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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철살인자들/촌철살인칼럼

글쓰기의 어려움 - 강양구

by bravoey 2006. 4. 6.

글을 써 밥벌이를 하는 입장에서 글쓰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어찌 보면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요즘 부쩍 글쓰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매일 두세 개씩 써야 하는 기사도 부담스럽지만 내 생각을 담아내야 하는 글의 경우에는 쓰기가 더 힘들다. 내용을 채우는 것도 쉽지 않고 대개는 사정이 그러다보면 문장까지 꼬이기 십상이다. 말 하고 싶은 게 분명하고 그것을 뒷받침할 근거가 풍부하면 글도 쉽게 써지는 반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모호한 데다 쓸 거리까지 빈곤하다보면 내가 봐도 참 한심한 허리멍텅한 글이 된다.

글쓰기의 어려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말하고 싶은 게 분명하다고 해서 또 채울 내용이 풍부하다고 해서 바로 훌륭한 글이 나오는 게 아니다. 혀를 내두를 정도로 머리에 든 게 많은 사람인데도 도무지 글은 해독 불가능한 경우가 꽤 많지 않은가? 한편으로는 사실 내용이 빈곤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부럽게도) 말이나 잡념을 글로 옮기면 그럴 듯한 글이 되는 사람도 많다. 글 재주는 어느 정도 타고난 것일까?

(한번 예를 들어 볼까. 전자의 대표적인 예로 상당히 영향력이 있는 (혹은 있었던) 지식인 심 아무개와 윤 아무개가 있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둘다 한 때 알튀세르에 강하게 경도됐다는 특징이 있다. 나 역시 수년간 이들의 심오한 사고를 이해해 보려고 부단히 애를 쓴 적이 있었지만 항상 난해한 문장 때문에 좌절하곤 했다.

후자의 대표적인 예로는 최근 꽤 많이 읽히는 소설을 쓴 박 아무개와 정 아무개를 들고 싶다. 이 둘도 공통점이 있다. 평단의 꽤 호의적인 평가를 등에 엎은 데 이어, 기이하게도 보통 평단의 평가와는 정반대의 선택을 하는, 책이라고는 읽지 않는 20~30대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 이제 소설이 꽤 이름이 알려진 덕에 여러 일간지에서도 이들의 칼럼을 볼 수 있다. 글쎄, 그 시간에 책이나 더 읽는 게 두 사람의 발전을 위해서 더 낫지 않을까? 하긴 책을 읽지 않는 것이 책 읽지 않는 20~30대들과 교감하는 데는 더 나을 수도 있겠지만.)

고백하자면 나 역시 10대 때부터 글쓰기에 어느 정도 컴플렉스가 있었다. 특히 대학에 들어와서 글 잘 쓰는 선배들(!)과 어울리면서 더욱더 글쓰기에 대해서 자신감을 잃었던 것 같다. 용을 쓰면서 따라가보려해도 누구에게나 쉽게 읽힐 수 있는 독특한 스타일의 글을 빚어내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어쩌다 글을 팔아서 밥벌이를 하고 있으니, 혹시 이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면 아마 이런 생각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평범하고 글 재주가 없는 녀석도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으니 글 재주가 있는 이들이여 좌절하지 말라.'

그런데 최근 우연찮게 많은 팬들을 끌고 다니는 '인터넷' 글쓰기의 달인 두 사람에게서 글쓰기에 대한 고백을 들었다. 한 사람은 김규항이다. 최근 김규항은 그의 블로그에 「문장론」이라는 글을 통해 나름의 글쓰기 철학을 밝혔다. 그 중 한 대목을 읽어보자.

"……내가 쓰는 글의 8.5할쯤에 해당하는, 공을 들여 쓰는 글은 초고를 쓰면 적어도 서너 번 이상은 퇴고를 한다. 군더더기라 느껴지는 건 망설임 없이 없애거나 좀 더 간결한 표현으로 바꾼다. 나는 중언부언 하는 것만 군더더기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쓸데없이 화려한 표현도 군더더기라 생각한다. 그리고 부러 반복 효과를 내려는 게 아니라면 같은 글에선 같은 단어를 쓰지 않는다. 10매 이하 칼럼에선 반드시, 30매가 넘어가는 긴 글에선 되도록 그렇게 한다. 동시에 리듬을 만들어간다. 거창하게 말해서 운율을 맞추는 건데, 눈으로 소리 내어 읽으면서 리듬감이 흐트러지거나 호흡이 끊기는 부분은 글자 수를 고치거나 단어를 바꾼다.……간결함과 리듬 말고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쉽게 쓰는 것이다. 나는 왜 거의 모든 글쟁이들이 글은 쉬우면 쉬울수록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 배운 사람들이나 알아먹는 어려운 말을 이유 없이 쓰지 않는 건 물론이려니와 되도록 한자말을 줄이려고 애쓴다……."

인용한 부분을 읽고 나서 낯이 뜨겁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지금 끄적이는 이 글조차도 김규항의 기준에서 보면 얼마나 부끄러운 글인가. 김규항과 같은 타고난 글쟁이도 서너 번 퇴고를 한다는데 솔직히 나는 (빠른 시간 안에 글을 써내야 하는 직업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단 한번도 제대로 퇴고를 하지 않는 경우도 많으니…….

다른 한 사람은 진중권이다. 그의 고백은 좀 우연찮은 기회로 들었다. 어제 <프레시안> 일로 그와 잠시 통화할 일이 있었는데 대화가 오가다 나온 그의 고백.

"내가 요즘 방송을 진행하고 있잖아요. 방송을 위해서 짧은 칼럼이긴 하지만 1주일에 글을 여섯 개나 쓰고 있어요. 거기에 덧붙여 《씨네21》 글까지 써야 하니, 하주 힘들어요. 도무지 글감이 떨어져서 글쓰기가 힘들어요. 갈수록 글의 질도 떨어지는 것 같고."

생각해보면 두 사람의 고백은 글쓰기에 대한 상식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세상사 모든 것이 그렇듯 글쓰기를 잘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생각을 벼르고 내용을 풍부하게 하고 문장을 갈고 닦아야 한다. 여기에 잘 읽히는 글이 아니라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한 가지 덧붙여야 할 것이다. 김규항은 이 역시 잘 지적하고 있다. 어쩌면 요즘 내가 글쓰기가 더욱더 힘들어지는 것은 또 글쟁이들이 세월이 지날수록 글쓰기에 자신감을 상실하는 것은 바로 글 재주에 비례해서 현실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 데서 비롯된 것일지 모르겠다.

"내 삶과 내 글은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순환한다. 내 삶을 더 낫게 만들지 않는다면, 나라는 인간을 더 낫게 만들지 않는다면 내 글은 아무 것도 아니다. 결국 내가 문장을 다듬는 일은 내 삶을 다듬는 일과 같다."

by tyio | 2005-08-20 23:25