예전에 나에게도 그녀는 친절하지 않다. 부드럽지 않고 그렇다고 흔들리지도 않는다. 그렇게 단단하게 고독과 끝을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왠지 또 다시 책을 집어던지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뜨끈한 이 시, <그대 영혼의 살림집에> 때문에 책과 책 사이에 다시 고이 꽂아두었다.

그대 영혼의 살림집에
아직 불기가 남아 있는지
그대의 아궁이와 굴뚝에
아직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지

잡탕 찌개백반이며 꿀꿀이죽인
나의 사랑 한 사발 들고서,
그대 아직 연명하고 계신지
그대 문간을 조심히 두드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