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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記

흔적

by bravoey 2011. 11. 11.
*

내가 20년의 시간을 보냈고, 아빠가 그보다 더한 시간을 보냈던 충주집을 정리했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내내 썼던 일기장을 보내주었다.
나중에 나 읽어보게 하려고 숨겨놨단다.

 "네 편지들은 담에 집에 올 때 가져가."
 "무슨 편지?"
 "니 아빠가 '은영이 편지'라고 써서 정리해놨더라. 너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랑 주고받았던 거."

엄마의 말을 듣는 순간, 공무원이었던 아빠가 정자체로 곧게 썼을 '은영이 편지'라는 글자가 기억나 울음을 꿀꺽 삼켰다. 혼자 외로웠을 아빠는 그 편지들을 읽으며 조금은 웃었을까. 그랬다면 좋겠다. 내가 웃음 줄 일이 별로 없었으니 그거라도 즐거운 일이었으면. 아빠, 보고싶다.

**

어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건,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늘 언제나 있었던 사람인데 어느 날 거짓말처럼 사라진다는 것. 마치 유령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건 무척 두려운 일이다.
어쩔 수 없다. 사람이 죽는 것, 사람의 마음이 떠나는 것.
방법이 없다. 그저 감내해야 할 뿐.

***

내내 책을 읽는다. 한동안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이제 다시 눈에 들어와 읽다 잠든다.
소설을 읽는다.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을 새롭게 바라보고 싶어서, 잠시 떠난다.
그리고 잠시, 그대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