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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철살인자들/촌철살인칼럼

레바논에서 돌아오지 않는 편지

by bravoey 2006. 8. 3.
레바논에서 돌아오지 않는 편지
오수연 | 소설가
그는 콜라만 마셨고 닭튀김은 손도 안 댔다. 한국에서는 가축을 죽이기 전에 이슬람 의식을 치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떤 육류도 입에 대지 않았다. 이라크에서 만났을 때보다 더욱 경건해진 듯했다. 2003년 '한국 이라크 반전평화팀'의 현지 파트너였던 그는 무척 어렵게 비자를 받아 우리나라에 잠시 다니러 왔다. "바그다드 시민들은 요즘 행복해. 열시간에 한시간씩만 들어오던 전기가 요즘은 일곱시간마다 들어오거든. 그 한시간도 십분마다 이삼분씩 끊기지만. 수돗물이 언제 나올지는 기약이 없지. 미국이 3년 동안 이라크에서 한 일이 이거야.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고? 살아야 하니까."

그의 친척 몇명은 팔루자에서 죽었고, 처갓집 식구 한명은 아부 그레이브 근처에서 미군 탱크에 받쳐 죽었고, 친구 둘은 바그다드의 알 후리야라는 그의 동네에서 괴한들의 총에 맞아 죽었고, 또 한명은 시내 한복판에서 칼에 찔려 죽었다. 나는 그가 죽지 않고 살아남아 한국인 친구들을 만나러 와줘서 고맙고, 또 너무나 미안했다. 평생 술 한방울 마셔본 적 없다는 그에게, 내가 취해도 미쳤다고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너그럽게 웃으면서, 자기가 한국까지 와서 술을 안 마신다고 미쳤다고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반대로 부탁했다. 창밖에서 조용히 비가 내렸다.

"왜냐고? 그들에게는 주기적으로 전쟁이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