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꿈틀대는 민족의식의 발현인지, 영화 전개는 무척 재미있었다. 땅파는 장면이 너무 길어서 긴장감이 떨어지긴 했지만 이야기를 치고 나가는 힘은 뭐, 충분했다. 재미는 있었다.
어이없는 장면도 참 많았다. 대통령과 고종을 중첩시키는 장면, 여우사냥 장면. 나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데 자꾸 대한제국 이야기를 꺼내서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여우사냥에서는 대장인듯한 일본사람 옆을 졸졸 따라다니는 남자가 여우사냥의 목적과 결과에 대해서 세세하게 설명까지 해주었다. 왜 그렇게 세세하게 설명을 해주는건지. 정부청사 폭파장면도 어이없었다. 그 높은 건물의 한 층만 다 나가라고 하면, 사람들이 다 나가고 폭파해도 괜찮은건지.
관객의 영역이 없다. 그냥 그 장면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강수연의 대사 한 묶음만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데 말이다. 감독이 관객을 교육하듯 영화는 설명을 넘어 설교수준이다.
우르르 등장하는 남자들. 강우석 영화에서 뭔가 하는 사람은 죄다 남자다.
카메라를 세모눈을 뜨고 보면서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는 남자들. 강수연도 그렇게 이야기한다.
하나같이 성격급하고 다혈질에 대책없고 극단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들만 나온다.
대사도 무척 강압적이고 명령적이다. 그래서 웃기는 사람들이 웃긴 짓을 한다. 무척 작위적이다. 연극을 해라, 차라리.
일본은 나쁜놈, 우리는 착한놈이라는 이분법적인 전제가 아주 불편했다. 그 영화에 등장하는 일본사람은 모두 나쁜 놈이다.
국가의 운명이 걸린 일을 처리하는데에는 대통령과 국방에 관련된 사람 뿐이다. 국민은 한 사람도 안나온다. 그나마 조재현이 평범한 국민이시지. 국민대표 조재현은 대통령의 지지아래에 충성하고 복종하시는 인물로 나온다. 국민은 왕(대통령)이 보살피고 이끌어야 할 무지몽매한 사람들로만 묘사된다.
여성은 없다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의 모습은 아주 가관이다.
첫번째 등장하는 여성들은 문화센터 아줌마들. 조재현이 국가와 관련된 역사에 관해 설명하려고 하면 드라마나 뮤직비디오 얘기를 해서 조재현한테 무시당하고 사라지는 역할이다.
그 뒤에는 여자는 무식해서 역사에는 관심없고 드라마나 소비지향적인 문화에만 관심이 많다, 고 이야기한다는 인식이 자리잡혀 있다. 일부 여성의 예를 싸잡아서 모든 여성이 그런 듯 묘사하고 있고, 여성이 아직도 깨우쳐지지 못한 미성숙한 인간인양 대한다는 것이 문제다.
두번째 등장하는 여우사냥의 민비. 민비는 여자이지만 무척 남성적으로 행동한다. 대례복을 준비하라는 말은 비장하게 죽음을 결심하는 남성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고종에게 절을 하면서 하는 대사들은 한 여인의 삶이 아니라 국모로서의 정체성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비단 민비 뿐 아니라 주인공들 모두가 국가정체성 밖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가 여인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은 눈물 뿐이다.
세번째는 여관에서 등장하는 두 여인네들. 티켓다방여자와 감자탕집 여자. 아주 전형적이다. 남성의 섹스대상으로서 쉽게 등장하는 여인들. 그렇게 사는 여자들이 삶이 어떤지 관심이나 있나 몰라.
부디 바라건데, 더 이상 이런 영화 안 만들었으면 좋겠다.
만들려면 다양한 시각에서 다양한 생각을 담아서 만들었으면 좋겠다.
이분법은 위험하고 국가주의적 시각은 민주주의를 저해할 뿐이다.
강한 국가가 아니라 제대로된 국가를 그려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